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가까워오면 아무것도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 결국은 굶어서, 탈수로 죽는다. 그런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겠다는 결심을 한다는게 어렵지만 또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글쓴이가 대만 사람이라 존엄사(조력자살)에 대한 법률이나 제도를 대만 기준에 따라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다. 일단 가족이 의료인인 것이 유리하다. 의료적 조치를 직접 할 수 있다. 차분히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가족과 충분한 작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니 먹을 수 있는데 굶어서 죽는다는 건 본인도 괴롭지만 옆에서 돌보는 사람이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엄마는 굶어서 죽어가는데 나는 살아야하니 먹어야 하고.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느니 그냥 스위스에서 개발했다는 캡슐에 누워 질소가스와 함께 짧게 끝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살다 보니 견뎌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아 나는 그때 국어 선생님의 담담한 표정을 자주 떠올린다. 견딘다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는 적극적인 태도라는 걸 뒤늦게 알아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견뎌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 P86
지구와 태양은 광대한 우주에서 모래 한 알에 지나지 않는데 나라는 존재는 또 뭐란 말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유한한 삶 속에서 존귀하고 책임감있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죽는다. 죽음에 초연했던 어머니는 가장 소중한 수업을 해 주셨다. - P249
인위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환자의 고통을 몇 주 혹은 몇 달까지 연장하는 일이 환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윤리에 부합하는가? 입법자, 의료 간병인, 가족의 관점이 과거에 얽매여 있어 환자의 자주권을 찾아보기 힘들다. 임종을 앞두고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 P228
그러나 80년대 이후 우리는 그렇게 열린 새로운 믿음과 영성의 길을 이어가지 못했다. 진보 운동은 세속화되었고, 기성종교는 보수화되었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하여 모두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 P106
진리든 선이든 오직 전체가 절대자이다. 그런즉 하나님도 전체이다. 부분을 위한 신은 더는 신이 아닌 것이다. 의인이 하나도 없고, 진리를 깨닫는 자 역시 하나도 없는 까닭은 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전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치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 P106
하지만 가능한 믿음이든 불가능한 믿음이든, 참된 믿음이 역사와 유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새로운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형성해 온 역사의 의미를 믿음의 관점에서 해명할 때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뿌리 박은 믿음이란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 믿음의 모범이 된 사람들이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던 그런 믿음일 것이다. -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