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환절기의 영향이었는지, 3시간 동안에 .....금년 들어 최고 기록이란다. ㅡ,ㅡ
1. 대전역에 거의 상주하는 가족. 그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세돌 미만의 어린애 셋을 데리고 단골로 오는 아주머니.
남편의 사고의 충격으로 본인이 위장장애와 불면증으로 옴.
아이가 대기실에서 그치지 않고 빽빽 우는 덕에 진료를 순서보다 일찍 볼 수 있었다.
진료 순서에 유난히 민감한 아저씨들도 아이 울음 소리에는 당할 수 없었나보다.
2. 호흡이 가쁘고 몸이 부어서 온 사람.
이전부터 심부전증 및 천식(?)으로 치료받아왔는데 최근에는 증상이 부쩍 심해져서
10여미터 이상 걸으면 숨이 차서 쉬어가야 한단다.
호흡곤란의 원인이 심장인지, 폐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상당한 종류와 양이 들어가는데
(digoxin, aminophylline, bronchodilator, diuretics, ....... )
2차병원 (여기서 2차명원이라 함은 필요한 검사가 가능한 일반 의원을 말함)을 가자고 했더니....
직장이 수원이라서 보름 후에나 다시 올 수 있다고 한다.
그 직장이란........ 고물상 직원. 그 몸을 하고 과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원에는 무료 진료소가 없어서 이전부터 다니던 여기까지 한달에 한번 온다고.
일단 수원에 있는 지인 중 진료를 해줄만한 곳을 알아보겠다고 함.
구하지 못하면, 2주 동안 버텨내서 2주 후에 내려올 때는 몇일 병가를 얻어오도록 하자고 함.
3. 40대 남자. 얼마 전에 등의 피부에 점이 혹처럼 커져서 왔었음.
큰 병원 조직검사 결과 피부암이라 했다고. 그런데 수술도 안하고 항암제 치료중이라 한다.
이미 어느정도 마음의 정리를 한 듯, 눈빛은 평온해 보인다.
그 평온한 눈빛을 마주보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4. 고혈압, 당뇨에 감기가 걸려 온 사람. 관절염과 허리아픈건 기본이다.
그런데 눈썹 위에 다쳐서 꼬맨 실밥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20일 전에 다쳐서 어딘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단다. 이미 실밥을 뽑아야 할 시기를 한참 넘겼다.
왜 이야기 안했냐고 물으니...........다른 증상이 워낙 많아서 그것까지 이야기 못했단다.
5. 중년 여자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가 엄마의 증상을 보호자처럼 이야기 한다. 그 말미에 "엄마는 화병 걸리셨어요" 라고 한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졸지에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화병 날 만도 하다.
6. 쪽방 사는 8순 넘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
할머니는 양쪽으로 목발을 짚고 겨우 거동하시는데,
할아버지가 기력이 약해져서 최근 몸 한쪽을 못쓰시고 식사도 전혀 못하신다고
할머니가 대신 약을 타러 오셨다.
할머니 말씀, '손자 새끼가 둘이나 있는데 할아버지마저 안계시면 이제 어떻게 하나' 걱정하신다.
할아버지, 아무래도 할머니와 손자들 때문에 꼭 일어나셔야겠어요.
7. 상당히 깨끗한 차림의 50대 남자.
치통이 굉장히 심해서 왔다. 이미 보름 전부터 치통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라 함.
의료보험도, 기초생활 수급권도 없어서 이빨을 뽑아야 하는데 뽑지 못하고 있다.
다음주 수요일에 잘하면 의료보호 카드가 나온다고 한다. 앞으로 5일만 참으면 된다.
8. 허리, 무릎 아프고 감기 몸살로 오신 아주머니.
몸이 많이 안좋지만 앞으로 1년은 최소한 버텨야 한단다.
아들이 C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라고.
다행히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를 안내고 다니는데,
아르바이트 하랴, 공부하랴, 용돈벌이정도 겨우 한단다.
아무리 어려워도 본인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차마 3학년에서 공부 그만두랄 수 없다고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고 약을 드시러 오셨다.
9. 엉덩이에 종기가 크게 잡힌 사람. 아파서 의자에 앉지도 못한다.
보니까 정말 크고 깊게 잡혔다. 째면 고름이 한종지는 나올 것 같았다.
흠....... 이거 사람도 많이 기다리고...... 아직 덜 여문 것 같고...
오늘은 째지 않고 항생제만 처방함.
째는 일은 다음주 수요일 당번인 선생에게 넘기기로 했다.
실무자에게는 "다음주에는 거즈 넉넉하게 소독해 두세요." 부탁해 두고.
10. 진료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쉼터로 갔다.
식도암으로 식사를 거의 못하는 환자가 있어서 포도당 수액주사를 놓아주기 위해서이다.
원래 쉼터에 입소하는 것은 '재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그런데 이분은 어떻게 입소하게 되었을까?
진료센터에는 주중 낮시간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가 있다.
이 사람이 찾아와서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 공중보건의에게 말했다.
이미 말기 상태라 거의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항암 치료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또한 그럴만한 예산도 없다.
공중보건의는 쉼터의 규정을 알지만, 쉼터의 소장인 원목사에게 전화했다.
어쩌겠는가? 모르면 몰라도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원목사, 규정에 벗어난다는 것은 알지만, 일단 입소시키자고 했다.
어쩌겠는가? 모르면 몰라도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입소는 했지만 정말 해줄 것이 없다.
공동모금회나 시 예산에서 지원하는 의료비는 이미 10월 현재 연말 것까지 다 써서 바닥이 난 상태인데.
아마도 신모 샘에게 의논하게 될 것 같다. 그쪽 병원은 이런 환자도 받아주니까.
예산이 없다 해도 어찌어찌 부대끼면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이분들은 모두 오늘 저녁에 온 환자들 중 일부이다.
오는 사람 모두가 이렇듯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우리의 정신적/ 경제적 안정을 물질적으로 받치고 있는것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된다.
1. 건강 2. 가족(드물게는 동료) 3. 돈
이들은 마치 세 개의 다리와도 같아서, 세 가지가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을 때는 무척 안정적이다.
다행히 많은 경우에 있어 이 세가지가 균형잡혀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 한가지라도 흔들리게 된다면....
다리가 하나 부러진 탁자처럼 생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찌어찌 균형을 잡기는 하지만 그 균형을 오래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 상태에서 남은 두개의 다리 중 하나의 다리가 또 흔들린다면.....
위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동안 1, 2, 3이 다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 가지 중 두 가지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사람들 중, 나머지 두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그만큼 먼 일이 아니다.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이유가 그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