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일 전 신문과 뉴스 보셨죠?  제주도에서 5만년 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


 

 

 

 

 

이걸 두고 우리 민족의 기원이 북방계라는 학설을 '뒤집는'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쓴 기사도 있습니다.

전 우리 민족이 '북방계냐?' '남방계냐?'라는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구요, 5만년 전에 인류가 살았던 흔적, 그것도 아주 희귀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2. 사람 발자국 화석과 함께 코끼리, 말, 사슴 등의 발자국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는 황해바다가 육지였던 것은 아니냐? 라는 추측이 있는데요, 이것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말입니다. 5만 년 전이면 마지막 빙하기의 끝무렵 쯤 해당하므로 해수면이 현재보다 현저히 낮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한 지역에 인류(부족)의 이동은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고대 문화나 인류의 이동을 이야기할 때에는 종종 간과되기도 합니다.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건데, 이런 부족의 이동과 문화/정치적 전파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

먼저 남방계의 이주민이 먼저 자리 잡습니다. 그 후에 좀 더 발달한 신석기 말이나 청동기 시대의 북방계 이주민이 이동해 와서, 이 지역을 '정복' 합니다. 이와 함께 남방계의 생활양식과 문화는 흡수, 소멸됩니다.

1) 중국의 경우, 남쪽의 장강 문화가 황하문명에 통합된 것,
2) 우리 나라는 남쪽의 발자국 주인을 비롯한 가야, 신라 및 백제의 남방계 원주민에 이어서 북방계인 고구려와 백제 지배계층이 내려온 것,
3) 일본의 경우는 조몬문명을 일군 부족과, 그 후에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들어온 부족(이름은 생각 안남),
4) 인도의 경우, 남방계의 원주민, 그 후의 아시아계 '석가'족, 마지막으로 아리안족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4. 그런데, 왜 꼭 북방계 이주민이 남하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1년 내내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식품을 저장하거나 재화를 '비축'할 필요 없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부족 생활의 영위가 가능합니다. 부족 생활은 대부분 가족 친척 단위로 이루어지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구성원의 의사가 잘 반영되는, 상당히 평등한 구조였다고(또한 현재에도 그렇다고) 합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도 하루 2시간 남짓이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쪽 지역에서는, 기후가 온화한 시기에는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기후가 추워지면 식품의 '저장'이나 '비축', 이도 안되면 '훔칠' 필요까지도 생기게 됩니다. 열악한 기후의 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더 사냥하거나(이것도 한계가 있죠), 더 머리를 쓰거나(농경의 발견), 남보다 더 잘 싸워야(청동기, 철기의 이용)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농경이나 정벌에는 필연적으로 통제된 위계질서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족 국가, 도시국가가 형성되고, 계급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도시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식량과 연료, 그리고 노동력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부족의 길러진 '힘'을 바탕으로 남쪽의 부족들을 공격해서 세력 범위를 넓힘과 동시에 식량, 연료, 인력을 공급 받습니다.

남쪽 지역의 부족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1) 살던 터전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2) 식량, 연료, 인력을 빼앗기면서 흡수되거나, 3) 저항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3)번 저항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침입자들과 같은 방법인 무력 증강과 통제된 리더십의 확립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의 방식' 면에서는 어차피 동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5. 요즘 세상에도 비슷한 원리가 작용 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 체제를 크게 보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은 능력껏 일하고, 생필품, 식량, 의료, 교육, 노후는 국가에서 보장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이론적으로) 평등합니다. 개인이 노후를 위해서나 자녀 교육을 위해서 돈을 벌어놓지 않아도 됩니다. 순수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무척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우리의 이성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효율과 관료주의의 병폐가 따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 놓고 돈 먹기' 아니면 'Fee for Service(일한 만큼 번다)' 입니다. 개인들이 노력해서 돈을 벌어서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노후 생활도 대비하고, 생활도 꾸려가야 합니다. 그러니 제대로 살려면 열심히 일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런 사회는 더 나은 써비스, 더 다양한 소비재, 더 발달된 과학기술을 제공하고, 한편으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를 하게끔 유혹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풍요로운 소비와 편리한 생활이 가능하지만, 이런 생활은 이 사회에서 '성공한'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고, 또 성공했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풍요를 보장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 두 경제체제가 경쟁을 한다면?

