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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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설화, 가족이나 남성. 가부장과 엮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구슬프고 장황하다. 안젤라 미영 허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 미국, 스웨덴의 국가와 국제입양, 재미교포, 아시안여성들의 고충, 아시안 인종차별에 대해 오컬트, 판타지, 드라마를 엮은 600쪽짜리 소설을 완성했다.

엘사 박은 본래 남극기지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부모님은 본래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남향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왔다. 어머니는 항상 알 수 없는 말을 하시고, 아버지는 폭력적이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를 원망하고 쓸모없는 자식이라고 하고, 어머니는 넌 날 닮아서 질기고 독하다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종종한다.

이 가족들은 어머니가 엘사의 언니, 크리스의 둘째 즉 두 부부의 둘째아이, 첫째딸을 잃고 실성하여 자기자신도 서로도 챙기지 못한다. 엘사는 어떻게든 부모님과 오빠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14살때 집을 나섰고, 오빠가 탈출하라며 대학을 보내줬음에도 집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는 항상 "니 언니", "그애는 내 딸이 아니야"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곤한다. 어머니는 유학을 보내기 전 엘사와 작별로 목욕탕을 갔다가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셨고 얼마 후 쓰러지셔 병원으로 옮겨지셨다. 이후 16년동안 요양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엘사는 자신이 모르는 출생의 비밀과 한국계 아시안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들의 출처에 대해서 알고싶어하고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는 숨겨진 '언니' 에 대해 지독하게 파기 시작한다.

엘사의 마음속에 있는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파괴적 자기비하, 그리고 그 집안의 출신, 인종에 대한 열등감, 인종차별에 대한 공포와 실제 사례들은 미국, 스웨덴 인종차별, 출신차별의 현실을 교묘히 보여준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 이라고 하지만, 기타 인종보다 동아시안 사람들은 '칭챙총' 등의 소리를 들으며 비하를 받고 성희롱을 당하는 등 힘든 고충들을 겪는다. 현실에서 겪기 싫을 정도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겪는 이 고충들은 자세한 묘사들 덕에 숨이 턱 막힌다.

작가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겪어왔던 고충을 한국 설화들과 오컬트, 판타지로 엮어 그 고충을 드러낸 듯 하다. 나는 이런 설화들을 미국에서 자라면서 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자기 출신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지식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안타까운 현실들은 아마 수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소히 국뽕이라고 나쁘게 불리지만, 밖에 나가면 한민족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론 아무도 못건들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차별의 실태, 여성의 비극대물림 서사 등을 빠짐없이 실어준 모습에 '이 소설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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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이 놀랍지만, 결국 우리의 만남은 데이트가 아니었으니. 이것은 동병상련, 즉흥적 치료, 어둠 속의 고백, 백인들이 주변에 없을 때 소수자들이 나누는 이야기다. 이래서 내가 아시아인 남자와 사귀지 않는 걸까. 아시아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쉽게 폭발한다. 서로의 분노를 메아리처럼 반복하게 되니까. 부모의 헛짓거리를 반복하고 그들의 조져 버린 관계를 재현할까 봐. 사랑보다는 승인과 성취를 쫓는 아이들을 키울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까. _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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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가 600쪽 조금 넘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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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트 - 내 삶의 강박과 불안을 무너뜨리는 삭제 기술
북토크(이찬양) 지음 / 시그니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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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기, 일찍 출근해서 무조건 그날안에 업무완성하기, 감사일기 쓰기, 새벽에 런닝하기 등등.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부지런히 살면 무조건 잘 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내가 너무 에너지를 쏟는 일에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앞으로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이른바 '딜리트' 기술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오랫동안 해온 루틴에 갑자기 무언가 끼면 혼란스럽고 결국 작심삼일일때가 많다. 운이 좋으면 그러려니 하지만 대부분은 자책이며,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무언가를 배웠었거나, 시도했는데 그것을 실무에서 한번도 써먹은 적 없을때도 그랬다. 사실 재미로 배울수도 있고, 그 자체가 자기계발일 수도 있는데 완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자기계발을 억지로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 책을 보고 따라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아 무리가 가고, 보통은 따라하기 힘든걸 알기 때문에 결국 그런 책들은 포기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덜' 하는 법을 배우고 '더,더,더.'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기 보단 제시간에 일어나 루틴을 지키고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사실 건강에도 효율성에도 좋은 이야기다. 


새벽에 일어나는 자체보다는, 작은 것을 해내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의 루틴이 시작되고 새로운 일정이 생기면 조화롭게 사는 등 '딜리트'의 기술을 실천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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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유형의 "더,더,더"는 SNS에서 끊임없이 강화된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새벽 4시 기상 류틴"이 뜬다. 유튜브를 켜면 "하루 16시간 일하는 CEO의 하루"가 추천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잠을 줄이고 더 오래 일해야 할 것 같다. 어디 이것 뿐인가. "N잡러 되는 법" 이라는 콘텐츠도 넘쳐난다. "부업 5개 하는 직장인" 같은 이야기가 알고리즘을 타고 크게 화제가 된다. 이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본업만 하는 나는 잘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콘텐츠들이 마치 '성공의 유일한 공식'처럼 포장된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성공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야 뒤쳐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해야 인정받는다 등등... 문제는 거기에 생존자 편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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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알려주는 세상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 검정프레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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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삽빠르고 약오르는 현상 혹은 행동을 보고 '고양이 같다' 혹은 그런 고양이에게 '고양이답다' 라고 말한다. 강아지에 비해 '요물', '요괴' 라고 불리는 고양이는 '개같다' 라는 욕보다 더욱 억울한 누명이 많다.


