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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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터 빅셀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로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것이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작품이라 지겨울 정도로 많이 접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 소설은 언어의 성질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기 위해 쓰여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내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산문집에 대한 내 긍정적인 감상이 작가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제목부터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을 끌었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일흔 한 살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작은 것에 대한 애정,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 다른 사람과 공존하고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 등이 짧은 글에 담뿍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했다.  

 이를테면, 기차를 타기 위한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역이라든가, 내가 타는 버스를 운전해주는 사람일 뿐이었던 버스 운전사, 정확한 날씨를 맞출 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정확하게 맞지 않는 날에는 있는 욕 없는 욕 다하게 되는 일기 예보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정을 보여준다.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먼지 속의 역, 인사를 나눔으로써 기뻐지는 버스운전사, 놀라울 정도로 날씨를 알아맞춰서 신기한 일기예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작고 소박한 것에 대한 애정이 한껏 드러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길을 걷고, 이름을 부르는 그의 하루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나치던 나의 이웃과 나의 하루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자기 손을 가슴에 얹고 몸을 약간 굽히며 인사를 하면 나는 항상 기분이 좋다. 예전에 그가 인사에 대답하지 않을 때, 나는 거의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제 드디어 같은 버스를 타는 셈이다. 나는 사실 그를 모른다. 그의 이름도, 그가 간직한 이야기들도. 그도 나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그는 이제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다. 우리는 이 버스를 탄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이제 정말 같은 소속감을 느낀다. 이 버스에 함께 탔다는 소속감. 작은, 아주 작은 소속감. 하지만 차가운 12월의 이런 밤에는 이렇게 작은 감정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 p127-128)

 그저 작동시켜 보기 위해 물건을 사거나, '처음'이라는 그 소소한 즐거움에 함빡 웃는 그의 순수함에 감탄하고(TV와 관련된 일화는 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를 것이 없나보다), 자신의 것을 좋아하고 아끼지만 자신과 다른 다양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에 흐뭇함을 느꼈다. 이런 것이 산문집을 읽는 매력이려나. 남의 생활과 생각을 알아감으로써 내 삶을 되돌아보고 소중함을 깨닫는 것? 산문집이라는 것을 좋아한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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