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2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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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파본 사람이 잘 안다고하죠. 네,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전 신체의 질병에 관해 저자와 교감이 가능한 책이라 선택했죠. 저와 다른 질병이지만, 교차점이 있는 이<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책은 그녀의 두 가지 질병을 앓게 된 과정을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기록해 놓은 에세이입니다.

대체 'CMT(샤리코-마리-투스)'란 병이란 게 뭘까요? 천천히 손이 굽고 마비가 오는 증상이라해요. 선천적으로 유전이 가능한 질병이고 2500명에 1명꼴로 걸린다고하죠. 게다가 그녀는 '관절염'까지 앓는다고했어요.

병이 앓고 있는 과정과 회복되어 가는 사이에 그녀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왜냐면 겉으로 멀쩡해보이는 데 자신의 고통을 보여줄 수 없어서 답답해했고, 저또한 그녀의 그런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질병에 대해, 그것도 두 가지 질병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기증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겪었을 저자로서는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이나 타인에게 자신의 병명과 고통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려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하루 이틀의 이벤트가 아니었으니까.

"매일매일 수년간 누적된 시간 속에서 내 고통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내가 뱉는 말에 내가 질릴 정도로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는 어느 순간 원망과 짜증, 비난이 섞여 있었다.

이해를 바라며 시작한 말이지만, 상대에게 가닿는 언어는 이미 그 의도와 기능을 잃어버렸다. 언어를 잃어버린 소리는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그저 시끄러운 아우성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지긋지긋한 푸념이었을 것이다." (125쪽)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말해왔을 저자를 생각해보노라면 충분히 납득이 갔습니다.





저자는 그녀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과 그 병을 앓는 사람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병은 현재진행형이고 몸은 노호한다. 언제 다시 고통이 일상이 될지 모른다. 지금의 찰나와 같은 순간이 드물게 찾아오는 행복 구간일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하며 아쉬워하기보다 현재를 더 선명하게 인식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11쪽)고, 글쓴이는 밝혔습니다.

혹시 또 올지 모르는 아픔에 대비해 현재의 아프지 않은 상태를 감사하게 여기며 사는 게 참 질병을 겪지 않는 사람들에겐 별것 아닌 일로 보여질 수 있겠습니다.





이 목차의 제목이 와닿았습니다.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란 제목에서 저또한 그랬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몸도 안 아프고, 마음도 안 아프고 그런 상태로 지냈더라면 또래들처럼 멋부리고 살빼고 돈도 벌며 친구들과 놀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자유롭게 달리고 싶어했습니다. 사회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갖춘다는 의미에서요. 그녀는 어린시절 고관절 이형성증을 진단받았다가 쉽게 행했던 일상생활을 못하게 됐습니다. 커서는 신경과에 가서 CMT란 진단을 받았고, 또한 관절염까지 앓게 됐죠.

어떤게 고통이 강한지 비교하자면, 둘 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비슷한 듯합니다.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통증의 정도를 비교해봤자, 절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원래 자기 손이 더 아픈법이니까요. 질병은 절대적인 평가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이뤄지는 상태일 뿐이죠.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아프고 불편해야 장애일까요?

"장애인의 범주에 속하려면 얼마나 아프고 불편해야 할까?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는 의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인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치를 의향이 있는지는 사회구성원과 합의가 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52쪽)

저자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그리 썩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장애인에 해당되는지 해당 공무원이 자신의 집에 와서 테스트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탈락됐죠.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하는 것처럼요. 그녀에게 주는 두 가지 고통은 그녀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멀쩡하구만'.


병원에선 통증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표현하라고하죠. 한방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다녀봤거든요. 1은 미미한 수준이고 10은 출산의 고통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전 통증의 객관화가 가능한 일인지 다소 의문스러웠죠.

어떻게 나의 고통을 숫자로 정확히 매겨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난 똑같이 아파죽겠는데 내가 참으면 5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1도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아예 안 참아도 통증을 객관화 할 수 있나.

그 정도에 따라 치료약이 막 달라지나. 그러면 틀리면 어떻게 되나란 생각이 뒤섞여들게 마련이었죠. 저자는 그런 방식에 아리송하기 이를 데 없는 기준이라 꼬짚습니다.

전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마취과, 한의원까지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별별 의사들을 만나봤죠. 친절한 의사도 있었지만 불친절한 의사도 있었죠. 내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태도에 더 이상 가기가 싫더라구요. 치료받으려했는데 약만 처방해주고 끝이거나 약도 효과가 없다고 말하고 주사도 받았지만 역시 효과가 없고 아무리 mri찍어도 헛소용이었죠.

