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피 (Sweetpea) - 하늘에 피는 꽃 + 달에서의 9년 EP
스위트피 (Sweetpea)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7년전인가요?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을 처음 보았을때가 기억이 납니다. CD를 구입하긴 했지만 밴드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던 친구와 나는 의심반 기대반으로 작고 음습한 지하 공연장의 계단을 멈칫거리며 내려가다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비오는 오후에 멀리서 들려오는 옆집 소녀의 피아노 소리처럼 불안정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느낌. 어떤 날의 ”오후만이 있던 일요일”을 리메이크해서 연습하던 소리가 공연장 밖으로 흘러 나온 것이었는데, 그 날 이후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델리스파이스의 팬이 되버렸죠.(팬이래봤자, 고작 CD를 꼬박꼬박 사주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지만요)

 

소심한 뮤지션 만큼이나 그날의 관객도 소심해서 박수소리 한번 우렁차게 터진 적이 없었지만, 노래사이의 어색한 침묵이나, 몇 안되는 좌석, 그나마 반 이상 비어있던 자리에도 불구하고  무대와 관객사이에 흐르던 그 친밀한 자장이 아직도 생생이 기억됩니다.

 

그 이후로 한국 록씬에선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델리스파이스는 공연마다 헤드뱅잉을 하는 열성팬들을 몰고 다닐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징징거리는 한국 모던 록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지만, 전 아직도 그날의 조곤조곤했던 포크 쪽에 맘이 기우는게 사실입니다.

 

사실, 저뿐 아니라 적잖이 많은 사람들, 특히 김민규 자신도 밴드의 프론트맨으로서가 아닌 혼자만의 비밀스런 일기 같은 음악을 원했고, 그 독자적인 정체성을 담은 프로젝트가 바로 스위트피였습니다.

 

스위트 피 1집은 정말 소량만 찍힌 바람에 실제로 제가 델리스파이스 공식홈피에 “사례는 달라는 대로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까지 넣어 올렸던 CD구함광고에도 불구하고 팔겠다는 단 한통의 메일도 받지 못했을 정도로 매니아들의 위시리스트에 오른 희귀앨범이 되버렸죠. 이번 앨범엔 보너스로 이 희귀앨범이 특별부록으로 딸려있답니다.물론 새로 피쳐링한 거지만요.

 

굳이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 내는 이유는 스위트피 2집에 여전히 건재하는 김민규의 사춘기 소년적인 감수성과, 찰랑대는 기타리프와 장식없이 소박한 상처받기 쉬운 목소리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입니다. 델리스파이스 1집 이후 전 참 많이도 변했는데 그의 음악은 여전히 그대로군요.

 

중얼중얼대는 가사도 좋고, 산뜻하고 명징하지만 어딘지 우울함이 느껴지는 멜로디도 좋고, 자기 방안에서 녹음했다는 Lo-Fi 사운드도 들을만하군요. 초등학교 때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연주하던 멜로디언의  건반이 꾹꾹 들어가는 소리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구요.

 

단조로운 곡구성과 리메이크 남발등의 이유로 혹자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아니냐고도 묻지만, 전 뮤지션의 음악적 변신이나 테크닉의 발전도 좋지만 데뷔앨범에서의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곡 한곡 트랙을 듣고 있자니 그 여리고 맑은 노래 사이로 대학로의 공연장에 뻘쭘히 앉아 낯선 음악을 경청하던 젊은 시절의 나와, 친구, 우리들의 꿈 그리고 지금의 무기력해진 우리들, 그 사이의 긴 거리가 오롯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다행이건 7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로해주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이죠.

 

참, 다행이야. 그게 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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