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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신간 《안녕, 달토끼야》가 곧 출간됩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너무 설레죠. 그동안은 전업 작가가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에요. 그림책을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해왔는데, 욕심이 앞섰던 거 같아요.
사실 어른이 아이들 세계에 들어가서 같이 논다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좀 더 편안하게 그 세계를 공유하고 있어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작가로서 처음 표현한 거라 굉장히 설레는 마음이고요. 막상 다 하고 나니까 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02 《안녕, 달토끼야》는 기획하시게 된 계기가?
    글쎄요.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나요.(웃음)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게 정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이었어요. 그저 노는 책, 먹고 먹고 또 먹고, 놀고 놀고 또 노는 책. 그런 책을 하고 싶었는데 달토끼가 떠올랐어요. ‘나도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다 할 수 있는 세계, 말만하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 때 마침 석판화를 배우고 있었는데 달과 우주공간이라서 석판화가 맞겠다 싶었구요.

03 말씀하신 대로 달에 사는 토끼가 등장합니다. 무척 친숙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요.
    제가 하려는 이야기에 달토끼 캐릭터가 잘 맞았어요.
    달에 토끼가 사는 것도 오래된 이야기고 예전엔 잔치에 가면 집에 돌아갈 때 먹을거리를 싸줬으니 그런 정서도 친숙하죠.

04 훈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하늘 공간 어디에선가 등장하는 동물들만 나오는데요.
    아이들의 세계는 현실 공간이라고 해도 어른들이 있는 세계와는 다른 판타지 공간이에요. 그런데 이걸 현실로 표현하면 그 특별함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분리해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주변에 있지만 사실은 독립적인 아이들만의 세계, 그 반짝거리는 세계를요.

05 달토끼와 함께하는 동물들로 쥐, 뱀, 거북이, 곰을 선택한 이유와 동물들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뱀은 인류학적으로 보면 생명을 창조하고 지식을 주는 동물이죠. 또 쥐는 작아서 특별한 느낌을 줘요. 곰은 역사적으로 가장 영험한 동물이고, 거북이는 고대인들에게는 지구를 떠받치는 동물이에요.
    이 동물들이 등장할 때 한 화면에 하나씩 나오는데, 모든 사람은 스스로가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신적인 존재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구성했어요.

     

06 훈이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방법이 명쾌하면서도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작가님의 의도는?
    처음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생각해보니 동양에선 하늘로 올라가는 과정에 나무가 많이 나온다는 게 떠올랐어요. 나무야말로 지상의 상징이죠. 훈이가 신발을 벗고 나무에 올라서는 건 신전 같은 성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예를 갖추는 것과 같아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 같은 거죠.

07 훈이가 상상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장면인 쑥쑥 커지는 나무 장면은 특별히 세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말 나무가 순식간에 크는 듯 해요. 어떻게 생각하신건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나무가 쑥쑥 자라는 느낌을 확 느끼도록 할까 고민하다가 책을 세로로 세워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죠. 페이지를 이어 펼치면 귀찮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08 표지에는 정작 ‘달토끼’가 등장하지 않고 훈이의 올려다보는 시선과 제목이 어울려서 보는 이가 상상하도록 하는데요. 작가님이 보시는 표지는 어떠신지?
    처음엔 달토끼가 등장하는 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뭔가 이건 아닌 느낌이더라고요. 제 책이라 그런지 생각만 많고, 컨셉은 안잡히고…….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 그림을 앉혀놓고 보니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사람은 훈이 밖에 없지만 동물들이 원래는 아이들이니까 아이가 대표하는 게 맞겠다 싶었고요.

09 달토끼가 헤어질 때 남은 떡을 보자기에 싸서 나눠주잖아요. 왠지 푸근한 시골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에게 음식 싸주시는 듯도 합니다. 그런 설정을 하신 이유는?
    저는 젊어서부터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 한 단행본 그림책이 ‘내가 처음 가본 그림박물관’ 시리즈인데 그때도 그런 고민을 나름의 방식으로 담아낸 거죠.
    그 후 나이를 먹으면서 너무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녹아있는 정서를 즐기고 나누면 좋겠다 생각하게 됐고 우리 작가들이 아주 솔직해지고 아주 잘 하면 저절로 되는 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의 과정이 있어 그렇게 표현된 거 같아요.

10 이번 작품은 석판화 기법으로 작업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석판화는 부드러운 크레용 질감과 우연적인 느낌을 살리기에 좋은 재료라 이야기 속 공간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11 석판화 작업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석판화나 동판화는 상업 인쇄의 전단계라고 보면 돼요. 판에 각각의 색을 별도로 작업해서 종이에 찍는 거죠. 그래서 판에 드로잉을 해야 하고, 판을 가공하고, 잉크를 묻혀서 종이에 찍어요. 석판화는 물과 기름의 성질을 이용하는데 과정이 매우 복잡해요.