저자는 대다수 친절한 의사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다고합니다. '어떤 의사는 그녀의 질문에 '풋'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고했습니다.

그녀가 '더 기분 나쁜 것은 자기의 질문에 답을 하긴 커녕 마치 들은적도 없단 듯이 질문 자체를 묵살해버렸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자신의 몸에 관해 질문하는 게 왜 조심하고 송구스럽게 여겨야 할 일인가" (63쪽) 이라며 저또한 거기에 공감을 했죠.


그녀가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 또한 입원병동이 갑갑하고 답답했었나봅니다.

저또한 작년에 B형간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1인 1실 병동에 강제로 입원되어 감옥 같은 생활을 했었죠. 마스크 쓰고 병동 복도에 나가는 게 귀찮고 눈치보여서 식판을 재빨리 배식구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병실 밖으로 나가면 간호사 언니들이 땍땍 잔소리가 날아오는 걸 듣기 싫어서 정말 몸은 약을 먹어서 편해졌지만, 맘은 정말 불편했습니다. 창문밖을 바라다보며 나도 빨리 나가고싶단 생각이 절로 들었죠.

게다가 1인병실이라 거기서 급식도 했으니 부모님의 돈이 무진장 깨졌죠. 이젠 B형 간염 항체가 없어서 예방주사를 맞을 예정입니다. 부스터샷은 이미 맞았으니 그 다음 B형 간염 백신맞겠죠.

또 하나, 제가 어디 아프냐에 답한다면, 오래전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가 있는 편이라고 한의사는 말했었죠. 근데 대학병원의 마취과 선생이 말하길, 제 병은 남들이 30% 고통을 느낄때 전 100% 느낀다고 통증에 과민하단 얘길 했습니다.

디스크 안쪽에 눌린 모양이 아주 작은데 같은 부위를 앓는 환자들 중 고통을 크게 느낄 수 있는 환자도 있단 걸 깨달았죠. 아, 허리디스크쪽이 아픈 건 맞지만, 어떤 사람은 디스크가 터져도 멀쩡하다고했습니다.

근데 전 조금만 상처가 났는데 더 크게 고통을 느낀 쪽이었죠. 그래서 어깨와 허리가 아플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입을 다물고 되었습니다. '나 진짜 아픈데'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되니 더하더군요.

나름 스트레칭도 하고 운동도 매일했지만 지치더군요. 스트레칭이라하면 덜 아픈데, 그것마저 안 하니 또 아프고 반복했습니다. 현재는 덜 아플뿐, 아예 안 아픈건 아니에요. 운동엔 소질이 없어서 아무리 아파도 하질 않으니 참 게으런거죠.


"사람들은 대부분 '너보다 더 심한 사람 많아', '누구나 겪는 일이야'하고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야만 고통을 털어놓을 자격이 주어지는가.

얼마만큼의 고통이 진짜 고통이라는 기준은 어디 있는가. 모든 고통은 절대적이고 개별적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상대 평가해서 그 강도를 평가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은 온전히 그 사람만이 느끼는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208-209쪽)

예전에 채팅어플에서 대화한 어떤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매주인가 매일인가 혈액투석을 해야하며 살아가야했고, 저는 허리디스크로 아픔을 참으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는 이런 질문을 했었죠.

'누가 더 불행한가'라고 전 그에 대한 대답이 정확히 기억나질 않네요. 그때 그는 저한테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을 하는구나란 대답을 했었죠.

근데 그 질문을 돌이켜보니 어차피 둘다 불행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죠. 저자의 그런 생각처럼 누가 더 아픈 게 진짜고 누가 더 아파야 불행한거라고 못을 박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아프 건 그 고통은 같습니다. 비교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당연히 본인이 가장 아프고 잘 아는법 이니까요.

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여러일을 겪었는데, 취미 생활을 마음껏 가질 수 없었다고하네요. 요가를 하려해도 의사 선생님이 정해준 운동만 가능하지요, 간병하는 동안 엄마가 해주는 데도 지쳤었고,

남편 또한 지쳐서 그녀의 허락하에 나홀로 해외 여행까지 갔다오고 자기 자식조차 엄마가 밉다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기해서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습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봤을 때, 참 가볍게 느껴졌고, 이쁘게 느껴졌습니다. 연보라색 표지 컬러에 내지도 아주 연한 보라색 계열 색상이었죠. 꽃그림에서 '봄'의 계절이 떠올랐고요.

