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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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산 선생님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을 때처럼 문장이 아름다워서 책장을 넘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문학평론가들은 글을 이렇게 아름답게 쓰는 것인가.

 

 이 책은 저자가 신문에 쓴 시 평론 꼭지를 엮어 만든 책이다. 시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고 시인에 대한 내용이라든가, 현 한국 사회에 대한 내용, 그림과 관련한 내용도 있다.

 

 그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나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아프다고 덮어두지 말고 계속 끄집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도 세월호 유족들이 팽목항에 적어놓은 글귀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우리는 가난하지만 행복했지만, 네가 간 이후로 가난만 남았구나."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 밖에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시인(및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시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를 쓰며 가난하게 살고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은 최승자 시인의 이야기나, 고문을 받은 후 여러 시를 쏟아낸 박정만이라는 시인의 이야기, 잘 알려진 동요를 쓴 작곡가 윤극영 선생에 대한 이야기, 화가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사연 등은 어떤 울림을 주어서 자꾸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여러 시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내포하는 '희망'은 거의 미래형이어서 슬펐다. 황현산 선생님이 말하는 우리 사회 현실도 어둡고 쓸쓸하고, 시 속에서도 희망은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만 그려지고 있어서 말이다. 그래도 자꾸만 들추어내야 하고 언급되어야 할 단어가 아닌가 싶다.

 

 <밤이 선생이다>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문장 속에 황현산 선생님의 사려 깊음과 유연한 사고가 묻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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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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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리스마스에 하루 종일 집에서 읽은 책이 바로 이 책 <기생충 제국>이다. 지대넓얕 방송에서 추천하는 내용을 듣고 재미있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표지에 커다란 두 발을 들고 서 있는 벌레 같이 생긴 기생충(으로 추정되는..)을 보니 한동안 읽기가 망설여졌다. 반납일이 다가왔다는 점이 아무래도 제일 큰 이유지만 그래도 막상 손에 쥐고 보니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이 숙주를 어떻게 빼먹는지에 관한 기상천외한 막장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생충은 그저 관용어구를 통해 쓰이곤 하지만, 예전에는 그들과 인간들이 훨씬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동물이나 식물, 곤충들 속에 엄청난 수의 기생충들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예전에 비해 덜할 뿐, 인간 안에 많은 기생충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오래되었고 아마 인간보다 더 오래 이 땅을 살아갈 것이다.


 기생충들은 숙주의 몸에서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이 숙주의 몸으로 들어오기 위해, 몸으로 들어와서 영양분을 빼앗아 먹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보면, 기생충이 단순하다거나 게으르다는 표현은 부적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몸 속에 갈고리촌충은 우리 장 속에서 항문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영양물을 섭취하기 위해 장 속에 부위마다 다른 속도에 맞춰 어느 부분은 빠르게 어느 부분은 느리게 음식물이 들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 몸 속에 있는 갈고리촌충이 커지면 18m까지 커질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어떤 기생충은 면역체계를 교란시키기 위해 몸 속에 물질을 가져와 위장하기도 하고, 적혈구 안에 숨어 들어가 적혈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생충은 자신이 물가로 가기 위해 중간숙주를 물가로 가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도록 뇌에 세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시켜 겁을 상실해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기 쉽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온 여러 사례들을 보면 기생충은 멍청하고 게으르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섭도록 교활하고 치밀하다.


 이런 기생충들이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기생충들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고 한다. 특히 환경오염 등으로 생태계가 파괴된 요즈음, 황소두꺼비 같은 외래종이 토종 생물을 위협하며 번식할 때 기생충은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생태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외래종의 수를 기생충이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외래종의 수를 줄여주지만 토종 속으로 들어가 아예 둘 다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모든 경우에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끔찍하게 여기는 기생충들이 자연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라는 점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기생충학자들은 기생충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애인으로 여기기도 한다니 재미있었다. (중간에 사진이 있는데 내 눈에는 연쇄살인마처럼 흉악하게 보였다.)


