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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후 4시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은퇴한 노부부의 한가로운 2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이웃집 남자. 이런 소재로부터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을까요? “에잇 귀찮아, 꺼져버려” 하면 사건 종료되었겠죠. 하지만 아멜리 노통은 그 속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사실, 저조차 처음엔 그 늙은 노인네를 어떻게 처치해버릴지를 에밀과 함께 궁리했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점점 베르나르뎅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에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도덕적 위선자. 겉으로는 이웃집 노인네의 무례한 방문을 거절하지 못하는 점잖은 지식인이지만, 단 두시간의 방해만으로 온 삶의 균형을 잃고 마는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이고, 다른 사람의 삶의 가치마저 제멋대로 결정지어버리는 폭군에 심지어는 살인을 하고도 태연자약하게 합리화하는 철면피입니다. 도대체 에밀은 왜 그렇게 베르나르뎅을 싫어했을까요? 물론 나라도 그런 노인네의 무례한 방문을 참아줄 수는 없었을 테지만, 에밀은 베르나르뎅의 침묵을 통해 자기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점점 본인도 알지 못하던 숨겨진 자아를 찾아내게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분노와 공포를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한 내면을 엿봄으로써 발생긴 극심한 자괴감은 결국 가장 심각한 도적적 폐단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타자를 위한 일인 것처럼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도덕적 당위성을 부여하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가 베르나르뎅을 죽여가면서 지켜내려한 자아는 과연 온전할까요? 이미 유치원시절부터 그만을 사랑하고 존경해오던 아내, 쥘리에트는 에밀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게 되었고, 애제자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었으며, 불면증에도 계속 시달릴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