옛날 사람들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무속신앙 등의 알 수 없는 믿음들이 있어 요괴들렸다며 누명을 씌었다. 고양이가 생선을 먹고 숨고 점프하고 물건을 부시는 것은 인간이 거기에 놓았을 뿐 고양이는 죄가 없다. 


냉정하게 말해 고양이가 하는 행동을 강아지가 하면 '귀엽다', '사랑스럽다' '잘 모르는구나' 하고 넘어간다. 


우리가 동물의 행동을 규정할 때는 보통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을때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을 비하해 말하며 적용하고 동물들의 행동을 사람을 통해 비하하는 것이다.


동물은 죄가 없다. 요즘은 다행히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생명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인간이 없는 곳에서 동물들의 서식지가 늘어나고 멸종위기에서 개체수가 전보다 늘어날 때 '역시 사람이 잘못됐구나' 하고 깨닫는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아니어도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의 행동은 사람의 잘못으로만 규정해야 한다.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게 익숙치 않고 학습되어 버렸지만, 노력하면 내 행동 자체, 그 사람 행동 자체를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치만 '개같다' 라는 말을 한 번에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무슨말로 대체할까... 개도 고양이도 비하에 익숙한 우리 때문에 이렇게 억울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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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카와이가리'


또 고양이에게 안 좋은 말이다. 

"저 사람 뭐야, 오냐오냐만 하고"

이럴 때 내코카와이가리 라고 쓴다. 절대로 고양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 그것도 얄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거기에 일부러 고양이를 끌어들여서 고양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책임 전가는 아니지만, 고양이가 뒤집어 쓴 흙탕물을 긁어서 '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말을 너무 복잡하게 돌려서 한다. 


+ 네코카와이가리 : 잘못해도 혼내지 않고 오히려 더 예뻐하는 것. 


이렇게 나온다. 전국의 어머님들, 대놓고 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어머님이 이대로 실행한 결과 아이들이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고양이가 자기 자식을 오냐오냐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인간이 아니니까 새끼 고양이가 태어났을 때는 동물의 본능대로 잘 돌보지만, 제 구실을 할 정도로 자라면 확실히 떼어서 독립시킨다. 그때부터는 내 알 바가 아니라면서 자기 혼자 명상에 빠진다. 


인간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혼자 명상에 빠질 수 없으니 언제까지고 아이에게만 얽매이다가 어느 순간 오냐오냐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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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보던 중, 노년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는 설명을 봤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까 너무 좋아서 기대했는데 전작을 보기로 한다. 검색해보니 이보다 귀여운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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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피해자 -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
곽아람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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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스토킹을 당해 2021년에 인지했다. 몇년에 한번 꼴로 출소하는 가해자가 두려워 계속 공판을 진행했으나 공무원들의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무책임으로 애가 타버린다. 


실제 조선일보 기자인 곽아람 저자는 남들보다 이 일을 더 폭로할 수 있고, 기사화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 중에서도 능력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미 거기서부터 우리의 분노는 폭발한다. 우월한 피해자라니 그 무슨말인가. 결국 '탁월한 피해자' 에는 동의하게 된다.


법적으로 호소해보지만 '(가해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경찰은 서로 업무를 안맡을라고 서류를 돌려보고, 검찰은 계속 핑퐁업무를 한다. 판사는 구형을 적게주며 변호사는 시큰둥하다. 내일모레 당장 가해자가 나오면 목숨이 없을 수도 있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듯하다. 


다행히 여러 귀인들이 나타났다. 거의 성폭행 피해자 모임의 회원들이었으며 그중엔 김세희 변호사, 부산 돌려차기 범죄피해자 김진주씨도 있다. 모 기자를 소개받아 <사건반장> 에서 목소리변조로 모든 이야기를 꺼냈으며, 서류 돌려치기를 하던 공무원들은 말을 바꿔 "누락된 걸 확인했다, 전자발찌 착용이 확정됐다" 고 말을 바꾼다. 


목숨이 달렸는데 법이 너무 부조리하다고 하면 관계자들은 말한다. "법쪽이 '원래' 그래" , 그 '원래' 라는 말엔 내 목이 잘릴듯한 잔인한 의미가 숨어져 있다.


지인들은 모두 이 일로 책을 쓰거든 '취재가 시작되니~' 라는 문구를 꼭 문구 앞 쪽에 실으라고 이야기한다. '취재가 시작되니 태도가 바뀌었다' 는 전국민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항상 공공제가 되며, 심각한 범죄에도 '피해자가 죽음으로 마무리 되어야' 법적 해결이 빨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입으면 "확 유서쓰고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무려 죽음만이 나의 피해를 증명해주니까.


