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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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었더랬다. 폴란드라는 나라의 문학은 제대로 접해본 적도 없고, 실려 있는 작가의 이름도 죄다 낯설 뿐이었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라는 표제작의 제목이 어찌나 공손하면서도 슬프던지 끌리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더랬다.
책장을 다 덮은 지금, 폴란드의 단편소설을 모은 이 책은 제목 그대로의 느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소설은 하나도 없었다.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던 등대지기 할아버지가 눈을 빛내며 새로운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도,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추억을 들추던 남자가 앞을 바라보는 인생을 다짐하며 출발을 해도,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조랑말을 다시 만나 기뻐해도. 그들의 인생을 읽는 내게는 희망으로, 기쁨의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더 잃을 것이 없는 인생 위에 세워진 희망의 탑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나는 실감하지 못하겠다. 그저 안타깝고 슬프고 가슴 저미는 삶일 뿐이고, 죽지 못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 겨우겨우 가지는 희망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랬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절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절대적인 행복과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을 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잃은 외로운 인생이 하나 있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 꿈과 인생을 잃은 사람도 한 명 있었다. 함께 하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듯 하지만,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추억을 팔아 눈물로 연명하는 인생도 있었다.
단순하고 분명한 슬픔이 밀려왔다. 지나가고, 흘러가버린 모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굽이치는 강물을 따라 멀리멀리 흘러가고 있는 돛단배처럼, 많은 세월의 거리를 두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슬픔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픔과 절망 사이에 피어난 사랑이나 그리움, 희망과 같은 감정은 어둠이 있어야 햇빛이 눈부신 것처럼 더욱 밝고 빛난다. 단지, 그들을 그러한 처지에 몰아넣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냥, 고통 없이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쓸쓸하지 않고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