흰 꽃과 연보라색 표지 컬라는 참 맘에 듭니다. 다만, 줄기의 색상이 형광색 연두느낌이라 그게 좀 튀네요. 내지에는 형광색 연두색이 안 보여서 눈이 피로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굳이 표지에 형광색 연두색을 썼어야했나싶지만 색이라도 튀어야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네요. 워낙 전 시야가 안 좋아서 표지는 오래 볼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형광색 계열은 눈의 피로감을 증가시켜서. 디자인과 컬러(형광계열색 제외)의 선택은 나름 좋았습니다.

[총평]

그녀가 왜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야만 했었는지 이젠 이해가 갔습니다. 어디 딱 하나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누가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전 그녀가 겪었던 고통 속 내면의 성찰이 잘 돋보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CMT를 앓고 있거나 관절염을 앓고 있거나 그 둘다 앓고 있지 않은 분 또는 그런 분들과 가까이 지내는 분이시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질병에 걸렸든 그 병에 걸린 가까운 사이라면 공감을 많이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내면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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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연습 - 내가 아닌 것, 원치 않는 것들에 품위 있게 선을 긋는 바운더리 심리학
테리 콜 지음, 민지현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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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운더리 영역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내 바운더리 영역을 침해할 시 어떤 말로 대처해야 할지도 배웠구요. 나름 읽을만하지만, 꽤 두께가 있는 편인데다 평소 심리학쪽은 문외한이라 깊이 공감하긴 어려웠어요. 한번쯤 자기의 바운더리 영역에 대해 생각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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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연습 - 내가 아닌 것, 원치 않는 것들에 품위 있게 선을 긋는 바운더리 심리학
테리 콜 지음, 민지현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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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엄마는 화장실에 있을 때 이런 말을 하십니다. ‘화장실 문은 왜 닫냐고, 혹은 왜 잠그냐고’말하시죠. 말뿐이게요. 그냥 닫았던 화장실문도 벌컥 열고 자기 할 일만 하고 나가버리죠. 이건 명백히 제 바운더리를 침해하는 겁니다. 이걸 저자는 어떤 영역으로 부르는데 뭐라고 하시는 줄 압니까? 바로신체적 바운더리입니다.



바운더리란 뭘까요?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라고 합니다. 저자는 어렸을 적부터 밖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고 그 결과 바운더리가 모호한 회사에 들어간 뒤 아버지도 잃고 자신은 암에 걸렸다고 밝힙니다.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온 삶으로 인해 만성 스트레스가 찾아왔고 그 결과 질병에 걸린거죠. 스스로 자기 바운더리를 보호하려는 노력한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됐죠. 자기만의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단 걸 그녀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바운더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만약 바운더리의 주인이 되면, 건강하고 소통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지고, 삶이 충만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운더리가 세워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하죠.

개인 바운더리는 안내책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 경계를 넘어왔을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도 포함한다. 반복적으로 경계를 넘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취를 취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면 감정적으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당신의 존엄성을 보존할 수 있다. 그렇다. 건강한 바운더리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당신은 귀한 존재다.

스스로를 여왕처럼 대접한다는 것은 자신을 방치해두지 않고,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확고한 능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고 대답하는가는 바로 당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기준이 된다.”(56-57쪽)

바운더리 영역은 6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합니다. 여기선 좀 저만의 흥미로운 썰이 나올 듯 합니다. 첫째, ‘신체적 바운더리’는 바로 몸이죠. 누가 당신의 몸을 만질 수 있는지, 어떻게 만질 수 있는지 사생활의 거리를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는지 정도 포함되죠.

저같은 경우, 가족내폭행으로 인해 신체적 바운더리를 침해받은 경험과 더불어 바깥에선 모르는 어린애의 머리통을 만지는 버릇 등이 그 바운더리를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되겠네요.

둘째, ‘성적 바운더리’는 당신은 어느 정도의 성적 신체접촉을 허용할 것인지 정할 수 있다고합니다. 어디까지 신체적 접촉을 허용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너무 많이 성적인 희롱을 수없이 당해왔기에 이성에 대해 신뢰가 안 가네요. 이젠 이상형만 부합한다면 성별따위 중요치않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네요.

셋째, ‘물질적 바운더리’는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의 물건을 보거나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거나 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돈이나, 옷, 자동차, 그밖에 당신의 물건들을 친구나 친척들에게 빌려줄 것인지 어떠한 상황에서 빌려줄 것인지 정할 수 있다는군요.

