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한편,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내 안의 열기가 식어가는 걸 느꼈다. 마음 한편이 서늘한 냉소로 잠식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봤다. 내가 원하는 것은 냉소가 아닌데 예전의 내 모습으로 찾아갈 길이 없어 무력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어도 이번 일은 그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가로막는 수많은걸림돌과 장벽들 사이에서 많은 교사들이 어떤 길을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대는 우왕좌왕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각자 노련한 업무 담당자처럼자기 할 일을 하면서 빠르게 연결되어 연대를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수원의 시정 조치가 반드시 뒤따르게해야겠지만 설령 결과가 그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것만으로도 작은 승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길이 난것이다. 분명히 없던 길이었는데. 이번 연대의 ‘길‘을 보고 그 위를 걸으며 다행히 나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을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냉소로 점철된 삶으로 내 삶의 무게가 이동할 것 같지는 않다. - P96
누구나 나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차별을 알아차리고 그것과 싸워온 여성들은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든 있었다. 내가 모르고 살았을 뿐이다. 시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을 유난스럽고 예민하며 나와는 동떨어진 과격한 무엇이라고믿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페미니즘은 교육자로서 누구보다 나에게 필요한 관점이었다.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교육이라면 모든 교육자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페미니스트라고 다 좋은 교사는 아니겠으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면서 좋은 교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P101
학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평범한 교사들의 노력을 조명하거나, 그런 노력을 가로막는 학교 조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언론을 나는 여태 본 적이 없다. 체벌과경쟁 등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학교를 경험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회인 것도당연하다. 나도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교직을 향해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평생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어디서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곁에 서야 한다. - P209
장혜영 님의 노래중에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에 이런 가사가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부서지고되돌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가사가 마음에 다가왔고 왜위로를 받는지도 모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 이유를 짐작해본 바로는,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부서지는 건 너무쉽고 재건은 어려운 일이다. 너무 어려운 일을 너무 어렵다고 말해주는 것이 위로였다. 너무 어렵지만 ‘화이팅‘이라거나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힘을 내‘였다면 위로받지못했을 것이다. - P224
흔들림. 그러니까 나는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행복, 정지 상태로 유지되는 즐거움 같은 것은 없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유를 만끽하고, 인생의어떤 새로운 시작점에 마음이 충만하면서도 한편에서는별이를 향한 시린 마음을 감당하고 있다. 여러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때마다 나는 그것들이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아프면서도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슬프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그 사이를 오가고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이다. 양수리도 보고싶고 별이가 그립다. 그러면서도 지금 혼자 글을 쓰는 이순간이 미치도록 좋기도 하다. - P245
나는 오래전부터 이혼정보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정서적 지원을 하고, 경험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롤 모델을 찾거나 이혼 후의 삶을 긍정적으로 상상하게 돕고, 필요한 경우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회사 말이다. 특히 유자녀 부부의 이혼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필요에 따라 육아지원, 돌봄 공동체 지원을 하고 이혼 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기관 및 돌봄 - P262
시설 대상 강의와 캠페인 등도 연다. 이름도 정했다. ‘이혼할래‘. 질문과 권유의 말이기도 하고, 결단의 말이기도하다. 공무원 겸직 금지 조항과 자본 부족으로 내가 당장하지 못하지만 누구라도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만들면좋겠다. 왜! 결혼정보회사는 있는데 이혼정보회사가 없느냔 말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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