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환자의 고통을 몇 주 혹은 몇 달까지 연장하는 일이 환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윤리에 부합하는가? 입법자, 의료 간병인, 가족의 관점이 과거에 얽매여 있어 환자의 자주권을 찾아보기 힘들다. 임종을 앞두고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 P2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80년대 이후 우리는 그렇게 열린 새로운 믿음과 영성의 길을 이어가지 못했다. 진보 운동은 세속화되었고, 기성종교는 보수화되었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하여 모두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 P106

진리든 선이든 오직 전체가 절대자이다. 그런즉 하나님도 전체이다. 부분을 위한 신은 더는 신이 아닌 것이다. 의인이 하나도 없고, 진리를 깨닫는 자 역시 하나도 없는 까닭은 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전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치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 P106

하지만 가능한 믿음이든 불가능한 믿음이든, 참된 믿음이 역사와 유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새로운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형성해 온 역사의 의미를 믿음의 관점에서 해명할 때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뿌리 박은 믿음이란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 믿음의 모범이 된 사람들이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던 그런 믿음일 것이다. - P1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도 소영웅주의나 알량한 허영심 때문에 목숨을 걸고 불의에 저항하지는 않는다. "짓밟히고 고난당하는 인간들의 인간 회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누구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목숨 걸고 도박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운동의 변질이나 타락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감정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그런 희생 덕분에 박정희도 전두환도 없는 이 좋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염치이다. - P87

목적이 선하다는 확신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정당화 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최초의 이상은 그 이상을 위한 모든 수단을 무차별하게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하여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고, 지금의 현실은 오로지 적대적 당파성의 구도에 의해 규정된다. - P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성이란 언제나 나와 전체의 관계에 존립하는 까닭에 종교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성 종교는 언제나 전체와 절대자를 이것이다 또는 저것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자신 전체의 진리가 아니라 부분적이고 당파적인 세계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 P80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압도적 감동은 오로지, 그가 보여준 가난하고 병들고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연민에 기인한다.그 감동에 이끌려 예수가 보여준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예수가 모범을 보인 그런 삶을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 P82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상처받는 것이다. 무한한 사랑은 무한한 상처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옥에 갇혀야 했던 서준식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사랑과 고난 그 자체가 사랑 때문에 상처 받는 모든 사람에게는 위로이다. - P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사유의 첫 번째 원리는 자기 통일성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는 의식이 없는 곳에서는 생각이 일어날 수 없다. 물론 이 동일한 자기에 대한 의식은 그 자체로서는 공허한 자아의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의식의 장소가 구체적 내용으로 채워짐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그 사유의 내용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충돌하지 않을 때, 그 일관성이 한 인간의 정체성identity 이 된다. - P61

전태일을 전태일 되게 만든 것은 자기 개인의 가난과 고통이 아니라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아의 경계는 고통의 경계와 같다. 자신의 피부가 자기가 느끼는 고통의 경계인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체가 곧 자아의 전부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때, 내가 느끼는 고통의 범위가 확장되는 만큼 나의 자아도 확장된다. 그리하여 내가 고통을 느끼는 대상이 확장되는 것만큼 나의 존재, 나의 세계도 확장된다.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