저 같은 경우, 어렸을 때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파스텔 한 개를 동급생에게 빌려줬는데 그 애가 부러뜨리고나서 가져와서 좀 속상했어요. 또한 언니는 남자들에게 하염없이 돈이건 자기몸이건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같아요. 말로는 투자라고하지만 정작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백수들이랑 사겨요.

자기가 개고생해서 돈번은 지돈이라면서 남자한테 준 돈은 아깝고 가족한테 주는 돈은 아깝나봐요. 어떻게 그렇게 거꾸로 될 수 있는지. 돈 못받으면서 돈 빌려준거라 착각하는 바보는 우리 언니말고 없을거예요. 마치 어떤 교회에 빠져 그 교회에 전부 돈을 기부해버리는 것과 같아요. 남자가 무슨 벼슬이 되는 줄 아나. 아, 사적인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암튼 물질적 바운더리에 침해당하는 것도 생각해보니 화가 나긴하네요.

넷째, ‘정신적 바운더리’는 당신이 어떤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는거죠. 스스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튼튼한 바운더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바운더리’는 당신의 감정을 책임질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합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함부로 충고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남탓으로 돌리지 않는다고합니다.

“남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감정에 거슬리는 질문을 하는 것들도 정서적 바운더리를 침해하는 것이다.”(61쪽) 저랑 반대군요. 전 중고어플에선 톡으로 댁한테 상품 안 판다고 했고, 교회동생한텐 그러케 살지마라고 충고도 했었구요, 내가 계획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면 곧바로 남탓을 시전하니까요.

제목만 보면 무슨 ‘일러스트 그리기 연습’책인 줄 알겠습니다. 표지부터 검은선이 양측으로 쫙쫙 그어져서 진짜 제목다운 책이라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 '선을 긋는 연습'이란 책은 ‘예술’분야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 분야의 ‘교양심리학’서적이죠.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라고 합니다. 순서대로 읽으라는거죠. 중간부터 읽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책은 그러면 효과가 별로 없다는 듯이 주장합니다. 또한 책제목에서 ‘선을 긋는 연습’이란 한국어 제목보단 어쩌면 ‘바운더리의 주인’이란 제목도 잘 어울리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선을 긋는 연습’이란 제목이 더 와닿았지만, 내용과 잘 비례하는지는 판단이 잘 서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목차의 폰트 종류는 왜 세 가지였을까요? 그냥 두 가지로 하면 안 됐을까요? 그게 더 깔끔하고 보기가 더 좋았을거라 생각이 드네요. 폰트 종류의 통일성이 있었더라면 큰제목과 부제목의 연관성을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교양심리학 분야인 이 ‘선을 긋는 연습’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요. 한 4 가지를 반복적으로 제시합니다. 한 개의 본문이 끝날때마다 ‘핵심정리’란 항목이 있어요. 그건 ‘장마다 요점을 간략하게 써놓은 글’이에요. 그렇다고 그것만 읽어선 곤란해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반드시 앞서 써놓은 본문의 내용을 읽은다음 정리해두는 요점정리글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나중에 이 ‘선을 긋는 연습’이란 책을 다시 읽을 땐 그 ‘핵심정리’부분만 읽어도 될 거예요.

그 다음, ‘자기 돌아보기’란 부분은 마치 설문지 조사처럼 네모 박스가 그려져있어요. 자기에게 맞는 항목에 체크하며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며 파악하는 용도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아..내가 이렇구나’라고 자신을 알게 되는거죠.

그리고 ‘실전과제’는 각 장마다 끝에 있는 부분인데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기본과제’와 ‘심화과제’로요. 근데 저는 파악이 잘 안되더라구요. 어떻게 하라는건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고 자꾸 맨뒤(심화학습)을 보라고 하시니 난감했어요.

부록으론 ‘심화과제’들이 나옵니다. 챕터1에서 10까지요. 마치 ‘실전과제’의 깊이 있는 ‘심화편’을 보는 듯합니다. 진심 연습이 잘 될지 확신이 안 서는 왜인지 모르겠군요.



맨 뒤쪽편에는 ‘상황별 바운더리 대화법101’이라고 나옵니다. 상황마다 ‘대화문’예시들이 많이 나오는데 자기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대화법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을 벌고 싶을 때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잠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30분 쯤 후에 다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등으로 말이죠. 그런 대화법은 실용적이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책이 두껍더라도 오래두고 읽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내 바운더리는 어떤 영역의 어디쯤에 있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점검하는 자세로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건강한 당신의 '바운더리 권리'를 내세우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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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불을 - 한 걸음만 버텨줘
정회일 지음 / 열아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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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야 : [자기계발] / [에세이]

2. 나만의 주제 : 꿈을 이루고 싶은가 이 책에서 해답을 찾기를!

