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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평점 :
초롱초롱한 눈망울 80개가 나를 주목하는 순간, 이 순수한 영혼들 앞에서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교무실까지 걸어왔고, 아이들이 나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와서 내 등을 치면서 다시 "선생님, 불러도 왜 대답 안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선생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정말 야릇한 기분이었다.
『내 생애의 아이들』은 지은이 가브리엘 루아의 20대 초반 교직생활을 회상한 자전적 소설이다. 입학한 첫날, 학교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 빈센토가 선생님을 발로 찬 이야기, 상심을 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이야기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와 가끔 일어나는 사소한 신경전과 그 후의 화해를 떠올리게 했다. 교사는 아이의 작은 반응에 울고 웃는다.
신참인 선생님이 자신의 수업에 대해 발전적인 고민에 빠졌을 때, 클레르의 정리 잘된 공책은 그녀에게 큰 기쁨과 격려를 던져 주었다. 비록 클레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방학식 하는 날에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께 드리지 못하여 맘 상해 하지만 선생님은 그 이상의 선물을 이미 받은 것이다. 공책검사를 했을 때 정말 잘 정리된 공책을 보고 감탄하며 기쁨을 느낀는 것은 나도 경험해 보았다. 성탄절에 많은 양의 눈을 헤치고 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리기 위해 달려온 클레르의 마음씨도 정겹다. 비록 그 선물이 보잘 것 없는 손수건일지라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클레르와 같은 아이를 보면 작은 기쁨이 된다. 수업이 정말 엉망으로 끝나버리고 돌아나오는데 "선생님 목 아프시죠?"하면서 목캔디를 내미는 아이가 떠올랐다. 또 강아지똥에게 편지쓰기를 하는 활동에서 '별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듯이 강아지 똥도 그렇다'고 위로하는 내용을 보고 아이들은 역시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위로해 줄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닐을 보면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유경이가 떠올랐다. 드미트리오프를 읽으면서 흔히 교실에서 발견되는 학교부적응아, 학습부진아를 떠올렸고,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이 가장 큰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메데릭을 보면서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다소 매력이 있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메데릭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녀도 메데릭을 좋아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이성으로 대해도 될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내 마음을 끈 작품은 「집보는 아이」였다. 가난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어른스러운 아이, 앙드레는 나에게도 인상 깊었다. 주인공 선생님은 학교를 마치면 지평선 끝으로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에서의 생활과는 다른 가정의 생활을 궁금해 한다. 바디우집의 초대를 받고서 자신이 매일 바라보던 그 지평선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면서 가난한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눈으로 보게 된다. 그 중에서 늘 피곤해하는 아이 앙드레. 그 아이의 집은 정말로 먼 거리에 있었다. 겨울이 되자 앙드레는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된다. 집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궁금해진 그녀는 앙드레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앙드레는 집안 일의 무게에 눌려 있다. 그러나 앙드레는 그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고단한 중에도 공부를 배우려고 애쓰는 앙드레는 그런 와중에도 동생 에밀을 걱정한다. 자신에게 처해진 가난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앙드레를 보며 그녀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지만 학교생활을 잘 하는 아이에게는 묘한 동정심 같은 것이 생긴다. 주인공 선생님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절제되어 있다. 그 동정심이 그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리라. 모든 아이들이 다 앙드레와 같지는 않아서,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 때로는 반항하고 자포자기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본다. 그 옆에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선생의 자리인 것 같다.
이 책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주로 선생님이 주인공인 소설은 선생님의 가슴 뭉클한 교육애가 돋보이는데 이 책은 너무나 사소한 이야기라서 처음에는다소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 사소함이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