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피해자 -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
곽아람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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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스토킹을 당해 2021년에 인지했다. 몇년에 한번 꼴로 출소하는 가해자가 두려워 계속 공판을 진행했으나 공무원들의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무책임으로 애가 타버린다. 


실제 조선일보 기자인 곽아람 저자는 남들보다 이 일을 더 폭로할 수 있고, 기사화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 중에서도 능력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미 거기서부터 우리의 분노는 폭발한다. 우월한 피해자라니 그 무슨말인가. 결국 '탁월한 피해자' 에는 동의하게 된다.


법적으로 호소해보지만 '(가해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경찰은 서로 업무를 안맡을라고 서류를 돌려보고, 검찰은 계속 핑퐁업무를 한다. 판사는 구형을 적게주며 변호사는 시큰둥하다. 내일모레 당장 가해자가 나오면 목숨이 없을 수도 있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듯하다. 


다행히 여러 귀인들이 나타났다. 거의 성폭행 피해자 모임의 회원들이었으며 그중엔 김세희 변호사, 부산 돌려차기 범죄피해자 김진주씨도 있다. 모 기자를 소개받아 <사건반장> 에서 목소리변조로 모든 이야기를 꺼냈으며, 서류 돌려치기를 하던 공무원들은 말을 바꿔 "누락된 걸 확인했다, 전자발찌 착용이 확정됐다" 고 말을 바꾼다. 


목숨이 달렸는데 법이 너무 부조리하다고 하면 관계자들은 말한다. "법쪽이 '원래' 그래" , 그 '원래' 라는 말엔 내 목이 잘릴듯한 잔인한 의미가 숨어져 있다.


지인들은 모두 이 일로 책을 쓰거든 '취재가 시작되니~' 라는 문구를 꼭 문구 앞 쪽에 실으라고 이야기한다. '취재가 시작되니 태도가 바뀌었다' 는 전국민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항상 공공제가 되며, 심각한 범죄에도 '피해자가 죽음으로 마무리 되어야' 법적 해결이 빨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입으면 "확 유서쓰고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무려 죽음만이 나의 피해를 증명해주니까.


죽기 전의 내 인권은 어디로 간 걸까? 살아있는 상태가 제일 소중한 거 아닌가. 싸늘한 죽음으로 날아간 생명보다 살아있는 지금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려라 혹은 최후의 보루로 외국에서 살아라라고 하는 사람들. 이 일에 마치 내가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감당해줄 것처럼 강요하는 사람들. 


외국 사람들 왈, "한국은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해" 특히 검찰개혁으로 수사권이 좁아지면서 가슴 졸이는 피해자들은 더 위기에 빠지고 가해자들은 환호한다.


윤석열 사태로 검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환호만 하던게 절대 좋은게 아니란걸 알았다. 없애고 축소하기만 하기보다는 업무를 주는데 과도한 의무과 권리를 인식하고, 좀더 투명한 방법, 자기 책임을 확실히 하는 방법으로 조금씩 굳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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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변경 축하해요"

다라 씨에게 연락해 소식을 전하자 진주 씨가 즉각 톡을 보내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다라 씨한테 들었구나? 축하 고마워요."

"신나서 카톡하셨어요. 너무 잘됬다고. '취재가 시작되자' 마법. 이거 기자님 책에 넣어야 하는데. 꼭 넣어야 해요. 이게 증빙이에요. 사법부건 어디건 독립적이라 주장하는데 언론에 보도되면 태도가 바뀐다는 게 애초에 모순이라고 봐요. 봐 봐요. 변호사들이 언론에 보도되면 수사기관이랑 법원이 싫어한다고 난리 쳐도 결국 바꾸려면 언론 밖에 없음."

"정말 화나는 게 내 말은 듣지도 않다가... 나도 기자잖아 나도 기자고 나도 기사 쓸 수 있는데 왜 내말은 안들어?"

"피해자는 공신력이 없거든요 아무리 기자라 해도, 똑똑한 서울대 과탑이라고 해도. 피해자면 그냥 민간인이에요. 피해자는 항상 제정신 아니고 울고불고 우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 말은 공신력이 없어요. 기자님도 앞으로 나라가 싫어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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