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싫은 날들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입을 열어서 공기를 들이쉬고 혀를 움직여 어떤 소리라도 만들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말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니까. - P79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었다. 어느 계절의 시간 속에, 기억 어딘가에 넣어 놓고 열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처럼 잠들 수가 없을 때면 밀려왔다. 모든 것들이. - P57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민낯의 나를, 그렇게오래도록 내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내가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다. 더는 한국의 새벽 네시도 두렵지않다. - P108
조금 전 실패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듯 소녀는다시 공을 던졌다. 나는 소녀에게 농구가, 나에게 글쓰기와같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실패해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것.그저 내가 나를 만족시킬 때까지 끝없이 하는 것. 마음과 몸이전부다 쏠리는 것. - P95
몇백 년 전까지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면, 이제너무도 많은 기대를 품고 사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공원이필요하지 않을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딸로서 혹은 엄마로서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너무 오랫동안 내 민낯을 보지 못한우리에게 말이다. -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