 또한 진화와 관련해 기생충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놀라웠다. 기생충에 조금이라도 덜 감염되기 위해서 최대한 다양한 종을 유지해야 하고 이로 인해 양성이 생겨났다는 의견과 이를 입증하는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여러 동물들이 기생충을 피하기 위해 진화한 사례들도 신기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생충이 없는 자연과 있는 자연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하루 종일 기생충을 떠올리며 보낸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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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
정철진 지음 / 아라크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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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쭉 궁금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본”의 정체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저자의 글에서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자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독자들의 예상과 같이, 자본은 어떤 세력일 수도 자본주의 시스템일 수도 있지만 그 세력에 대해서 정확히 밝히지 않겠다고 되어 있어서 약간 벙찌고 말았다. 이 책에서 제일 많이 나온 단어일 텐데,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겠다니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자본”을 의인화해서 사용하길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어떤 0.000001% 정도 되는 극소수 부유층을 겨냥하는 말인가 여겼고, 되풀이해서 의인법이 사용되니 오히려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거의 확신하며 읽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주식이나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 책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미국 경제도 무너질 것이고 중국이 앞으로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할 지도 알 수 없다는 전망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고 디플레이션 이전에 그만큼 큰 슈퍼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흥미로웠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세계적인 슈퍼 대공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금을 미리 사두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지방에 조그마한 농장을 마련하는 것도 방책이 될 수 있을 거라 소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모든 것은 ‘자본’의 손아귀에 춤을 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인 자본은 주식시장에서도 어떤 종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거나 절대 손해 볼 일이 없고, 자본은 은행들을 자신의 행동대장으로 내세워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다. 환율이 오르거나 내리거나, 유가가 상승하든 등락하든 자본은 어떤 피해 없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할 것 같은데, 자본이 문맥상 때로는 극소수 부유층으로 다른 때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읽히므로 자본이 진정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고 이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우리 나라 관점에서 경제 전반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무조건 돈이 생기면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등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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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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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날개에 실려 있는 작가 소개글에 작가가 ‘목소리 소설’을 창시했다고 해서 이것은 또 무슨 장르인지 궁금했는데, 내가 보기엔 인터뷰 모음집과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다만,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 숨겨져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이 이 책을 여느 인터뷰집과 구별해준다.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도 없었지만, 러시아 여성들이 이렇게 많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엄청난 사상자가 났다는 사실은 러시아 역사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상자 숫자에 0이 너무 많이 붙어 있어서 일십백천만.. 하면서 세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러시아 사회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여성들(그것도 열여섯, 열입곱의 어린 소녀들)이 어떻게든 전쟁으로 나가기 위해, 나아가 전방으로 가기 위해 입대를 거부하는 군정치위원회를 제 발로 찾아가는 모습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원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어떻게든 전쟁터로 나아갔고 그곳에서 남성들도 하기 힘든 여러 보직(저격병, 통신병, 위생사병, 간호병, 고사포병, 지뢰제거병, 세탁병 등등..)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그들도 예뻐 보이고 싶어하는 여성이었고 어쩔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이힐과 원피스 차림으로 입대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행군 중에 생리가 터져 바닥이 피로 물들고 피가 얼어 살을 베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같은 여성일지라도 제각기 다른 개개인이어서 개인마다 저마다의 전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들은 전쟁 이후에 받은 훈장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아예 버렸다고도 했다. 또 어떤 여성은 전쟁의 참상을 작가에게 열심히 토로한 후, 나중에 정리한 글을 보내주자 언제 이런 내용을 이야기했냐며, 대조국 전쟁은 신성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모두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도 한다. 아마 스탈린 체제 하에서 애국심과 공산주의는 개인의 목숨, 가족의 목숨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할 가치였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난 후 남편이 돌아왔지만 독일군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사상을 의심받아 바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일화는 무척 억울하게 느껴졌다. 스탈린은 포로로 잡힐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며 포로가 된 자기 아들도 내버렸다고 한다.


