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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라진 직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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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개화기 이후 빠르게 변해가는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어젯밤 9시
뉴스에서 본 듯한 내용들이 자꾸 나오는 건 왜일까요. 그건 사라져 버린 직업들을 거울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기때문이죠.
<사라진 직업의 역사>의 가장 큰 무기는 흥미롭다는 점입니다. 웃기다거나 감상적인게 아니라 흥미롭다라는 거죠. 저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만해도 조금은 무거운 느낌일거라 생각했어요. ‘하이브리드 총서’ 라는 타이틀이 왠지 진지하고 무거울 거같은
느낌을 먼저 던져 주니까요. 하지만 이 앞선 무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책을 펼치고 얼마뒤 서문에서 무너져 버립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을 엮게 되기 전의 이야기들과 앞으로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독자에게 부푼 기대감을 안겨주죠.
이런 기대감은 첫 챕터 속 신문물을 대하는 나름 얼리어답터인 고종의 에피소드에서 배꼽잡는 웃음과 함께 활짝 열립니다. 이후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어지죠. 그 당시 변사는 잘나가는 일류 배우보다 더 높은 소득의 엔터테이너였고, 조선시대의 양반도 유럽의
귀족처럼 유모를 필수로 두었으며 왕세자를 키우는 유모는 임금도 함부로 못하는 존재였다던지 말이에요.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현대사의 이면을 비춰보고 있죠. 사실 생각해보면 유쾌한 옛이야기와는 반대로, 이면을 비춰보는 오늘날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어요. 얼마전 뉴스를 보니 지난 10년간 30여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1300여개의 새로운 직업이 새로
생겼다더군요. 사라진 직업도 새로 생긴 직업도 대부분 서민들의 직업들이죠. 부자들의 직업적 이야기는 별로 흥미롭지 않죠. 좌충우돌
시끌벅적한 시대상은 서민들의 일상으로 그려지니까요. 그런데 10여년전 신문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몇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1000여개의 직업이 새로 생겼다는 뉴스가 있더군요. 연월일만 바뀌고 내용은 거의 그대로죠. 이 뉴스에선 시대의 변화로 많은
직업이 추억속으로 사라지지만 많은 직업이 새로 생겼으니 걱정말라는 긍정적인 어투로 말하고 있어요.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겨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니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몇몇 직업들은 하루 벌어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할 정도의 처절한 생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해요. 정말 씁쓸한 건 갈수록 맹목적인 돈벌이의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많아지기만 했다는 거에요. 이러니 친구들을 만나도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시멘트 바닥처럼 회색도시로 변해가는 지도 몰라요.
그런 현실은 조금은 뒷전으로 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보다는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를 던져주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봄날의 피크닉같은 나날들을 더 바라니까요.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건 이 책을 디자인한 워크룸을 통해서 인데 텍스트로서의 책도, 그래픽으로서의 책도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단, 책표지의 주황색 잉크가 손에 잘 묻어나더군요. 그건 좀 아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