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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의사 하지현이 만나 공부에 중독된 한국 사회와 그 사회∙역사적 원인, 해결방안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나눈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도 얇고 자간도 넓을 뿐 아니라 내용이 흥미로워서 꽤 빨리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애들 공부’에 목매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애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전체 사회구성원이 공부에 집착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 살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반면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사례들을 잘 보여주고, 원인을 짚어내는 부분에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대목이 있었다. (해결책은 아무래도 책에서 풀어낼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한국사회에서 공부는 무섭게 다른 영역들을 식민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부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가르칠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되지 않던- 실용음악이나 커피, 네일아트와 같은 영역들이 모두 체계화∙성문화되어 교육 체제 안에 편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유예하고 있으며 대학원 과정 및 유학 과정 등을 통해 학생으로 교육 과정 안에 머무르는 기간이 연장되고 있다. 이 대담에서도 ‘요즘 애들론’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는 한 편, 어떤 부분은 조금 수긍하기 어려웠다.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을 유예하고 있다는 점은 맞지만, 실제로 취업 현장에 나서는 게 두려워서 공부로 도피한다는 내용은 일부의 사례를 확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요즘 멘탈이 약한 친구들이 많으므로 어떻게 보면 군대를 무사히 다녀왔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멘탈은 가지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는 하지현 선생님의 말씀은 아무리 군대 문화가 좋아졌다고 해도 긍정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으로 한국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일종의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486세대까지는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잘 나온 경우 무리 없이 취직하여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부 잘하는 것만으로는(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아직까지 많은 부모들이 그 길밖에 모르기 때문에, 또는 알면서도 그보다 나은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아이들 공부에 목매달고 있음을 개탄한다.
이 출구 없는 공부 지옥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막차를 태워 보내려 아등바등하지 말고, 스스로의 삶, 노후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또한 변질된 공부가 아닌 아는 것이 즐거워서 스스로 하는 공부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읽은 지 조금 지난 후에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라 책의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해 주시길. 좀 더 많은 사례와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지금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쉽다. 지금 교육 과정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식이나 가족, 친구, 연인이 학생이라면(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일 듯..)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것인지 등 떠밀려서 하는 것인지 원래는 공부라는 영역 밖에 있었던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