12 이번 작품에서 가장 힘드셨던 그리고 신경쓰신 부분은?
    미대를 나왔어도 그림을 계속 그린 것도 아니고 특히 석판화는 처음이라 힘들었어요. 디자인을 오랜 시간 해 와서 눈은 높은데 손은 따라오지 않으니 스스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제일 어려웠죠. 석판도 많이 버렸어요. 완성된 석판이 100장쯤 되는데 버린 게 100장 넘을 거예요.(웃음) 덕분에 지금 이어서 작업 중인 두 번째 책은 훨씬 수월해요.

13 후속 이야기가 있는 거군요. ‘달토끼와 친구들은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대.’로 마무리되니까 그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훈이와 친구들의 다음 이야기를 잠시 소개해주시죠.
    선물로 받은 떡을 쥐가 먹어보니 맛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나도 선물을 해야겠다.’ 고 생각해요. 쥐는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쥐가 가장 소중한 걸 뱀에게 선물하고, 뱀은 받은 선물과 자기가 가장 아끼는 걸 다시 곰에게 선물하고 곰은……. 이렇게 점점 선물이 불어나고 점점 신나는 놀이가 되는 거죠. 그 놀이가 어떻게 끝날지 기대해주세요.^^

14 그런 어린이다운 발상과 정서는 어른이 되면 쉽게 잃어버리잖아요. 어떻게 잘 집어내시는지?
    처음엔 어린이책이 만만해보였는데요, 정작 하면 할수록 너무 어렵더라고요. 어른이 어린이처럼 생각하고 어린이의 욕구를 어른인 나 자신의 욕구 이상으로 느끼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피카소는 어린이처럼 그림 그리는데 50년이 걸렸다잖아요. 어린 시절이 지나버린 이상 공짜로 다시 그 세계로 들어갈 순 없어요.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하고 그림책도 열심히 보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면서 만나기도 하고 엄마들과 이야기도 나누곤 했어요. 또 제가 철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제 성격이 그림책을 하면서 오히려 장점이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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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어린이책의 아트 디렉터로 그림책과 인연을 맺으신 걸로 압니다.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건지?
    제가 출판사도 잠시 다녔고, 디자인 사무실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림책을 보고 완전히 반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책의 아트 디렉션을 하게 되었고 그림책 출판사까지 하게 됐어요.

02 아트 디렉터, 그중에서도 어린이책 아트 디렉터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린이책도 종류가 다양해서 책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내가 처음 가본 그림박물관’ 시리즈를 보면 기획의도와 글, 그림이 모두 각각이에요. 이 모두를 고려해서 조정할 사람이 필요하죠.


    그림책은 분량이 적기 때문에 한 부분이 살짝 어긋나도 바로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조정 역할이 아주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어린이책의 아트 디렉터랍니다. 책의 물리적인 부분, 시각적인 부분을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03 길벗어린이 출판사와 한 식구가 된 천둥거인 출판사를 경영하셨었는데요. 경영자의 입장은 아트 디렉터, 또 작가로서의 입장과는 좀 다르셨겠어요.
    저는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더 잘 보였다고 할까요. 사실 자기 작품은 그 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기가 어렵거든요.

04 현재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을 어떻게 보시는지?
    전집 그림책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한 권 한 권 개성이 가득 담긴 단행본 그림책이 독자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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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으셨나요?
    소질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미대도 간 거구요.

02 글과 그림의 비중이 어떻게 되시는지? 글을 먼저 완성하시는지? 그림 방식은 어떻게 정하시는지?
    글과 그림보다 생각이 먼저고요. 시작할 때는 글을 먼저 쓰고 콘티를 짜고 그 다음에 스케치를 하면서 글을 다시 완성합니다.

03 작품 작업이 잘 안될 때 어떤 대처법을 쓰시나요?
    그냥 놀죠.(웃음) 글과 그림은 하다보면 결국은 되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요.
    그런데 생각은 한 가지를 가지고 이십 년 동안 해도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열심히 생각한다고 금방 해답이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잘 안 되면 일단은 놀고 보는 거죠.

04 좋아하시는 그림책은? 그 이유는?
    너무 많아요. 요즘 나온 책으로는 <염소 시즈카>가 생각나네요. 작가의 삶이 느껴져서 좋아요. <채소밭 잔치>도 좋고 다시마 세이조 좋아해요. 또 베라 윌리엄스의 <엄마의 의자>는 따뜻해서 좋고요.
05 언제 그림책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늘 그렇게 생각해요. 그림책 작가라서 어린이를 생각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먹고 먹고 또 먹고, 놀고 놀고 또 노는 그런 세계와 가까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죠.