 그 밖에도 자기 가족들이 포로로 잡혔지만 마을 주민들을 위해 가족들의 목숨을 저버린 가장의 일화나 엄마가 포로로 잡혀서 독일군들이 엄마를 방패막이로 내세웠는데 독일군을 쏘라는 지령이 떨어져 엄마를 쏠까봐 괴로워하는 여성의 일화가 무척 끔찍했다. 그리고 전쟁 이후 피 냄새를 맡지 못해서 장을 못 본다거나 빨간색 옷도 못 입는다는 이야기, 전쟁 이후 돌아왔더니 아들이 엄마를 ‘아빠’로 착각했다는 이야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토록 용감한 여인들이 전쟁이 끝난 후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았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전쟁에서 여성들의 사랑을 다룬 챕터를 보니 직급이 높은 남성들이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일부 여성들은 처자식이 있는 남성과 관계를 맺은 것도 같다. 물론 전쟁 중에 성폭행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극소수의 여성들이 매춘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여성들이 스스로의 과거를 감추고 부끄럽게 여기라는 식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만약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러시아 사회의 여성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물론 그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조국을 위해서라도 공산주의 이념과 스탈린 동무를 위해서라도 내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바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어쩌면 전쟁기간 내내 숨어 있다가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여성 동지들을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르겠다. 참전한 여성으로서 느끼는 전쟁의 참상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알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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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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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장르는 범죄소설이며, 주인공이 모두 가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4개의 단편이 모두 재미있지만 그 중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이 개인적으로 더 맘에 들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 꽤 두꺼운 분량이다. 총 600페이지가 넘으니..)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의 공통점이라면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점이다. 그 두 사람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여느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소소한 일상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빅 드라이버>의 주인공은 강간범을 만나게 되어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의 주인공은 자상하고 평범한 자신의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런 극적인 사건 혹은 계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힐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읽고 있는 독자 자신도 언제 그들과 같은 갈등 상황에 직면할 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끈다. 그들이 아무리 살인마를 죽였다 할지라도 살인이라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을 텐데, 어쨌든 이야기를 따라가며 주인공이 안전하길 기원하게 되고 마지막에 살인을 할 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결론도 그저 그들의 범죄 사실을 알지만 또한 그들의 살해 동기를 이해하는 다른 인물이 나타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끝난다.


 킹 역시도 마지막에 저자의 글에서 심각하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일들을 재미있게 다루려고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것이 어딘가 찝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읽는 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될 지 상상하면서 말이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다든가, 붙잡히지 않아도 영영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진 못할 것 같다.)


 두 단편보다도 세 번째 단편 <공정한 거래>는 더욱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끝나버린다. 암에 걸린 주인공은 해 질 무렵 고속도로 휴게실 뒤 주차장에서 무엇이든 연장해 줄 수 있다는 어떤 남자와 거래를 하게 된다. 그 거래는 자신의 삶을 15년 정도 연장하는 대신 연 소득 10%와 그에 맞먹는 불행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거래의 내용 중 무언가 지키지 않아서 끔찍한 비극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주인공은 평소 시샘하던 잘나가는 베프의 몰락을 지켜보며 만족과 행복을 만끽한다. 잘나가는 베프와 그 가족들은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마음의 병을 얻는 반면 주인공은 승승장구하며 살고, 몇 년 후에 그는 다시 그 고속도로에 가서 마지막 소원을 비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스티븐 킹은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그냥 자기 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편하고 재미있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단편을 읽고 어째서 끝날 때까지 죄 없는 베프와 가족들이 (설령 베프는 주인공이 약 오를 만한 여지를 줬을지도 모르겠다만 가족들은 무슨 죄인지..) 끊임없는 불행을 겪고, 주인공은 티끌만큼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또 마지막 소원은 무엇인지 그 때문에 결국 주인공이 망하는 건가! 싶었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관계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흑..)


 첫 번째 단편은 이 소설집에서 개인적으로는 제일 별로였다. 자신의 땅을 지키려 의견차이가 나는 아내를 아들과 함께 죽였지만 그 후 아내의 시체와 쥐들에게 시달리는 남편의 이야기다. 웃고 있는 듯 피 흘리고 죽어 있는 아내의 시체를 우물에 매장시켰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아들은 엇나가고 마침내 아들마저 임신한 어린 연인과 함께 강도질을 하다 죽게 된다. 땅을 지키려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땅마저 잃게 되고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아들과 한 쪽 팔마저 잃고 이 사실을 적어 내려가다가 정신 착란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쥐에 뜯겨 스스로의 목숨도 잃는다는 내용이다. 묘사가 무척이나 끔찍한 데 비해 킹이 추구하는 재미도 그다지 없고 생각할 여지도 별로 없어서 아쉬운 단편이었다.


 그래도 스티븐 킹의 단편집에는 생생한 묘사와 실제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맘껏 매력을 펼치고 있다. 특히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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