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유의 첫 번째 원리는 자기 통일성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는 의식이 없는 곳에서는 생각이 일어날 수 없다. 물론 이 동일한 자기에 대한 의식은 그 자체로서는 공허한 자아의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의식의 장소가 구체적 내용으로 채워짐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그 사유의 내용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충돌하지 않을 때, 그 일관성이 한 인간의 정체성identity 이 된다. - P61

전태일을 전태일 되게 만든 것은 자기 개인의 가난과 고통이 아니라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아의 경계는 고통의 경계와 같다. 자신의 피부가 자기가 느끼는 고통의 경계인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체가 곧 자아의 전부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때, 내가 느끼는 고통의 범위가 확장되는 만큼 나의 자아도 확장된다. 그리하여 내가 고통을 느끼는 대상이 확장되는 것만큼 나의 존재, 나의 세계도 확장된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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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국가가 모두에 의한 국가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국가이다. 아무리 국가가 모두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모두를 위하여 운영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한갖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형식은 실질과 부합할 때 온전한 것일 수 있다. - P45

민주주의라는 형식이 공화국이라는 실질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형식적 민주주의는 시민적 삶의 온전함을 담보할 수 없다. 이처럼 시민적 삶의 온전함을 담보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라는 형식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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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비판이 한갓 타자의 부정에 머물러 적극적 자기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이 자기 형성을 통한 서로주체성의 실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적을 통해 결속된 우리는 그 적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남남으로 흩어지고, 지배권력은 그렇게 원자화된 시민을 끊임없이 상호 경쟁으로 내몲으로써 자신의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 P39

반대로 말하자면, 보편적 선의 이념이나 가치가 없을 때, 국가는 통치 기구일 수는 있으나, 참된 의미의 정치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본래성으로부터 멀어질 때,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부패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 시민들이 더불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존재하지 않을때, 정치는 맹목적 권력 투쟁으로 치닫게 되고, 이 권력 투쟁이 국가의 해체를 추동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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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영성 없는 진보"가 된 다른 까닭은 이 나라의 보수 정치에는 전체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정신 자체가 없으므로 믿음이나 영성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8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그들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친구들이 공장 가고 감옥 갈 때, 고시 공부해서 출세한 뒤에, 이제는 자기 대신 독재권력과 싸워서 세상을 이만큼이라도 바꾸어 놓은 사람들을 향해 운동권 특권세력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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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체를 위해 나를 버릴 수 있으려면, 세계가 나와 하나이며,역사가 선을 향해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직 그 믿음 때문에 나는 전체를 위해 나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전체와 하나이므로, 내가 전체를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은 나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전체속에서 나를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5

이런 믿음이 영성이다. 그러니까 영성이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신비적인 체험이 아니라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굳건한 믿음에 존립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이성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인식이 아니고 믿음이다. 인식이 이성의 일이라면, 믿음은 영성의 일이다. 그리고 인식의 체계가 과학으로 나타난다면, 믿음의 체계는 종교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은 종교적 삶의 지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5

전체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전체와 내가 하나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체의 바다에 자기를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정치가 순전한 세속주의로 흐르면서, 진보는 그 믿음을 잃어버렸다. 믿음은 영성의 일이다. 그래서 제목이 "영성 없는 진보"가 되었다. 이 제목은 나의 자기반성과 성찰의 표현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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