3. 제 점수는요: ★★★★☆

4. 저자소개: 베스트셀러 저자

▼인용N감상문▼


-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이미 이 분의 카페나 블로그글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의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내 뼛속에다 박힌 듯 공감이 주루룩 흘러내리듯 느꼈다. 특히 이 책의 74쪽인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란 부분에서 내게 도움되는 느낌을 얻었다. 한 없이 걱정거리에 사로잡힌 내게 내가 현재가진 고마움이 뭔지 일깨워줬다. '단 하루라도 세상을 볼 수 있다면/단 하루라도 걸을 수 있다면/단 하루라도 들을 수 있다면/단 하루라도 굶지 않을 수 있다면/단 하루라도 일반인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할 수 있다면/단 하루라도 죽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축복이고 행운이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게 내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 문장들을 되새겨봐야겠다. 그리고 이런 글귀가 있다. '제가 부족해서 못해요->부족하니까 나아질 일만 있습니다/'바빠서 못해요->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안 중요한 일줄이고 중요한 일을 하면 됩니다./잘하지못할 것 같아요->제발 잘하지 말고 그냥 부족하게 하세요./중간에 그만두면 어쩌죠?->그만 둔 만큼 해낸 것입니다./나만 못하는 듯해요->남은 참고만, 어제의 나와 비교하세요/노력하는 것 힘들어요->노력을 안하면 능력이 없이 힘들어요.' 등이 문구가 왜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참으로 감사하다. 특히 중도에 그만두기 쉬운 나에게 중도에 그만둔것도 그 일을 해낸 것이라 여겨지게 만드니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ㅎㅎ 딱히 마음에 불을 지피는 정도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불씨 정도는 지펴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상 마음의 불을 읽은 자아탐험가였습니다. ^^

#에세이 #마음에불을 #자기계발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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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의 사회학 - 남자를 지배하는 ‘남자라는 생각’
필 바커 지음, 장영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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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첫 표지에선 이미지가 확 끌어당겨 보였습니다. 뭔가 남자다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초적이고 강인한 인상, 힘센 수컷..등등 이런 느낌에 대해 고찰하는 내용인 것 같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사회학이란 제목이 붙어있길래 사회학자분께서 쓰신 글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어요. 어쩐지 쉽게 씌여졌다고 생각했죠. 저자분은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라고 하더군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남자다움이 뭔지, 남자다움을 어떻게 배워왔으며, 진정 남자다움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전 여자로서 부모님은 아들을 어떤 식으로 키우실까 궁금했는데, 여기선 이런 예시를 보여주더군요. '뭔가를 하다 넘어졌을 때 무릎에서 피가나는 소년은 부모의 어떤 터치나 스킨십이 없단 점이죠. 단지 '괜찮아, 부러진데는 없어, 씨씩한 아이가 되어야지, 씩씩한 아이는 울지 않아.'라는 식으로 사내아이한테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더군요. 그래서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여성끼리는 신체적 접촉이 자연스러운데 반해, 남성끼리는 그러한 접촉이 부자연스럽거나 거의 보기 힘들더군요. 신체적 접촉은 절대 부정적인 감정보단 긍정적인 감정의 효과가 좋은데 남성 혹은 남성끼리는 아무래도 거리감을 가지게 되더군요. 길을 지나가다보면 신체적 접촉이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아보이더군요. 신체적 접촉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자긍심을 북돋아주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경쟁 사이로 보는 까닭이 더 강해서 그러한 접촉은 꺼려보이는 듯 합니다. 게다가 끼스런 게이는 따돌림이나 놀림을 받기 쉽지만, 마초적이고 강인한 인사의 게이는 오히려 친구들사이에서 추앙받거나 같이 재밌게 어울리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차별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뒷 장의 요약정리 부분이 있는데 간략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듯 보였어요. 낯선 외국 용어를 익숙치는 않아서 끝까지 읽진 못했지만, 영화<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나오는 힐러리 스웽크가 떠올랐습니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성이미지는 그런 사회적 성역할을 부여받는 게 아닐런지, 다시금 남성과 성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상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사회학 #남자다움의사회학 #소소의책출판사께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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