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더 리퍼 밀리언셀러 클럽 115
조시 베이젤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비트 더 리퍼


-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죠. 끝까지 읽어보지 않고 확실히 구분하기 어려우니까요. 모든 책을 다 읽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책을 고르는 일도 어려운 일 중 하나죠. 하지만 책을 선택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라는 좋은 리스트가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에요. 어떤 종류의 책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쨎든 특정 카테고리 안에서 베스트 셀러라는 말은 그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말이니까요. 


<비트 더 리퍼>가 바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책이지요.

Amazone.com과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 셀러를, <타임>지가 서정한 올해의 책(2009) 중 8번째로 뽑혔으니까요. 미국이야기라서 동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만큼 인기가 있으니 번역되어 나왔겠죠. 하긴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으면 번역되어 나올 이유가 없죠.


맨하탄 가톨릭 병원 의사인 피터 브라운은 전직 킬러에요. 그것도 마피아 조직에서 꽤나 유명해진 킬러 중 한명이였죠. 그런 그가 병원에서 위암환자 한명을 만나게 되는 데 그의 이름은 스퀼란티, 그는 브라운을 알아 봅니다. 베어클로라는 소싯적 별명을 부르면서 말이에요. 문제는 이 골치 아픈 녀석을 없애버리기가 곤란해 졌다라는 거죠. 스퀼란티는 브라운이 잠시 다른 일을 보는 동안 브라운의 행방을 조직내에 알릴 연락책과 통화를 합니다. 이를 빌미로 스퀼란티는 자신을 암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일방적 거래를 하죠. 브라운 박사는 병원내에서 자신의 정체가 들키는 게 두려운게 아니라 옛동료들이 자신을 찾아내어 만나게 되는 걸 두려워 하고 있어요. 엄연히 말하면 두려워한다기보다 성가신 일인거죠. 이 책을 쓴 조시 베이젤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피터 브라운 혹은 피에트로 브라우나를 잠시도 가만두질 않아요. 수면 부족과 각성제, 사건과 사고들로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요.

스퀼란티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브라운이 킬러가 되는 과정과 킬러가 된 후의 이야기들, 그리고 피에트로 브라우나가 어떻게 피터 브라운이 되었는지, 피터 브라운은 이제 어떻게 되는지 그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브라운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 자랐는데 할아버지가 의사였어요. 증인보호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브라운 역시 킬러대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죠. 두 직업은 서로 양 끝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조시 베이젤은 킬러가 저지르는 살인과 의사가 행하는 치료를 비슷하게 묘사하며 다루고 있어요. 대동맥이 어디로 흐른다, 몇번째 뼈가 어쩐다라는 식으로요. 


우리가 흔히 아는 킬러들은 냉혈한에 망설임이 없고 소리 소문없이 나타났다 즉각 일을 처리하는 모습들이죠. 대표적으로 레옹을 생각하면 쉽겠네요. 혹은 하비에르 하르뎀이 연기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 안톤 시거라는 캐릭터도 좋겠네요. 킬러란 역시 가차 없어야죠!

하지만 킬러 브라우나는 조금 다른 캐릭터에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살해한 녀석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직에 발을 담군 뒤 여러 사건을 해치우면서도 브라우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죠. 계속 그만두고 싶어해요. 킬러에게 감정을 실은 이야기는 어렸을 적 홍콩 르와르에서 많이 봤는데, 우정이나 사랑이란 감정선을 타고 이야기가 흘러가죠. 분명 <비트 더 리퍼> 역시 우정도 있고 사랑도 조금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조시 베이젤의 특이한 이력에서 나오는 디테일한 해부학적 묘사와 리드미컬한 블랙유머의 빠른 전개라고 할 수 있어요. 어찌나 빨리 읽히는지 깜빡 깜빡 졸았나 싶더라니까요.


흡입력 있는 전개와 지뢰밭처럼 숨어 있는 위트들이 재미를 주긴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스릴있는 수상스키를 타는 듯한 짜릿함은 만끽했지만 바다속을 깊이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없다라는 건 아쉬웠어요. 물론 이건 개인적 취향입니다. 전반적으로 가볍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치닫는 클라이막스에서는 고조되는 분위기가 힘껏 느껴집니다.