06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따뜻하고 기분 좋은 작가, 그런 사람과 책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07 작가 문승연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제 아이들을 제외하고 제일 소중한 거요.

08 좋은 그림책은 어떤 그림책일까요?
    그 기준은 굉장히 다양해요.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거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에 작은 파동이라도 일으킨다면 좋은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책이면 더 좋겠어요.

    아이들 특히 유아들은 한편으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대단히 불안하고 낯선 상태에요. 어른도 때론 그렇잖아요. 세상이 살만하고 따뜻하다는 걸, 우리 안에 순수하고 행복한 낙원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아주 쉬운 언어로 보여준다면 정말 좋죠.

09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전업 작가로서는 시작이니까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계속 해야죠. 그리고 좀더 나이를 먹으면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같이 놀면서 살고 싶어요. 달토끼처럼 떡 나눠주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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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던 그림책 <만희네 집>의 작가 권윤덕.
첫 작품을 낸 지 십삼 년 만에 그 공간을 ‘우리 동네’로 옮겨 그 안에서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책 <일과 도구>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표
                                 현하는 작가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림책 작가로 만들어준 첫 작품 <만희네 집>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가 되셨나요?

1992,3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안양에서 미술운동을 하다가 운동을 정리하면서 딱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시사만화나 회화 쪽을 생각했었는데... 당시에 그림책 분야는 예술로 생각도 못하고 그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초방>을 통해 정승각 씨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된 거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옛이야기에 삽화를 첨가해 넣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죠.
정감 있는 동?? 많이 좋아했어요. 아이가 심부름 가는 장면, 그리고 아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갔을 때, 멀리서 풍경을 잡은 장면에 피아노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었죠. 그걸 만희가 발견해내는 걸 보고 아이와 엄마가 보는 게 다/> 당시 작가도 몇 분 없었어요. 고민하던 끝에 시작했어요.

글과 그림 작업을 모두 하시잖아요. 글 작가, 그림 작가로서 각각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을 받아서 작업할 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둔 글을 아직 못 만났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글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이미 글로 해버려서 그림이 들어갈 여지가 적은 거지요.
그림책 글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할 경우, 글맛은 글 작가의 글에 못 미칠지라도, 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며 풀어갈 수 있어요. 글과 그림을 서로 맞춰 가다 보면 표현의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처음의 글 원고가 그림이 완성돼 가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도구>의 경우도 처음 글은 지금 책에 실린 글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림을 채색까지 다 끝내고서 글을 다시 다듬은 거지요.



모든 작품이 그러시겠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모두 애착이 가지요.(웃음) <만희네 집>은 첫 작품이라 많이 애착이 갑니다. 지금은 <일과 도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터라 거기에 애착이 많이 가네요.
돌이켜 보면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일과 도구>는 정보책의 성격이 많은 편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책들은 감정을 끌어내기는 좋은데, 현실을 기반으로 깊이 고민한 이 책들보다는 매력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작업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작업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0여 년쯤 지나서 다시 이런 책으로 돌아온 거죠. 힘은 들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작업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페이지는 어떤 건지요?

좋은 쪽으로 하나, 마음에 걸리는 쪽으로 하나가 있어요.
좋은 걸로는 <만희네 집>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집 도면이에요. 작업하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많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표현하다 보니 남녀의 성 역할을 고정시켜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어요. 아파트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지요. 아빠가 개밥 주는 장면으로도 해봤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집 도면 페이지에서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그려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책감이라고 느꼈던 것인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 아빠, 엄마, 딸, 아들이 내복을 입고 방안에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릴 당시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는데, 몇 년 지나서 나중에 가족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면서 엄마와 딸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 현실은 편모나 편부, 그 밖의 다양한 가족들이 있는데, 혹시 아이들이 이걸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작품에 이른바 ‘전형적인’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았어요. <시리동동 거미동동>에서는 엄마와 딸만 나오죠. <일과 도구>에서는 아이가 가족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설정했어요.

