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욕망을 줄여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욕망이 줄어드는 법이다. 물론, 적절한 욕망 통제를 통해 더 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에게 권고할 만하며,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삶을 구성해 간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돈과 권력, 명예 또는 육체적 충동을 억제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육체적충동과 돈, 권력, 명예가 주는 쾌락은 무한하다. 이런 것들은 충족되는만큼 더 커지며, 어느 순간 키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그러니 한계를 설정할 수 없고 따라서 목표점을 확정할 수도 없다. 이처럼 맹목적이고 무한한 욕망, 곧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을 주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것은 추천할 만하지만 그만큼 실효성이 없다. - P487
이분법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선택하지 않고 사유해야 한다. 이분법의 강요에 못 이겨 행복을 선택하면 곧바로 불행한 의식이 몰려올 뿐이다. 결과로서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행복을 사유할때 의식은 비로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족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유는 실존적 개인의 고독한 사색이나 반지성적통념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유는 이분법을 통해 독단적 동일성을 강요하는 현실의 지배체계에 저항하는 과정이다. 불행 속에 깃든 빛을 찾아내고 행복이 강요하는 그림자에 대해 소통하는 사유만이 과정 속에서 자유로운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자유로운 사유가 만들어 가는 행복은개인의 의식과 무관한 객관적 사실도 아니지만 사회적 현실에서 독립된주관적 관념도 아니다. 행복은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만남과 소통, 그리고 연대를 통해 형성되는 담론이다. - P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