죽기 전의 내 인권은 어디로 간 걸까? 살아있는 상태가 제일 소중한 거 아닌가. 싸늘한 죽음으로 날아간 생명보다 살아있는 지금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려라 혹은 최후의 보루로 외국에서 살아라라고 하는 사람들. 이 일에 마치 내가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감당해줄 것처럼 강요하는 사람들. 


외국 사람들 왈, "한국은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해" 특히 검찰개혁으로 수사권이 좁아지면서 가슴 졸이는 피해자들은 더 위기에 빠지고 가해자들은 환호한다.


윤석열 사태로 검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환호만 하던게 절대 좋은게 아니란걸 알았다. 없애고 축소하기만 하기보다는 업무를 주는데 과도한 의무과 권리를 인식하고, 좀더 투명한 방법, 자기 책임을 확실히 하는 방법으로 조금씩 굳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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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변경 축하해요"

다라 씨에게 연락해 소식을 전하자 진주 씨가 즉각 톡을 보내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다라 씨한테 들었구나? 축하 고마워요."

"신나서 카톡하셨어요. 너무 잘됬다고. '취재가 시작되자' 마법. 이거 기자님 책에 넣어야 하는데. 꼭 넣어야 해요. 이게 증빙이에요. 사법부건 어디건 독립적이라 주장하는데 언론에 보도되면 태도가 바뀐다는 게 애초에 모순이라고 봐요. 봐 봐요. 변호사들이 언론에 보도되면 수사기관이랑 법원이 싫어한다고 난리 쳐도 결국 바꾸려면 언론 밖에 없음."

"정말 화나는 게 내 말은 듣지도 않다가... 나도 기자잖아 나도 기자고 나도 기사 쓸 수 있는데 왜 내말은 안들어?"

"피해자는 공신력이 없거든요 아무리 기자라 해도, 똑똑한 서울대 과탑이라고 해도. 피해자면 그냥 민간인이에요. 피해자는 항상 제정신 아니고 울고불고 우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 말은 공신력이 없어요. 기자님도 앞으로 나라가 싫어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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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감각 - 디자인은 어떻게 도시를 움직이는가
김지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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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을 허물고 새 것만 추구하는 한국에 비해, 런던에선 옛것을 보존하고 새것과 조화롭도록 연결한다. 함부로 무언가를 철거하지 않으며 최대한 보존하려 노력한다. 헨리 8세부터 설치한 거리의 우체통은 어느 왕때 설치되었냐에 따라 코드가 적혀있으며 조지 5세, 7세,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등의 다양한 시대 우체통이 있다. 최근 뉴스에서 영국에서 마지막 공중전화를 해체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지막 공중전화 박스는 버려지지 않고 박물관에서 전시한다는 내용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처럼 남의 나라 것들이 가득하지만, 옛 것의 건축물과 조화로운 현대 디자인들은 다른 유럽 나라들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영국의 새로운 디자인들은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게 아니라 유에서 더 큰 유를 창조한 듯 했다. 일상에서 보는 모든 물질적 요소가 재료이자, 소재였고 어느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무조건 0에서 시작한게 아니라 시대의 조화로움을 선택한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새 것만을 추구한다. 건축학 유현준 박사의 말처럼 재개발에 미친 DNA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업적 목적, 부동산 재벌들을 위해서는 포크레인 한번이면 가차없이 밀어버린다. 우리는 각박한 시대로 갈수록 오히려 낡은 것을 추구할 것이라 본다. "요즘 세상은 이렇구나" 를 떠올리면 답답하니 "그땐 그랬는데" 혹은 "그때는 참 정이 많은 시대였구나" 하고 과거의 역사, 추억을 되세기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겨진 옛것의 보존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옛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면 보존할 추억도, 생각할 거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든 옛것이 거리가 아닌 박물관에만 있으면,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고 기억할 거리도 점점 멀어져간다. 


나는 얼마전 책에 나온 (<무거운 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 시작하면서, 보통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는 내용. 마치 그것처럼 추억도 나와 멀어질수록 현실에서 기억할 소재가 없어 과거가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 좋아진 세상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게 되지 않을까?


남겨두자, 그들처럼. 나는 충분히 한국 사람들이 그것을 허물지 않아도 잘 보존하고 알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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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면 나오는 트렌드 보고서에는 이런 단순한 논리가 깔려 있다. 트렌드의 예측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나타나는 현상은 양극화이다. 불안정할수록 양극화는 심해진다. 진정성을 의심하며, 공정성에 목마르고, 전통적인 것과 보통의 것들에 눈을 뜬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을 회복해줄 거란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억으론 사회는 단 한 번도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다. 늘 불안했다. 불안정의 구간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벗어나 평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급기야는 세상과 조율에 들어가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은 우리를 더 작은, 자기만의 세계로 응축하게 만들고 내적 세계로 수렴하게 한다. 불안이 종식되는 그날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기세로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반면에 미래의 낙관적 희망은 새로운 기술의 열망과 전통 가치에 대한 애착을 품은 채 끝없이 확장된다. _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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