  

<만희네 집>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인데요. 이런 방식으로 구성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술운동하면서 그린 그림이 굵은 선 중심의 걸개그림이었는데, 미술운동이 끝나고 나니 무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했었나 싶었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선을 끌어당겨 내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처음육용으로 생각하고 아파트 구조와 전통 가옥 구조를 비교하면서 옛날 것이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삶의 공간이란 것이 각각 자기 시대 환경의 산물인 거고, 따라서 그렇게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스케치하면서 아파트 부분을 아예 빼버렸어요. 그 대신 지금 실재하는 가옥을 통해, 아직도 전통이 얼마나 쓸모 있게 잘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마침 어머님이 아프셔서 수원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어요. 광에는 놋그릇, 뒤주 같은 살림 도구들이 들어가 있고, 부엌의 장식장에는 신식 커피 잔이 나와 있었죠.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정서를 엿보면서, 놋숟가락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 벗어놓은 신발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법 아닌가요? 말로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는 것보다 사물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만희네 집>은 그렇게,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에요. 미술운동 할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거죠.

 

미술운동은 어느 정도 하셨나요?

거의 5년 정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내 황금기를 거기에 쏟아 부었던 셈이죠. 미술운동을 정리할 때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많은 분들이 그랬듯이, 영광보다는 상처를 안고 운동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주변의 작은 것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보듬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만희네 집>이 나왔을 때 실제 만희가 무척 좋아했겠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좋아했어요. 특히 도서관에서 <만희네 집>을 보면 아주 기뻐했습니다. 다 커버린 지금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처럼 조금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이 좋답니다. 이억배 씨의 책 <솔이의 추석이야기>에 나오는 솔이도 그 책을 많이 좋아했었지요.

 



 Copyright© 길벗어린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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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 <일과 도구> 작가 후기 중에서- 

 

 

신간 <일과 도구>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카센터 도구들, 특히 어릴 때 미장원에서 본 고데기, 파마할 때 쓰는 미장원 도구들, 바느질 도구들을 볼 때마다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원 없이 그려보고 싶었나 봐요.(웃음)

<일과 도구>에서 특히 집중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그림풍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성이 강한 그림책은 사실에 기반을 두게 되지요. <일과 도구>의 경우에는 직업들 사이의 편차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실 속의 직업들은 실제 환경도 서로 많이 다르고, 사회적 편견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건 그것들을 지금 그대로 고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일터가 소중하고, 그런 만큼 모두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업장을 꿈의 공간처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꿈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구두공장에서 구두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구두공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중년이셨어요. 작업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지요. 그분들의 자녀가 아빠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해줄까? ... 취재할 때 처음엔 많이 거부당했어요. 되도록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못 박으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들이 하나의 기계처럼 보였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바쁜 몸놀림에 쓸쓸함이 배어 있다고 할까요? ... 현실은 그래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남자 직공이 멋지게 기타 치는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구두공장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이런 일을 왜 취재하느냐고. 이렇게 대답했죠. 아이들이 백화점에 가면 진열대에 구두가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구두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하나하나 땀 흘려가며 만들어 낸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경계심을 풀고, 오히려 고생한다고 위로까지 해 주시더라고요. 취재 가는 곳마다 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면서 책의 구도도 많이 바꾸었지요. 책의 마지막 장면은 본래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일터에서 어??들이 물건을 사고 사용할 때마다 이 물건을 어디에서 누군가 정성들여 만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여자 아이들이 구두 공장 페이지를 보면서 예쁜 신발을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구도를 흔들었던 작가의 의도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마다 네 쪽씩 구성되어 있는데 도구들을 보여주는 앞 장은 스케치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뒷장이 아주 어려웠어요. 할 수 없이 2차 취재를 다시 나갔어요. 거기서 해결점을 찾았지요. 옷 만드는 곳에 갔을 때인데, 재단실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가락을 눕히고 가위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목공소에서, 목재의 직각을 확인하느라 긴 나무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한쪽 눈을 감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목수 아저씨 모습도 그랬고요.
예전에 미술운동하면서 여공들과 그림 수업을 할 때, 그네들이 기계를 참 재미있게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앵글, 그런 것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해야 일하는 것, 노동의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고학년 동화라도 되면 모르지만, 이런 그림책에서는 일일이 말로 풀어낼 수도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현해 내는 일, 제가 많이 고민한 것이 그것이에요.

<일과 도구>에는 일곱 가지 일과 일터가 나옵니다. 처음 생각하셨던 직업 중에서 제외하신 직업이 있으신지?

처음엔 방앗간이 포함돼 있었어요. 부암동 <동양방앗간>에 취재를 갔는데 거기 할머니가 아주 고우시고, 말투가 마치 신화 속의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방앗간을 그려야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방앗간 일이 농사와 요리와 겹치더라고요. 농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요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데.... 그래서 방앗간이 빠지게 되었죠.
카센터도 생각했었는데, 자동차를 고치는 일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생각이 복잡했어요. 자동차가 이미 집집마다 필수품처럼 돼버리긴 했지만, 그것이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그리고 미래 산업 발전과 관련해서 예민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잖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카센터를 빼버렸습니다. 맨 앞의 동네 지도에, 넓은 길에 비해 자동차가 많지 않은데, 혹시 제 생각을 눈치 채셨어요?

