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세
이순원 지음 / 세계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19세', 심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는 짐작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했다. 역시 기대가 빗나가지 않았다. 너무나 솔직하게 청소년기 남학생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것에 놀랐다. 사실 99년부터 중학교 남학생들을 가르쳐 왔는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성'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 집착을 성장기의 한 과정임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인공 정수는 평범한 남자 중학생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공부는 좀 하고, 자신의 주장이 강한 아이이다. 정수도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이 경험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정수가 경험한 사춘기는 다른 아이들보다 좀더 강도가 세다. 자신의 몸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여자들의 거기에 털이 났을거라고 당연한 사실을 음밀하게 상상하는 것은 『나는 아름답다』에 나오는 주인공 남선우가 여자 친구의 가슴에 손을 대어보고 아주 큰 가슴에 짓눌리는 꿈을 꾸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중학교 때인가 텔레비전에서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보고 그 장면이 며칠동안 나의 머리에 박혀 문득문득 떠오른 경험이 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한 책은 처음 대한다. 그리하여 이 호기심의 끝이 어떻게 될까, 무엇이 이 호기심을 잠재우는 계기가 될까 무척 궁금했다. 결국 정수는 성적으로 어른이 되는 경험을 하기에 이르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달리 후회와 큰 죄의식을 가진다. 후회와 죄의식이 정수가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힘이 되었다는 점에서 굳이 인생의 오점이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대가는 톡톡히 치러진 것이다. 이 책이 적나라하기까지 솔직한데도 불구하고 청소년 권장도서인 것은 아마도 성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끝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성장해 나가는 일부로 다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청소년기에 가지는 꿈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의 꿈은 현실성이 좀 부족한 꿈이었던 것 같다. 정수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 형과는 다른 꿈을 꾼다. 대관령 너머에 빨간 지붕을 한 별장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겠다는 꿈을 가진다. 농군의 삶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아는 부모님은 그 꿈을 반대한다. 결국 정수는 열일곱에 농군이 된다. 5천 평 배추밭의 농군이 된 정수. 어른인 농군들과 같이 농사짓고 다방에도 가보고. 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보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술집도 가고, 그 해 배추농사는 대풍을 이루었고, 그 다음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 이루었다. 그러나 2년의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일찍 어른이 되면서 놓친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학교로 돌아온다. 정수는 그런 결단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아이였고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계셨다. 나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볼 때,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춤', '노래', '그림'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 노파심이 발동한다. 정수처럼 스스로 바른 결정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
누가 청소년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했다. 깔깔거리다가도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는 아이들. 철없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가도 한번씩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들. 정말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은 아이들. 때로는 반항적인 말투와 머리, 옷 맵시가 나의 눈에 거슬리더라도 조급하게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어른의 따스한 시선을 가져 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