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꽤 오래 전 채 스무명 남짓도 안되는 관객만이 자리잡은 극장에 앉아 ‘스모크’란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연한 인물들의 만남, 그리고 전혀 별개로 보이는 이질적인 그들의 삶은 모자이크처럼 얽혀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더군요. 마지막 흑백 화면위로 흐르는 톰 웨이츠의 갈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상당한 양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을 정도로 전 꽤나 그 영화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자란 폴 오스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구요.

이런저런 이유로 읽기를 미루다 거대한 괴물을 마침내 읽어낸 제 소감은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 받았던 ‘스모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란 겁니다. 소설 도입에 이미 폭사한 벤자민 삭스의 기이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은 제가 기대했던 종류와는 분명 다른 거였습니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고, 미스터리적인 요소와 냉정하면서도 세련된 문장 떄문에 뒷장이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었단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삭스가 폭사할 수 밖에 없었던 의문이 실타래를 풀면서부턴 맥이 빠지고 만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소설적 작위성이 너무 느껴져서 일까요. 유망한 소설가였던 한 개인에게 뜬금없이 찾아온 성에 대한 혼란과 도덕적 기준의 상실, 무기력,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되어 세상을 향해 공포를 쏘아올리고 자기자신마저 처치해야 했던 모든 동기가….이 모든게 삶의 우연성의 횡포에 휘둘리는 무력한 개인이 처한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이란 설명은 제겐 조각이불을 볼 때처럼 언뜻보면 그럴듯한 그림이지만 들여다보면 서로다른 무늬와 질감이 드러나는 옷감들을 꿰매놓은 바느질 솔기들을 보며 이불자체보단 이불을 만든 사람의 수고와 공에 더 큰 관심을 둘떄처럼 소설속 주인공에게 공감을 느끼기 보단 작가에게 시선이 가게 만듭니다. 대단한 스토리텔링이군! 기발해.

삭스가 느꼈을 혼란과 고통을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던 데도 이유가 있을겁니다. 거창한 제목에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도 있을테구요.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제가 ‘스모크’를 보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소설이란 거대한 괴물에 의해 등장인물들이 파괴되어 버린걸까요?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을 읽어볼 때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보류해두겠습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의 평가따윈 중요할리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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