체제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두 경제체제의 본래 특성을 왜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북방민족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계질서와 계급을 형성했듯이 이 경우에도 효율적인 경쟁을 위해 본래의 순수한 사회주의나 시장의 자율성은 침해되고, 누가 되었든 독재적인 체제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인위적인 왜곡을 배제하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 두 체제 중에서 아무래도 인력과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지본주의 쪽이 그 사회의 생산력이나 효율성, 그리고 국력 면에서 앞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살아남을겁니다.

6. 그런데, 순수한 자본주의, 혹은 순수한 사회주의 사회가 가능한가?

5번의 개념적인 체제와는 달리, 현실 세계에서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나 순수한 사회주의 국가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면에서는, 전 그런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에 가장 근접한 국가가 아마 미국이겠고,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 그리고 저의 무식으로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국가 중에서 순수한 사회주의에 근접한 국가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두 극단 중의 어디에서 두 체제의 절충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세금으로 유지하는 사회 간접 자본, 혹은 사회복지 제도는 사회의 사회주의적인 요소입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도 사회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마련한, '행위별 임금 혹은 투자액 비례'와 무관한 사회의 안전망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자본주의적인 시장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로 양분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단지 그 사회가 처한 사회적인, 자연적인 환경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서 이 두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에 덧붙여서 한 개인이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다 해서 의혹을 가질 필요도 없고,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송두율 교수를 구속하는 것 같은 창피한 일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7. 저런, 발자국부터 시작해서 참 멀리도 왔군요. 한발자국만 더 가겠습니다.

각 구성원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옛날에 부족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도시국가 혹은 이에 뿌리를 둔 제국에 편입되었듯이( 위의 1), 2), 3)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흡수되듯),  현재의 세계화 시대에 시장 중심 체제, 자본주의 체제를 외면하고는 국가별, 그리고 국가 내의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발자국 더 가고자 하는 이유는 이런 체제로 계속 갈 때 과연 인류가 (의미 있는 문명 생활을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지구가 과연 우리 자손 몇 세대나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환경 오염을 피해야 하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건 참 웃기는 말입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는 한에는), 앞으로 최소 10억년은 지구와 지구 위의 생명체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환경이 오염되고 자원이 고갈되고 기온이 급변할 때 곤란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은 '지구'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앞가림부터 해야 할 처지입니다. 지구의 환경과 자원, 그리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의 면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은 소비지향적이고 자원 착취적인 생활 방식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중에서도 효율성 만능인, 그러나 가장 소비지향적이고 자원 착취적인 경제 체제입니다(국가에서도 기업의 이윤 추구를 제어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두었을 때는 마치 북방 민족들이 남방 민족의 생활양식을 흡수해 버리듯 지구 전체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미 거의 그렇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문제점들이 지난 10여년이 지나면서 차차 그 부작용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혹시 일부 국가들이 물질적으로 풍요해졌는지 몰라도 그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 피로해 졌습니다.

누구든지 세계적인 빈부 격차의 확대와 경쟁의 격화 그리고 자원의 착취와 환경 파괴는 이제 멈추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자연적으로'는 멈추어 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행히 국가들과 개인들이 차츰 문제점에 눈을 뜨고 있고,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궁리, 더 많은 대안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상이나 개인의 선호 여부를 떠나서 인간이, 내 자손들이 '살아남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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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2-1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국에서 출발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까지!
가을산님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병폐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ceylontea 2004-02-1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환경 오염을 피해야 하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건 참 웃기는 말입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는 한에는), 앞으로 최소 10억년은 지구와 지구 위의 생명체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말에 참 공감합니다..
저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을 인상깊게 읽었고... 제 인생 전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그 이유가... 그 책에 나오는 말콤박사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죠.
지구의 환경이 계속 변해가면, 인간이 그 환경에 맞추어 진화해서 살던가...
아니면.. 인간이 그에 맞추지 못할 경우 인간이란 생명체는 멸종하겠지만.. 언젠가 지구에 또 다른 생명체가 나타나 우위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가을산님 글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인간은 정말 인간이 가장 우위에 그것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