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원한다.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확실성은 아트로푸스가 끝내 가위를 들어 실을 자르리라는 것, 즉 죽음뿐이다. 불확실한 삶의 끝에 기필코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확실성은 괴로움이나 두려움을 일으키기보다 오히려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전부 통제할 수 없다. 언제 이 세상에 태어날지 살면서 얼마만큼의 행운을 누릴지, 또 이 삶이 언제 끝날지를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랠프 엘리슨의 조언을 마음을 새기며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 P3
그러니까 당신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끼는 옳고 그름은 자연스러운 것도 미리 주어진 것도 아니다. 당연히 절대적인 진실도 아니다. 영혼이 확신하는 도덕적 진실은 사실 또래 집단, 공동체 전통, 타인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된 것이며, 지금도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 P16
자기계발서 작가 수전 제퍼스는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연습을 하라고 제안한다. 먼저 일과 사람들 또는 세상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적는다. 그리고 그걸 똑같이 다시 적어 내려가 이번에는 ‘내가 희망하는 것은‘이라는 표현을 ‘내가궁금한 것은‘이라고 바꾼다. 희망한다는 표현에는 대단히 조건적인 정신 상태가 전제되어 있다. 바라는 결과가 찾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위치에 우리를 놓기 때문에 그 결과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을 증폭한다. 반면 궁금하다는 표현에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다는 기대감, 어떤결말로 끝나건 간에 만족하며 아쉬울 게 없다는 마음이 담겼다. 결코 얻지 못할 완결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피할 수 없지만 짜릿한 있는 그대로의 열린 삶을 마음편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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