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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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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듯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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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벌초를 하러 간다. 올해도 마찬가지. 큰집 형이 다리를 다쳐 이번엔 같이 갈 수 없게 되었다. 들러야 할 곳이 여러 군데라 부모님이 하루 먼저 가 몇군데를 들러 놓았다. 덕분에 수월케 끝냈지만 사실 여름을 지나온 벌초는 정글탐험이 따로 없다.
남의 감나무 산 중간에 덩그러니, 그것도 멧돼지 쫓으려 설치해 둔 전기 울타리 바로 옆 수풀과 대나무를 걷어내며 아버지가 으레 또 한마디 하신다. 너네 어렸을땐 여기 모두 나 혼자 했노라고.
감나무 산을 내려와 내팽겨쳐진 옻나무 밭과 고사리 밭을 옆으로 사잇길로 다시 올라가다 보니 알밤이 눈에 밟힌다. 고개를 들어 둘러봐도 밤나무는 없다. 한참을 더 들어가 미끄러지기 딱 좋은 진흙 오르막을 지나면 밤나무 아래 둥그런 풀숲이 눈에 보인다. 예초기를 돌리고 나면 아버지는 으레 또 한마디 하신다. 아비 어렸울 적 할아버지와 둘이 와서 했노라고.

매년 듣는 레퍼토리였을 것이다. 그때마다 굴곡진 귓등으로 흘렀겠지. 늘 흐르다 새삼 귓속으로 들어온다. 아버지에게 벌초하러 오는 길은 추억을 만나러 오는 길이였다는 걸.

20대엔 몰랐다 매일이 영화같을 수 있다는 걸. 새소리와 사람소리, 버스소리. 아침 티비소리부터 오후 학교종소리, 새벽빛 눈부심. 일상 속에 감정들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다는 걸 몰랐다. 인생의 영화는 내일 언젠가 터질 플래쉬와 같을 줄 알았지.

이 사람의 영화를 몇편 보고나서 무엇인가 바꼈다. 마음이.

걷는듯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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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산문집
차우진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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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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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좀 들었다던 사람들은 자신을 그 시절에 가둬두기 바빠요. 음악이 괴상하든 평이하든 어쨎든 젊은 날의 감수성을 충만시켜줄 수만 있다면야 그것의 장르와 취향따위야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래야만 오늘의 내 모습을 잊을 수 있을테니까요.


<청춘의 사운드>를 읽고 나서 내가 이제껏 들어보았던 음악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았어요. 그랬더니 무엇인가 다른 점을 찾아냈어요. 나에겐 청춘이 없다는 것을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나봅니다. 90년대 장르 음악으로 락을 들었기에 나의 청춘과는 무관한 음악들을 즐길 수 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영어로 된 가사들을 한 줄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들었을까요. 음악 속에서 '청춘'을 느끼고 즐기기엔 앨범의 맥락과 곡의 가사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봐야했음에도 그나마 즐겨들었던 몇몇 가요나 인디음악 조차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으니 아마 음악을 듣기 전에 국어 공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청춘의 사운드> 속에 나오는 음악들은 모두 2000년 이후의 국내 인디음악들과 대중가요들이죠. 이건 음악의 장르로 구분짓기가 아니에요. 젋은 날의 서정성과 보편성 그리고 공감과 위로의 감상들이죠. 2000년대를 20대로 보낸 이들에게 잘 맞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책의 흐름상 지금도 청춘의 사운드는 흘러 나오는 중이죠. 하긴 청춘에 정해진 나이가 어딧겠어요. 


대체로 곡들은 모두 토커블(talkable)해요. 화자와 청자가 분명하든 분명하지 않든 어쨎든 이 책의 모든 노래들은 젋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죠. 어떤 곡은 어쿠스틱하지만 어떤 곡은 댄서블해요. 단, 염세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르의 사운드는 없지요. 그건 여기서 말하는 청춘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청춘은 이야기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친구들이 느끼는 청춘의 감정이란 걸 '청춘의 사운드'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청춘의 사운드는 대화와 감정이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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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 - 크리에이티브 스몰 비즈니스의 모든 것
정은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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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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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비지니스'와 '스몰 컴퍼니'

 

이 책에 닮긴 회사들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Creativity 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이 개성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개성화시키기도 하고요. 어쨎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과 색깔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면에서 모두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죠.

 

최근 맥북 프로의 TV광고에선 말합니다.

 

- '이미 Pro인 우리 모두를 위해'

 

맞아요. 어떤 의미에서 우린 이미 프로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이 힘든 가시밭길처럼 느껴지죠. 그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에요. 따끔따끔 거리는 가시밭길위에선 멀리 내다보기 힘드니까요. 끝이 없이 느껴지죠. 사실 끝이란 게 없긴 하죠.

