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비판이 한갓 타자의 부정에 머물러 적극적 자기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이 자기 형성을 통한 서로주체성의 실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적을 통해 결속된 우리는 그 적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남남으로 흩어지고, 지배권력은 그렇게 원자화된 시민을 끊임없이 상호 경쟁으로 내몲으로써 자신의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 P39
반대로 말하자면, 보편적 선의 이념이나 가치가 없을 때, 국가는 통치 기구일 수는 있으나, 참된 의미의 정치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본래성으로부터 멀어질 때,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부패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 시민들이 더불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존재하지 않을때, 정치는 맹목적 권력 투쟁으로 치닫게 되고, 이 권력 투쟁이 국가의 해체를 추동한다. -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