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과 관련한 생각....

마립간님의 질문이 있어서 조금 정리해 봅니다.

1. 의협에서 제기하는 문제점

i. 의료법의 위상 약화

개정안: 이 법은 의료인, 의료기관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의협의견: 현행 의료법에 정의된 '국민 의료에 관한 법'에서 '의료인, 의료기관 등에 필요에 관한 법'으로 위상 약화되었다.

내의견: 조항에 명시된 것만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음.
      목적의 기술은 달라졌어도 법 조항들이 포괄하는 범위는 바뀌지 않음.
      의협에서 주장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목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음.
      의협의 주장은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위상의 저하를 우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음.

ii. 의료행위에서 투약 제외

개정안: 이 법에서 '의료행위'란 의료인이 관련 전문지식을 근거로 건강증진, 예방, 치료 또는 재활 등을 위하여 행하는 통상의 행위와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건강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그밖의 행위를 말한다.

의협: 대법원 판례에 적시되어 있는 '진찰, 검안, 처방, 투약,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 행위....' 중에서 개정안에는 '건강증진, 예방, 치료, 재활'만 서술되었음.
         이것을 근거로 '투약이 제외되었다'고 주장.

내의견: 현재까지의 의료법에서도 '투약'이라는 표현이 없이도 투약은 당연히 의사의 치료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고, 복지부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한 바 있음.
    아직 의사들은 의약분업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음.  인** 역시 다른 이유로 그렇긴 하지만...  ㅡ,ㅡa

iii. 표준 진료지침 재정

개정안: '보복부 장관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질환별 의료행위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표준진료지침을 정하여 공표할 수 있다.

의협: '붕어빵 진료지침'이며 이는 의사의 전문인으로서 직능을 완전히 무시하고 의료행위를 강력히 통제하려는 의도이다.

내 의견: 외국에서도 표준진료지침이 제정된 경우가 있음. 
      의협의 문제제기로 개정안에서는 명칭을 '임상진료지침'으로 바꾸었음.
      의료행위나 처방을 표준화 시킨다는 것은 매우 단순한 사고방식임.
      표준지침은 제정되더라도 그저 참고자료일 뿐,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른 진료와 처방은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고, 이러한 의사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함.
      의료보험이나 민간보험에서 이 표준지침을 진료와 처방에 대한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하면 안됨. 

vi. 유사의료행위의 허용

개정안: 의료인이 아닌 자가 행하여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제5조에 불구하고 유사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유사의료행위의 종류, 유사의료행위자의 자격 및 업무 범위 등 유사의료행위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의협: 유사의료행위의 허용은 매우 위험한 생각.

내 의견: 나 역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함. 
   이 개정안은 그동안 '음지'에서 자라난 여러 가지 유사의료행위를 양지로 끌어내서 관리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관련 이권단체들의 로비의 결과일까?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무리 간단한 의료 행위도 늘 위험의 소지는 있다.  의학에서 100% 안전한 것은 없기 때문.  
   그렇다면 부작용만 없다면 누구나 어떤 의료행위든 행해도 된다는 말인가?

   무자격 척추교정사, 수지침술사들, 뱃살방, 피부미용사, 문신시술사, 건강식품 판매상, 다이어트방 
   등은 환영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이를 명문화 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보건위생상 위해'에 대한 정의 및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유사의료행위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지금도 불법적인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 유사의료행위에 대한 단속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의료법에 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봄. 
  이들에게 시술 받고 부작용이 나타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누가 책임을 지지?

v. 간호사의 위상 강화

개정안: 간호사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간호사는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체계적인 관찰, 자료수집, 간호진단(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진단 후 요양상 간호를 행하는데 있어 선행하는 간호적 판단을말한다) 등 요양상의 간호 ....

의협: '간호진단'이라는 용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음.
          간호사의 업무 중 간호진단의 허용과 유사의료행위의 허용은 의료를 나눠주기식 수평적인 진료권
          분산으로 보고 있음. 
          의협의 항의가 있은 후, 개정안에 괄호로 간호진단에 대한 설명이 추가됐음. 

