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던 그림책 <만희네 집>의 작가 권윤덕.
첫 작품을 낸 지 십삼 년 만에 그 공간을 ‘우리 동네’로 옮겨 그 안에서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책 <일과 도구>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표
                                 현하는 작가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림책 작가로 만들어준 첫 작품 <만희네 집>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가 되셨나요?

1992,3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안양에서 미술운동을 하다가 운동을 정리하면서 딱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시사만화나 회화 쪽을 생각했었는데... 당시에 그림책 분야는 예술로 생각도 못하고 그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초방>을 통해 정승각 씨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된 거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옛이야기에 삽화를 첨가해 넣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죠.
정감 있는 동?? 많이 좋아했어요. 아이가 심부름 가는 장면, 그리고 아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갔을 때, 멀리서 풍경을 잡은 장면에 피아노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었죠. 그걸 만희가 발견해내는 걸 보고 아이와 엄마가 보는 게 다/> 당시 작가도 몇 분 없었어요. 고민하던 끝에 시작했어요.

글과 그림 작업을 모두 하시잖아요. 글 작가, 그림 작가로서 각각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을 받아서 작업할 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둔 글을 아직 못 만났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글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이미 글로 해버려서 그림이 들어갈 여지가 적은 거지요.
그림책 글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할 경우, 글맛은 글 작가의 글에 못 미칠지라도, 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며 풀어갈 수 있어요. 글과 그림을 서로 맞춰 가다 보면 표현의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처음의 글 원고가 그림이 완성돼 가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도구>의 경우도 처음 글은 지금 책에 실린 글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림을 채색까지 다 끝내고서 글을 다시 다듬은 거지요.



모든 작품이 그러시겠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모두 애착이 가지요.(웃음) <만희네 집>은 첫 작품이라 많이 애착이 갑니다. 지금은 <일과 도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터라 거기에 애착이 많이 가네요.
돌이켜 보면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일과 도구>는 정보책의 성격이 많은 편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책들은 감정을 끌어내기는 좋은데, 현실을 기반으로 깊이 고민한 이 책들보다는 매력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작업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작업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0여 년쯤 지나서 다시 이런 책으로 돌아온 거죠. 힘은 들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작업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페이지는 어떤 건지요?

좋은 쪽으로 하나, 마음에 걸리는 쪽으로 하나가 있어요.
좋은 걸로는 <만희네 집>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집 도면이에요. 작업하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많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표현하다 보니 남녀의 성 역할을 고정시켜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어요. 아파트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지요. 아빠가 개밥 주는 장면으로도 해봤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집 도면 페이지에서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그려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책감이라고 느꼈던 것인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 아빠, 엄마, 딸, 아들이 내복을 입고 방안에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릴 당시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는데, 몇 년 지나서 나중에 가족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면서 엄마와 딸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 현실은 편모나 편부, 그 밖의 다양한 가족들이 있는데, 혹시 아이들이 이걸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작품에 이른바 ‘전형적인’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았어요. <시리동동 거미동동>에서는 엄마와 딸만 나오죠. <일과 도구>에서는 아이가 가족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설정했어요.

  

<만희네 집>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인데요. 이런 방식으로 구성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술운동하면서 그린 그림이 굵은 선 중심의 걸개그림이었는데, 미술운동이 끝나고 나니 무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했었나 싶었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선을 끌어당겨 내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처음육용으로 생각하고 아파트 구조와 전통 가옥 구조를 비교하면서 옛날 것이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삶의 공간이란 것이 각각 자기 시대 환경의 산물인 거고, 따라서 그렇게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스케치하면서 아파트 부분을 아예 빼버렸어요. 그 대신 지금 실재하는 가옥을 통해, 아직도 전통이 얼마나 쓸모 있게 잘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마침 어머님이 아프셔서 수원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어요. 광에는 놋그릇, 뒤주 같은 살림 도구들이 들어가 있고, 부엌의 장식장에는 신식 커피 잔이 나와 있었죠.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정서를 엿보면서, 놋숟가락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 벗어놓은 신발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법 아닌가요? 말로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는 것보다 사물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만희네 집>은 그렇게,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에요. 미술운동 할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거죠.

 

미술운동은 어느 정도 하셨나요?

거의 5년 정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내 황금기를 거기에 쏟아 부었던 셈이죠. 미술운동을 정리할 때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많은 분들이 그랬듯이, 영광보다는 상처를 안고 운동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주변의 작은 것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보듬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만희네 집>이 나왔을 때 실제 만희가 무척 좋아했겠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좋아했어요. 특히 도서관에서 <만희네 집>을 보면 아주 기뻐했습니다. 다 커버린 지금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처럼 조금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이 좋답니다. 이억배 씨의 책 <솔이의 추석이야기>에 나오는 솔이도 그 책을 많이 좋아했었지요.

 



 Copyright© 길벗어린이㈜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