예수께 인문을 묻다
송광택 지음 / 강같은평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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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인문학은 조우할 수 없는 것일까?에 대한 응답



이책은 기독교에 대한 인문학의 질문에 대한 성경적 통섭이라는 생각으로 답을 하는 방식의 책이다. 그래서 처음책의 제목을 봤을 때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문학적 비판에 대해 날카로운 혜안을 기대했다.

이책의 서두에 적은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 80문 80답이라 말한 부분이 이책의 성격을 가장 잘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사실 인문학과 기독교의 대화시도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점의 역사는 르네상스시대로 올라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80문항에 대한 답을 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책은 기독교에 대한 인문학과의 논점을 다룬다기 보다는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인문학의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러한 귀결에서도 논쟁의 주제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설정하고 인문학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통섭이라는 말로 답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책의 독자를 지성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목적하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섭이라는 말은 모두에게 일관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법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 통섭이라는 주제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기독교인과 일반론자들의 대화가 겉도는 대화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론자들은 기독교도 하나의 논리라 생각하고 말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절대적인 진리라는 잣대로 보고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통섭이라는 말보다는 인문학적 질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답변서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다보니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책은 철저히 기독교인들을 위한 책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상대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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