간호학에서 정의하는 간호진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간호진단의 정의는 실제적 또는 잠재적 건강문제에 대한 개인, 가족, 지역사회의 반응을 임상적으로 판단하는 것.
의사의 진단과 간호진단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함. '간호학은 질병 자체에 관심을 두는 의학과 달리 인간 반응(질환에 대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영적 반응)에 관심을 가지고 진단을 하는 것'.
사실, 간호진단이라는 개념은 의사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환자 평가에는 환자의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반응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다는 말인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측정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고, 그 환자에게 동기부여, 식단 조절, 약물 복용 환기 등은 간호사의 역할이라는 것인지? --- 이것이 일반적인 의사들이 당황해 하는 이유이다.

간호협회에서 '간호 사정, 간호 평가, 간호 판단' 등의 표현을 두고 굳이 '간호진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는
독립된 의료인으로써 단독으로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간호학회의 오랜 숙원이 잠재해 있다.
이는 단지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보건진료원이나 가정방문사업에서는 실재로 간호사의 독립적인 역할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정방문사업의 확대와 요양보험의 시행에 간호계가 아주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조항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남아 있다.
간호사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위계질서 또한 의사들의 위계질서 못지 않게 탄탄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 현실에서, 간호사들이 '진단'과 독립적인 처치의 영역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아직 생소한 현실이다.

유사의료와 간호진단의 개념이 의료법에 도입되기까지는 의사들의 사회성 부족과 현실에 대한 안이한 대처가 한몫 한 것 같다. 의사들이 병의원의 운영과 학회의 명망에서 관심을 공공의료, 사회 복지 전반으로 확대하지 않는 한, 이런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2. buddy들이 제기하는 문제점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한마디로 의료 시장화, 영리화를 현실화 시키는 법안이다.

i.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

- 현재는 부대사업으로 노인의료복지시설, 장례식장, 주차장,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 이용업, 미용업 등을 의료법에 명시한 데 반해서 개정안에는 '의료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 의료업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는 어떤 부대사업을 벌여도 된다는 것인지? 
  앞으로는 의료법인의 창의력 넘치는 부대사업을 구경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최종안에는 빠졌지만, 실무작업반에서 명시했던 내용을 보면 그 상업화 정도를 알 수 있다.
  1) 연구-기술개발 및 지원(이것은 현행법에도 있음), 2) 해외진출, 3) 관광사업 중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객이용시설업, 관광편의시설업,  4)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체인사업, 5) 사회복지사업 중 유료로 이용하는 사업  

- 특히 부대사업으로 병원 경영지원회사를 인정하게 되어서 의료기관의 체인화를 가속화 시킬 것이고, 이를 추진하는 주체들은 코스닥 상장까지도 목표하고 있다 함.

ii. 의료기관 유인, 알선 금지 조항 완화.

개정안 : 누구든지 국민건강보건법이나 의료급여법의 규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유인/알선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3호: 보험업법에 따른 보험사, 의료기관, 보험가입자 사이에 비급여비용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격 계약을 하는 경우.

즉, 이 법안은 민간의료보험에서 의료기관을 알선하는 것은 허용한다는 뜻이다.
이는 개개의 의료기관이 민간의료보험과 deal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간의보에서는 협진 의료기관을 확보하기 위해 환자유치를 무기로 유혹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민간의보가 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환자를 유치해 준다니 고마운 일이었지만, 어느정도 가입 의원이 확보되면 슬슬 진료 내용에 대한 간섭, 개별 의사와의 수가 계약 등을 들고 나와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의사들처럼 민간의보의 진료 간섭으로 골머리를 앓고 결과적으로 수입도 줄 것이다.

