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권력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다. 국가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 혹은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권력은 주권자가 함께 행동할 때 그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그들이 흩어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자신들이 형성한 권력을 국가에 위임한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가의 공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인 까닭이다. 따라서 폭력을 규제해야 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주권자의 의지와 뜻을 모으고 확인하는 과정인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없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우리 안팎의 타자‘를 감금하고 배제하는 국가, 다시 말해 경찰국가이기 때문이다. - P567

역사적으로 경찰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투표권과 동등한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민주국가 안에서 시민의 뜻은 쉽게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같음‘보다는 ‘다름‘이 커진다. 따라서민주주의는 ‘다름‘을 ‘틀림‘으로 감금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따로 또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상징권력을 동원하거나 경제 부흥을 이끌어 가면서 ‘다름‘보다는 ‘같음‘을 키우고 확장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세계화와 다원화의 압력이 거세지고그만큼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다름‘은 전(全) 방위적으로 확산한다. 그만큼 정치,경제, 사회, 문화에서 확대된 개인과 집단 사이의 ‘차이와 다름‘은 은연중에 ‘차별과 틀림‘으로 전복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졌다. - P567

주인의 권력이 노예와의 관계에서 성립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예를자기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소유 가능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순간에권력은 폭력이 된다. 인간을 도구로서 사물화하는 권력은 비록 유용성과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을지라도 상호성과 공속성의 측면에서는 결코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그것이 친구 관계이든 적대 관계이든 상관없이 타자에 의존한다. 적대 관계에서조차도 나는 적인 타자 속에서나 나를 살피고 재보며 집착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친구여, 친구는 없다네!"라는 말만큼 적이여, 적은 없다네!"라는 말도 진실이다. 물론, 관계없이는 선악도 없다. 어떤 관계 맺음도 없는 사람은 선악의 저편에 있다. 그만큼관계와 무관하게 인간의 본성을 선악으로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 - P635

국가는 목적이면서 수단이다. 권력 형성의 주체로서 시민을 목적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목적이라면,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가는 수단이다. 법의 수립 혹은 권리의 정립이라는 지평에서 국가가 목적이라면, 법과 권리를 유지·보존하는 국가는 수단이다. 두 경우 모두 국가의 권한 행사는 곧 국가권력이다. 반면에 시민을 국가의 보존과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가의 권한 행사는국가폭력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국가폭력으로 둔갑하지 않으려면 먼저 시민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형제가 없어야 하고 나아가 국가의 목적과 시민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국가권력을 부정할 수 있는 저항권을 시민권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국가가 폭력의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국가만이 정당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 P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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