<비트 더 리퍼> 책띠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화' 라는 문구가 있어서 찾아봤더니 2014년 개봉 예정이더군요. 감독이랑 다른 정보는 정확히 안 보이던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잘 어울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란색과 킬러, 그리고 복수와 배신. 그러고 보니 <킬빌>과 여러모로 비슷한 느낌이네요.


이 책을 영화로 본다면 징그러운 장면이 꽤나 많을 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채링크로스 84번지


-


뉴욕에 사는 헬렌 한프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마크스&Co. 중고서점에 20여년간  중고책을 주문합니다. 마크스&Co.는 20여년간 주문금액을 청구하지요. 그러니까 이 책은 주문장과 계산서 사이에 끼워진 편지를 엮은 책이라고 할 수 있죠.


편지는 1949년부터 1969년 사이를 오가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전의 일입니다. 만약 이 책의 배경이 지금 시대였다면 읽는 텍스트보다는 보는 텍스트로서 편지와 주문서, 계산서 등이 스캔되어 실린 하나의 아카이브 형식을 띄는 책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라이블리 모그나 레터스 오브 노트와 같은 옛날 기록들을 남긴  아카이브가 되거나요. 다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짜임새있는 재밋는 이야기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아요. 


3분의 2쯤 지났을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덮을까?’


서너편의 편지를 더 읽은 다음 이런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20여년간의 편지, 뉴욕과 런던의 먼거리, 끝내 만나지 못하는 결말... 이 속에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어떨까.’


만약 영화로 나온다면 너무 지루할 거 같은 느낌만 들더군요. 

그런데 왠걸, 이 책은 이미 영화화되었더군요. 앤 밴크로프트,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을 맡은 87년 개봉작 <84번가의 연인>으로 말이에요. 책 에필로그에는 <84번가의 비밀문서>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봤다고 하는데 어쨎든 지금은 ‘비밀문서’가 아닌 ‘연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전 비디오로 출시될때 <84번가의 극비문서>라는 마치 영국 첩보물같은 제목나왔는데 엄청 욕먹고 DVD 출시때 그나마 낫다는 <84번가의 연인>으로 고쳐서 나왔던 거죠. 그게 더 나은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연인’따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영화 <84번가의 연인>은 소설보다 더 나은 영화중 하나로 알려져있고, 걸작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네요. 각본을 쓴 휴 화이트모어의 덕이겠죠.


영국 런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위치한 마크스&Co. 라는 서점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책보다는 영화가 더 재미나나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기억 속의 색


-


여름입니다. 

여름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불타는 태양? 시원한 계곡? 눈부신 해변? 잘익은 수박? 비오듯 흐르는 땀? 혹은 열대야?


우리는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요. 그건 각자의 경험이 모두 다르고 기억 또한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이렇게 다른 우리의 기억과 경험 중 공통 분모를 가진 한 두가지의 특징이 그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곤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여름이란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그려요. 게다가 그림은 비슷한 배경에 한 두가지의 색으로만 가득 채워지죠. 물론 아이들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여름이란 주제가 이미 많을 것을 정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아이들을 휘어잡은 여름의 색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파란색은 아주 대표적인 여름의 색이죠. 일반적으로 바다가 파랗다고 배웠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동요 ‘초록바다’의 가사를 보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이란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초록빛 바다를 본 작사가의 아름다운 가사를 볼 수 있어요. 태어나 초록빛 바다를 본 아이들 중 바다를 초록색으로 칠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거에요. 경험에 의한 표현의 다양성보다는 강제적 학습에 의한 획일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 앞서니까요. 우리나라 서해를 자주 본 아이들은 초록빛 바다를 기억 할 거에요. 서해는 황해라고도 하는데 황해가 초록빛을 띄는 이유는 푸른바다가 중국대륙 양쯔강, 황화등의 황색과 만나기때문이죠.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초록이 되니까요. 이런 교과서적인 이유가 있다해도 많은 아이들은 바다는 파란색으로 표현하죠. 