소탐대실이라고.....  그렇지만, 개원의 중에 이 미끼를 안 물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미끼를 물어도 손해요, 안 물면 도태되는데.....
나는 수입이 늘던 줄던.... 나의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 민간보험사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 보험 장삿군하고 나의 진료 행위가 얼마짜리다 흥정하는 것 자체가 싫다. 

iii. 의료광고 규제 완화

현행 의료법 및 복지부령은 의료 광고에 대해 상당히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완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개정안을 보면 10 가지의 금지 사항만 나열해 놓고, 그에 저촉되지 않는 광고는 전면 허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예치과' 광고, '삼성의료 네트워크 광고' 같은 것을 TV나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자금력 딸리는 일반 개원의들은 이들이 뛰고 나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iv. 병원 내 의원 설립, 비전속 진료의 허용

이른바 스타 의사들, 명의들은 살맛 날 것이다.
대형 병원에 자기 의원을 개설해서 시설 이용하고 자기 환자 보고, 수익은 자기가 갖고...
여러 병원에 이름 걸어 놓고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다른 병원 가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 보고....
각 병원은 그 의사 이름을 걸고 환자들 유치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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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열한 네 가지는 의료법 개정안에 산재되어 있는 의료시장화 요소 중의 일부이다.
부대사업, 알선, 경쟁, 자본을 바탕으로 한 빈익빈 부익부......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만 예외여야 할 이유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할 말이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진료와 의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국민 건강이 좋아진다.
의사들이 경영과 사업에 몰두하고, 자본력을 키우지 않으면 도태되는 환경에서 얼마나 환자와 지역사회의 건강을 염려할 수 있을까?

의료기관의 분포와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이 지역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익성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이래저래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미국의 의료제도를 따라가려고 용을 쓰고 있다. 


3. 이밖에 가을산 생각

i. 의협의 위상 강화.

개정된 의료법에 보면 '의료인단체 중앙회는 의료인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의료인윤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그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면서, 그 사유로 보수교육을 받지 않은 자,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자, 취업상황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를 나열했다. 

이 조항이 나를 뜨끔하게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 나는 의약분업 사태 이후로 의협 회비를 내지 않았다.  ㅡ,ㅡa
- 나는 작년에 회원 신고서를 내지 않은 것 같다.
- 의협 역사상 의료윤리위원회에 회부해서 회원 자격 정지를 내린 적이 딱 한번 있다.
  바로 의약분업의 정책을 추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김 모 교수와 조 모 교수에 대해서
  의사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해서 몇년간의 회원 자격정지 결정을 내린 것.
  그때 당시 의협 분위기는 회원 징계권이 없어서 상징적인 징계밖에 할 수 없어서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이 두 교수는 징계에 불복, 소송을 제기해서 결국 징계의 취소와 각각 1000만원 넘는 위자료 까지 받아냈다.
  즉, 의협의 의료윤리위원회의 결정은 과연 공신력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동반하지 않는 징계권의 이전은 무고한 회원을 다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두 교수처럼 소송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사항에 대해 이야기 하는 buddy들 왈, '또 때리면 또 맞지 뭐.', '나서서 문제제기하기는 거시기하다'


ii. 의협은 누구를 위한 의협인지?

의협은 의료시장화에 대해서 단 한 가지도 지적하지 않았다.
의료시장화가 일반 의사들보다는 종합병원이나 특수 클리닉, 체인점을 운영하는 의사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 그럼에도 의협은 일반 회원들이 별로 걱정되지 않는 것 같다.
병협은 이번 개정안에 찬성하고 있다. 의협이 반대하니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일반 의사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iii. 많이 외로웠군.

의료법을 검토하면서, buddy들과 함께 기뻐한 점이 있다.
정말 오랜만에 일부 조항에서나마 의협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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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t 2007-03-0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생각에 동의 백만표 던집니다. ^^

가을산 2007-03-0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니 2007-03-0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memolog.blog.naver.com/chpokdo/1
김민기의 '봉우리'입니다 들어보세요^^

가을산 2007-03-0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고니님.

2007-03-06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라 2007-03-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의료법 얘기가 나와서도 쟁점이 뭔지 잘 몰랐는데 알기쉽게 써주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가을산 2007-03-2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의사 관점의 이런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설득력이 있는지가 궁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