병원(의사) 장면에 하트가 많던데요.

아이들이 병원 가기 싫어하잖아요. 의사가 환자를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도 있고, 마침 간호사 선생님의 목걸이도 하트 모양이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장면에서 신체의 일부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박스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취재 갔던 병원이 공단지역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어요.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아빠가 얼굴이 파랗게 변한 아이를 안고 병원엘 뛰어들어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 해서 토하게 하니까 혈색이 차츰 돌아오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아이를 살려내는 걸 보면서, 병원이라는 곳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인데, 그 얘기 전체를 그림으로 다 그려낼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하트로 부분 부분을 잘라서 표현할 수 있었지요.

여자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리 집 고양이를 모델로 했습니다.(작가는 실제 ‘진주’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앙큼한 데가 있고, 겁도 많고, 여기저기 너무 잘 숨어요. 개는 주인을 따르고 주인 비위 맞추기 바쁜데,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보다 한 수 위인 거 같아요. 개는 자기가 인간인 줄 착각하고, 고양이는 자기가 신인 줄 착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고양이가 좋아요. 사람이 고양이를 닮아야 한다고 하면 아주 우스운 얘기가 돼버리지만, 저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똘똘한 주체로 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고양이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고양이를 세워 놓으면, 사람과 닮은 듯한 면도 있어요. 신발을 신키고 팔과 손을 움직이도록 해도 어색하지 않고.

<일과 도구>는 그림을 모두 비단에 그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 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한지에서는 물감이 뒤로 빠지기 때문에 선명한 색을 내기가 힘들거든요. 뒤에서 칠하면 강한 색도 거칠지 않고앞뒤로 빨간색을 거듭 칠해서 섬유 공간을 촘촘히 채우는 거지요. 그러다가 잘못 칠하면 비누칠을 해서 칫솔로 지워내기도 합니다.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앞뒤 각각 두 번씩 아교를 칠하고 작업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채색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물감 접시를 놓고,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다시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그러면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니까 나중엔 팔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어깨 신경에 염증에 생겼다고 쉬어야 한다고 하데요. 그림책 일도 중노동에 속하는 직업이에요.(웃음)
<일과 도구>의 검은 색은 검은색 물감을 단번에 칠한 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란색을 엷게 뒷면에 발라서 만들어 낸 겁니다. 초록은 노랑과 파랑이 섞인 색이니까 결국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이 됩니다. 여기에 먹색을 섞으면 4도 인쇄와 원리가 통하는 거죠. 불화를 그릴 때 이 원리에 따라 그렸어요. 붓을 물감에 찍을 때마다 물감의 농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매번 그 농도를 조절해 가며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냅니다. 중국집 장면 속 프라이팬의 검은 색 같은 것은 검은색을 단번에 칠해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끌 수가 없죠.

 

 

 

01_그림 작업장 모습


권윤덕 작가의 그림 작업장 모습.
불화 기법을 응용하여 작업을 한 <일과 도구>는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 숨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진주"가 그림 도구 속에 숨어있다.


 

 
 
 
01
 

 

 
         
 
 
 
 
         
 

 

02_비단에 그린 그림


비단 뒷면에 먼저 채색을 하고(맨 위), 앞면에 다시 색을 입힌다(중간). 이렇게 하면 좀 더 깊고 고운 색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색으로 강조점을 잡아가면서 완성한다.(맨 아래)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 권윤덕 작가 인터뷰 중에서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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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3_주녹청 그림 물감과 도구들

<일과 도구>는 블화 그리기 원리를 이용하여 작업하였다.

작가는 빨강, 초록, 파란색의 물감을 엷게 겹쳐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냈다.

 

 

 

 

 

 

 

 
 
 
         
 

불화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습니다. 그 후에도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어요. 논문도 찾아 읽고,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과 도구>를 처음에는 실제 불화처럼 진하게, 즉 진채로만 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아무래도 쉽게 질릴 거 같아서 담채와 진채를 섞어서 표현했습니다. 고려 불화를 공부하면서, 전통적인 미 양식을 배우고, 또 그것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불화를 설명하고 있는 작가

권윤덕 작가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고,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다고 한다.

 
 

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1

고려 불화 관련 논문에 나타나 있는 표현 기법을 찾아 보면서, 이리저리 색을 맞춰가며 그린 불화라고 한다.

 

 
 

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2

비치는 투명한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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