사실 중요한건 초록빛 바다의 원리가 아니라 여름을 느끼는 아이들만의 색이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과 감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하고 정의한다는 건 아주 중요하면서도 아주 좋은 학습법이라고 생각해요. 이왕 배워본다면 말이죠. 그런 방법들을 찾는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우리 기억 속의 색> 은 색에 관한 에세이에요. 전공 이론서가 아니고서야 색에 관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을까요. 재미도 없을 뿐더러 흥미롭지도 못하기 쉽죠. 하지만 미셸 프루스트는 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색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말이예요. 색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해서 미셸 프루스트가 디자이너거나 색채학자 혹은 페인트 회사 CEO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놀랍게도 그는 역사학자랍니다. 대신 색에 관한 역사를 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죠. 역사학자가 말하는 색에 관한 이야기. 생소하긴 한데 그 속을 읽어보면 낯선만큼 굉장히 흥미롭다라는 걸 금방 알아 챌 수 있을 거에요. 


미셸 프루스트는 말합니다. 색은 상대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요. 시대와 사회에 따라 각각의 색이 가지는 상징과 의미가 변한다는 거죠. 그리고 색들이 프루스트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어디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미셸 프루스트는 그 색들을 기억 속에서 찾고 있는 거죠. 


- 내가 좋아하던 사탕은 만다린 시럽이 가득 들어 있는 것으로 벌집 모양의 구멍이 있고 시럽이 든 주황색의 작고 동그란 사탕이었다. 그 시럽 속에 만다린 주스가 실제로 몇 퍼센트나 들어 있었을까? 아마도 전혀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탕이 맛있었고, 그 사탕을 먹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사탕이 딱딱해서 그 소중한 시럽을 맛보려면 오랫동안 사탕을 빨아야 했지만 말이다. 그 사탕을 먹을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나에게 중하고 부당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상세히 기억한다. 특히 자판기의 주황색을. 그런데 몇 년 전 파리 지하철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훑어어보다가 내 어린 시절인 1950년대의 지하철 플랫폼 사진(이상하게도 인적 없이 비어 있는)을 여러 장 보았다. 사진에 찍힌 플랫폼 한가운데에는 내가 앞서 말한 급유 펌프처럼 생긴 사탕 자판기가 있었다. 그런데 색이 주황색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 기계에서 동그랗고 아주 달고 진한 주황색이었던 만다린 맛 사탕 말고 다른 사탕을 뽑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 속에서 그 기계에 주황색을 덧칠한 것일까?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기억에서 색의 문제에 대해 편파적이되는 것은 비교적 흔히 일어나는 형상이다. - ‘사탕 자판기’ p.86~88


기억 속의 색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FF7F00 이 아니라 색이 담고 있는 기억 속의 이야기이니까요. 다지선다형의 문제를 잘 맞추는 것보다 이야기를 담아내고 풀어내는 흥미로움이 더 빛나는 법이니까요.


그럼, 말머리에서 물어봤던 여름의 색을 되짚어볼까요. 


불타는 태양(빨강 혹은 노랑)

시원한 계곡(초록)

눈부신 해변(파랑 혹은 하양 혹은 베이지)

잘익은 수박(빨강 혹은 초록)

비오듯 흐르는 땀(투명)

열대야(검정)


이 중 여름의 색은 무엇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환상적인 출발이에요.

첫 문장을 이처럼 탁월하게 출발시키는 작가는 흔치 않죠. 오늘은 그 주인공이 커트 보네거트예요. 보네거트는 마크 트웨인 이후 가장 웃기는 작가라는 말도 있죠. 보네거트의 어떤 문장들은 웃긴데 마치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독자를 골탕먹이는 아주 웃기는 작가지요. 그런 그가 로즈워터씨를 만들어냈어요.


로즈워터 재단의 마지막 상속인인 엘리엇 로즈워터는 로즈워터군(마을 군)에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고민도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면서 살고 있어요. 물론 로즈워터 재단의 돈으로 말이에요.

