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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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 <일과 도구> 작가 후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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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일과 도구>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카센터 도구들, 특히 어릴 때 미장원에서 본 고데기, 파마할 때 쓰는 미장원 도구들, 바느질 도구들을 볼 때마다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원 없이 그려보고 싶었나 봐요.(웃음)
<일과 도구>에서 특히 집중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그림풍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성이 강한 그림책은 사실에 기반을 두게 되지요. <일과 도구>의 경우에는 직업들 사이의 편차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실 속의 직업들은 실제 환경도 서로 많이 다르고, 사회적 편견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건 그것들을 지금 그대로 고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일터가 소중하고, 그런 만큼 모두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업장을 꿈의 공간처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꿈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구두공장에서 구두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구두공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중년이셨어요. 작업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지요. 그분들의 자녀가 아빠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해줄까? ... 취재할 때 처음엔 많이 거부당했어요. 되도록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못 박으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들이 하나의 기계처럼 보였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바쁜 몸놀림에 쓸쓸함이 배어 있다고 할까요? ... 현실은 그래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남자 직공이 멋지게 기타 치는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구두공장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이런 일을 왜 취재하느냐고. 이렇게 대답했죠. 아이들이 백화점에 가면 진열대에 구두가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구두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하나하나 땀 흘려가며 만들어 낸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경계심을 풀고, 오히려 고생한다고 위로까지 해 주시더라고요. 취재 가는 곳마다 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면서 책의 구도도 많이 바꾸었지요. 책의 마지막 장면은 본래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일터에서 어??들이 물건을 사고 사용할 때마다 이 물건을 어디에서 누군가 정성들여 만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여자 아이들이 구두 공장 페이지를 보면서 예쁜 신발을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구도를 흔들었던 작가의 의도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마다 네 쪽씩 구성되어 있는데 도구들을 보여주는 앞 장은 스케치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뒷장이 아주 어려웠어요. 할 수 없이 2차 취재를 다시 나갔어요. 거기서 해결점을 찾았지요. 옷 만드는 곳에 갔을 때인데, 재단실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가락을 눕히고 가위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목공소에서, 목재의 직각을 확인하느라 긴 나무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한쪽 눈을 감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목수 아저씨 모습도 그랬고요.
예전에 미술운동하면서 여공들과 그림 수업을 할 때, 그네들이 기계를 참 재미있게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앵글, 그런 것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해야 일하는 것, 노동의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고학년 동화라도 되면 모르지만, 이런 그림책에서는 일일이 말로 풀어낼 수도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현해 내는 일, 제가 많이 고민한 것이 그것이에요.
<일과 도구>에는 일곱 가지 일과 일터가 나옵니다. 처음 생각하셨던 직업 중에서 제외하신 직업이 있으신지?
처음엔 방앗간이 포함돼 있었어요. 부암동 <동양방앗간>에 취재를 갔는데 거기 할머니가 아주 고우시고, 말투가 마치 신화 속의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방앗간을 그려야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방앗간 일이 농사와 요리와 겹치더라고요. 농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요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데.... 그래서 방앗간이 빠지게 되었죠.
카센터도 생각했었는데, 자동차를 고치는 일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생각이 복잡했어요. 자동차가 이미 집집마다 필수품처럼 돼버리긴 했지만, 그것이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그리고 미래 산업 발전과 관련해서 예민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잖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카센터를 빼버렸습니다. 맨 앞의 동네 지도에, 넓은 길에 비해 자동차가 많지 않은데, 혹시 제 생각을 눈치 채셨어요?
병원(의사) 장면에 하트가 많던데요.
아이들이 병원 가기 싫어하잖아요. 의사가 환자를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도 있고, 마침 간호사 선생님의 목걸이도 하트 모양이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장면에서 신체의 일부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박스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취재 갔던 병원이 공단지역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어요.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아빠가 얼굴이 파랗게 변한 아이를 안고 병원엘 뛰어들어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 해서 토하게 하니까 혈색이 차츰 돌아오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아이를 살려내는 걸 보면서, 병원이라는 곳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인데, 그 얘기 전체를 그림으로 다 그려낼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하트로 부분 부분을 잘라서 표현할 수 있었지요.
여자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리 집 고양이를 모델로 했습니다.(작가는 실제 ‘진주’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앙큼한 데가 있고, 겁도 많고, 여기저기 너무 잘 숨어요. 개는 주인을 따르고 주인 비위 맞추기 바쁜데,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보다 한 수 위인 거 같아요. 개는 자기가 인간인 줄 착각하고, 고양이는 자기가 신인 줄 착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고양이가 좋아요. 사람이 고양이를 닮아야 한다고 하면 아주 우스운 얘기가 돼버리지만, 저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똘똘한 주체로 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고양이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고양이를 세워 놓으면, 사람과 닮은 듯한 면도 있어요. 신발을 신키고 팔과 손을 움직이도록 해도 어색하지 않고.
<일과 도구>는 그림을 모두 비단에 그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 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한지에서는 물감이 뒤로 빠지기 때문에 선명한 색을 내기가 힘들거든요. 뒤에서 칠하면 강한 색도 거칠지 않고앞뒤로 빨간색을 거듭 칠해서 섬유 공간을 촘촘히 채우는 거지요. 그러다가 잘못 칠하면 비누칠을 해서 칫솔로 지워내기도 합니다.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앞뒤 각각 두 번씩 아교를 칠하고 작업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채색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물감 접시를 놓고,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다시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그러면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니까 나중엔 팔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어깨 신경에 염증에 생겼다고 쉬어야 한다고 하데요. 그림책 일도 중노동에 속하는 직업이에요.(웃음)
<일과 도구>의 검은 색은 검은색 물감을 단번에 칠한 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란색을 엷게 뒷면에 발라서 만들어 낸 겁니다. 초록은 노랑과 파랑이 섞인 색이니까 결국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이 됩니다. 여기에 먹색을 섞으면 4도 인쇄와 원리가 통하는 거죠. 불화를 그릴 때 이 원리에 따라 그렸어요. 붓을 물감에 찍을 때마다 물감의 농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매번 그 농도를 조절해 가며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냅니다. 중국집 장면 속 프라이팬의 검은 색 같은 것은 검은색을 단번에 칠해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끌 수가 없죠.
01_그림 작업장 모습
권윤덕 작가의 그림 작업장 모습.
불화 기법을 응용하여 작업을 한 <일과 도구>는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 숨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진주"가 그림 도구 속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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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_비단에 그린 그림
비단 뒷면에 먼저 채색을 하고(맨 위), 앞면에 다시 색을 입힌다(중간). 이렇게 하면 좀 더 깊고 고운 색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색으로 강조점을 잡아가면서 완성한다.(맨 아래)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 권윤덕 작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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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_주녹청 그림 물감과 도구들
<일과 도구>는 블화 그리기 원리를 이용하여 작업하였다.
작가는 빨강, 초록, 파란색의 물감을 엷게 겹쳐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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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습니다. 그 후에도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어요. 논문도 찾아 읽고,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과 도구>를 처음에는 실제 불화처럼 진하게, 즉 진채로만 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아무래도 쉽게 질릴 거 같아서 담채와 진채를 섞어서 표현했습니다. 고려 불화를 공부하면서, 전통적인 미 양식을 배우고, 또 그것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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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를 설명하고 있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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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작가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고,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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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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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화 관련 논문에 나타나 있는 표현 기법을 찾아 보면서, 이리저리 색을 맞춰가며 그린 불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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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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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는 투명한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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