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B군이 대만에 갔다.

옷이 맘에 안들었다. 공항 옷도, 기자회견 옷도.  ---> 스타일리스트가 맘에 안든다.
머리 모양도 맘에 안들었다. 기르려고 하는건가?  ---> 헤어 담당 맘에 안든다.
공항과 호텔에는 왠 사람들이 저리 몰려 나왔지? ---> B군이 걸을 수 있게 길은 터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기자회견도 했다.  그런데 질문들이 다 맹탕이다 ---> 기자들 자질에 문제가 있다.
B군의 대답들도 다 모범답안들이다. ---> 역시 파격은 없군. 단, 끝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은 고집은 높이 살만함.

아니면.... 내 기분에 문제가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2. 요즘은 내 자신이 영 맘에 안든다.

아침에 출근,  즐겨찾기를 한바퀴 돌았다.... 중요한 뉴스는 별로 없었다. 
보내야 할 공문을 점검해서 다시 올리고....
점심에는 buddy들과 밥먹으면서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이견을 나누었다.
과학이 진실보다는 학파 내외의 정치력, 과학자 개인의 카리스마와 미디어 동원력, 지원금 동원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 과연 이런 과정의 결과물을 '과학'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  
또... 다음주 머쥐모임 준비 관련 이야기 하고.....
생명윤리와 배아복제 등에 대해 하려고 하는데 그자리에서는 '자료 검색을 해야지' 하고 결심하고는
돌아와서는 싹 잊어먹는다. 
오후에는 B군 기자회견 뉴스 잠시 보고.... 
연사 초청 건으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통화중이다. 전화가 잘못 놓였나? 어떻게 몇시간동안 통화중이지?

천둥 번개가 치더니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세차게 비가 내린다.
밖에 나가 비 구경하고 싶다. 저 비를 맞아보고 싶다 생각하지만..... 
결국은 생각만으로 끝날 뿐, 진료실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가 와서 환자가 드물어진 시간에는 잠시 '선사예술기행'을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책이다.
그냥 동굴 벽화만 둘러보는 책이 아니라, 이를 통해 고대인의 생활상, 고대 문화와 예술, 사회구조까지를 추적해 가는 내용이다.  이과이긴 했지만 생물학 전공이 아닌 저자의 전공 영향인지, 유전자 인류학에서 밝혀진 내용에 대해서는 반론을 폈다. 본인도 '근거보다 앞서 나가는 의견'이라고 전제하고 제시하는 가설들은 어떤 것은 그럴듯 하고, 어떤 것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퇴근 후 공문 메일을 서둘러서 마무리 하고.... 약속장소로 갔다.
참, 그 전에 동생의 부탁으로 약을 처방해서 약국으로 사러 갔다.

저녁에는 약속 두개가 겹쳐져 있다.
자봉동 모임과 벧엘의집 회의. 둘 다 소중한 모임인데, 두 모임 다 성의없이 임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듯, 회의는 일찍 끝났고, 자봉동은 늦게 모였다. 
결국 핸드폰 몇 통화로 두 모임을 한 자리에서 회식하는 것으로 얼버무렸다. 

자봉동 모임은 역시 풋풋하다.  
고등학생인 K양이 대학 진학 준비로 다큐멘타리를 찍고 있다.  
'활동에 있어서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 '활동의 개선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 회장을 하고 있는 대학생이 심한 낯가림 때문에 저녁식사가 끝날때까지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대타로 다른 학생을 '가짜 회장'으로 내새워서 인터뷰를 마쳤다. 
우린 농담으로 'K양이 자꾸 회장을 갈구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라고 K양을 놀렸다.

지난 주에 있었던 모 학생캠프에 참가했던 학생도 왔다. 
학생캠프가 참 좋은 경험이었다고,  활동했던 장소와 시기도 잘 맞아떨어져서 의미가 컸었다고...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그런데 이렇게 시야가 넓어지다보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고...
그 열정과 순수함, 명료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지켜야 할 것이 적다는 것이 부러웠다.  

회식 끝나고 나오는데, 벧엘의집 원목사님이 나를 붙잡는다.
"언제 오실거에요?  그 교회에? 제가 은사로 생각하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야기좀 나누어 보세요."
예전부터 만남을 권하던 분이 있었다. 일반적인 선교와는 다른 의미의 권유인 줄은 알지만..... 
"아직 제겐 대신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이 계시니까 좀 더 있어볼래요."
하지만 속으로는 믿음에 귀의한 자들의 평화와 안식이 부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자봉동 학생들 정류장과 집으로 태워다 주고....
여동생에게 약 전해 주고....
집 프린터 잉크가 떨어져서 숙제 프린트 못하고 있다는 아들 전화 받고 할인점 가서 잉크 사서 왔다.


그런데, 과연 내가 오늘 '열정적으로'  '제대로'  한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연 있었을까? 
그냥 관성대로 그날그날을 지내는 것 같다.

문제는.... 이 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다른 이유들 - 억압요인 - 이 가슴을 갑갑하게 누르고 있다. 요즘.
그 조임으로 인해 하는 일 없이 에너지를 빼앗기고,
그 조임을 핑계로 해야할 일들에서 손 놓고 있다.

이런..... 사추기로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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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5-08-20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열성적으로 제대로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요? 가을산님은 항상 너무 열성적으로 사시잖아요... 때로는 나를 그냥 좀 내버려둬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억압 요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때로는 그냥 쉬어가는 것도 답이지 않을까 싶어요...
(심하게 나를 내버려두는 인간이 이런 말을 하니 좀 그렇긴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