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전집 12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199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네이버 지식인을 보다 이런 질문을 보았습니다. "책(Book)과 텍스트(Texte)의 차이가 뭐죠?"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은 이런거였습니다.

"북은 말 그대로 책이죠, 글구 텍스트는 문자입니다..텍스트를 적절하게 편집해서 종이에 찍으면 책이 되는 겁니다..."

처음엔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그러는 나는 텍스트의 개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이르러서는 웃음을 거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무식하긴 마찬가지라는 뜻) 어찌보면 텍스트를 문학의 질료로 파악한 답변자는 상당한 기호학의 고수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따로 있는법, 저렇게 단순한 질문일수록 명쾌한 답변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프랑스기호학자의 도움을 얻는수 밖에요. 난해해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텍스트란 개념을 만들어낸 당사자니까요.

바르트는 텍스트란 개념을 만들어내면서 저자의 죽음을 선고하고 독자의 탄생을 선언하였습니다. 고전적 의미에서 전능한 작가의 위치는 텍스트를 해독하는 독자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작품이란 작가가 완성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며 독자들이 접하는 순간 저자의 손을 떠나 새로운 텍스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시대의 작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거대한 사전에서 글쓰기를 길어올려 인용부호없는 인용문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필사자의 역할에 머무릅니다.

텍스트는 다각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성격에 의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비의 대상인 작품과 구분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바르트는 혁명적으로 글쓰기와 글읽기의 간극을 없앤 것인데, 이 개념은  아마추어가 많았던 고전시대의 연주와 감상간에 별 차이가 없었던데 반해 부르조아 청중들의 등장으로 연주자에게 더 많은 역할이 주어진 것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즉, 연주자는 일종의 공저자로 악보를 표현한다기보다 완성하는 위치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죠.

이미 몇년전 1차시기에 실패한 책읽기지만, 이번만큼은 적어도 저자의 난해함에 압도당하거나 주눅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제대로 이해하는데 실패했지만, 텍스트에 관한 한 읽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 만큼은 정확하게 이해했으므로  이 텍스트는 내게 즐거움(plaisir)과 유희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jouissance)과 권태의 대상이었을 뿐이며, 내가 책읽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독자 꼬시기(draguer)에 실패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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