자본의 나라 미국에서는 엘리엇의 이같은 행동을 검사해 볼 필요도 없이 정신 나간 짓이라 생각하죠. 그가 정말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닌지는 알쏭달쏭해요. 다만, 그가 정말 정신이 나갔다면 문제가 복잡해지죠. 왜냐면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는 데다가 재단의 모든 돈은 겁나게 먼 사촌인 로드아일랜드의 또다른 로즈워터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에요. 얼굴을 본적도, 서로의 존재도 잘 모르는 그런 사이죠. 이를 간파한 변호사 무샤리가 엘리엇의 정신이상을 증명한 후 로드아일랜드의 모자란 사촌의 대리인이 되어 재단의 돈을 가로채보겠다는 궁리를 하고 있죠.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이런 위기에 빠진 로즈워터 재단 아니, 가문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왔는 지를 되짚어보고 있어요. 일종의 로즈워터 가문의 족보라고 할까요. 엘리엇이 정신이상인지 아닌지 끝까지 분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진짜에요, 믿어주세요) 로즈워터 가문에게 한가지 안심인 건, 엘리엇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엘리엇이 밝혔다는 거에요. 이 사실에 가장 기뻐한 건 바로 엘리엇의 아버지이자 상원의원인 리스터 에임스 로즈워터죠. 엘리엇이 정신이상이라도 재산을 상속 받을 직계 후손이 있다면 재산이 엉뚱한 길로 새어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아버지의 염려와는 상관없이 엘리엇은 그 스스로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고 싶어하죠. 아니면 돈 많은 산타가 되고 싶은 지도...


아, 어쩌면 엘리엇은 자신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성서가 되길 바랐는 지도 몰라요. 엘리엇은 이 시대의 예수가 될지도 모르고요.


정말 모를일이죠.


수백년전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찍어낸 성서를 읽은 유럽인들은 경건한 마음이었겠지만, 만약 이 이야기가 새로운 성서가 된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배꼽을 잡으며 키득키득거렸을지도 모를 일이죠.


정말 모를일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라진 직업의 역사

-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개화기 이후 빠르게 변해가는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어젯밤 9시 뉴스에서 본 듯한 내용들이 자꾸 나오는 건 왜일까요. 그건 사라져 버린 직업들을 거울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기때문이죠.


<사라진 직업의 역사>의 가장 큰 무기는 흥미롭다는 점입니다. 웃기다거나 감상적인게 아니라 흥미롭다라는 거죠. 저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만해도 조금은 무거운 느낌일거라 생각했어요. ‘하이브리드 총서’ 라는 타이틀이 왠지 진지하고 무거울 거같은 느낌을 먼저 던져 주니까요. 하지만 이 앞선 무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책을 펼치고 얼마뒤 서문에서 무너져 버립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을 엮게 되기 전의 이야기들과 앞으로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독자에게 부푼 기대감을 안겨주죠.

이런 기대감은 첫 챕터 속 신문물을 대하는 나름 얼리어답터인 고종의 에피소드에서 배꼽잡는 웃음과 함께 활짝 열립니다. 이후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어지죠. 그 당시 변사는 잘나가는 일류 배우보다 더 높은 소득의 엔터테이너였고, 조선시대의 양반도 유럽의 귀족처럼 유모를 필수로 두었으며 왕세자를 키우는 유모는 임금도 함부로 못하는 존재였다던지 말이에요.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현대사의 이면을 비춰보고 있죠. 사실 생각해보면 유쾌한 옛이야기와는 반대로, 이면을 비춰보는 오늘날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어요. 얼마전 뉴스를 보니 지난 10년간 30여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1300여개의 새로운 직업이 새로 생겼다더군요. 사라진 직업도 새로 생긴 직업도 대부분 서민들의 직업들이죠. 부자들의 직업적 이야기는 별로 흥미롭지 않죠. 좌충우돌 시끌벅적한 시대상은 서민들의 일상으로 그려지니까요. 그런데 10여년전 신문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몇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1000여개의 직업이 새로 생겼다는 뉴스가 있더군요. 연월일만 바뀌고 내용은 거의 그대로죠. 이 뉴스에선 시대의 변화로 많은 직업이 추억속으로 사라지지만 많은 직업이 새로 생겼으니 걱정말라는 긍정적인 어투로 말하고 있어요.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겨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니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몇몇 직업들은 하루 벌어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할 정도의 처절한 생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해요. 정말 씁쓸한 건 갈수록 맹목적인 돈벌이의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많아지기만 했다는 거에요. 이러니 친구들을 만나도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시멘트 바닥처럼 회색도시로 변해가는 지도 몰라요.


그런 현실은 조금은 뒷전으로 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보다는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를 던져주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봄날의 피크닉같은 나날들을 더 바라니까요.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건 이 책을 디자인한 워크룸을 통해서 인데 텍스트로서의 책도, 그래픽으로서의 책도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단, 책표지의 주황색 잉크가 손에 잘 묻어나더군요.  그건 좀 아쉽더라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