 

어느날 크리에이터인 우리에게 '비지니스'라는 문이 갑자기 생겨납니다. 궁금해하며 열어볼까 말까 망설이죠. 좀 더 도전적인 이들은 과감히 문고리를 돌릴테고 좀 더 신중한 이들은 팔짱을 끼고 숙고하겠죠. 어쨎든 문을 열고 들어선 자들에겐 당황스럽기 그지 없어요. '비지니스'란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태계니까요. 그것을 모르는 자들은 초보자. 그것을 조금 아는 자들은 경험자.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면 공항이나 터미널에서 항상 만날 수 있는게 그 곳의 여행가이드 책자에요. 한 페이지짜리 지도도 있고 두꺼운 가이드북도 있죠.

우리는 '비지니스'라는 문을 열기 전 그 주변을 잘 살펴봤어야 했어요. 문틈 어딘가에 분명히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가이드북이 반드시 꽂혀 있을테니까요.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는 A코스, B코스 같은 길안내 책이 아니에요. 이미 그곳을 다녀온 자들의 여행담이라고 하는 게 더 맞아요. 이 책이 창업에 관한 바이블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쨎든 책을 보고 읽는 행위와 책 내용이 주는 적당한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꽤 재밋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 시점에서 이 책의 주 구매자는 몇몇 전공의 대학생들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어필하기 좋은 타이밍과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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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 자기를 찾아 떠나는 젊음의 세계방랑기
다카하시 아유무 글, 사진, 차수연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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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Love &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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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찌든 때에서 벗어나 삶의 순수함 찾고 넓은 세상의 중심에서 나 자신을 마주해보자.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이 조그만 책 하나로 나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카하시 아유무는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아내와 함께 세계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니까 세계일주인거죠. 걷다가 걷다가 돈이 떨어질때면 돌아오자는 위험한 발상으로 여행은 시작됩니다. 어쨎든 다행히도 아유무는 세계일주를 떠나기전 장사로 돈을 제법 벌어놓았던 터라 얼마를 들고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적은 돈은 아니였을 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나도 떠나야 겠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2012년임을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겁니다.

 

2002년 이 책를 서점에서 서서 훔쳐 읽었어요. 그 뒤에도 가끔 시간이 남아 서점을 들릴때면 가끔 훔쳐 읽곤 했죠. 그래서 두어번 정도는 훔쳐 읽었던거 같네요. 별 뜻없이 구판인 2002년 발간된 책을 중고로 사서 읽었는데 새삼 느낌이 다르네요. 아마도 그때 이 책을 사서 돌아보지 않고 떠날 여행을 한번쯤은 해보았어야 했나봅니다.

 

삶에 지치거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할테니까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방황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한번쯤 권해드릴 수는 있어요. 아마도 이 책이 자신을 돌아보게 될 여행을 위한 고무적인 역할을 어느정도는 해주게 될테니까요.

 

책 속의 내용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많기는 하지만 굳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Love & Free 이니까요. 이 책이 유명해진 건 아직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게 이유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 해답을 찾으러 책장을 펼치는 거죠. 저 또한 그랬을지도 모르고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으로 자유를 느끼는 가하는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됨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 해답을 찾았는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아, 그리고 개정판에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진의 질은 좋지 못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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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 캔버스에서 침실까지, 영국의 오픈 스튜디오를 가다
문호경 지음 / 이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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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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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관한 책 중 예전에 읽었던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가 있다. 영국을 한 줄로 설명하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보는 영국은 그렇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축구 문화, 비틀즈와 조이 디비전, 스미스, 디페쉬 모드,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아델 등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수분같은 사운드의 나라. 셜록과 제임스 본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폴 스미스로 대표되는 영국스러움의 패션들은 영국을 고리타분한 뒷방 늙은이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영국은 바꾸지 않아도 행복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의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변덕이 아닌 유연성을 길러주는 물조리개같은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든다. 


는 저자가 영국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오픈 스튜디오들을 찾아다니며 소개한 책이다. 주로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일정기간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오픈 스튜디오라 한다. 그리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작가들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하나의 축제로 스튜디오를 공개한다. 그래서 지역마다 일정이 다르고 각 지역을 쫓다보면 1년 365일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우선 가장 놀라운 것은 모두 지방의 행사임에도 체계화, 활성화가 잘 되어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이 참 많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 보더라도 작가들의 작업 하나하나뿐 아니라 축제 포스터들 어디에서도 아마츄어같은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 내가 봤던 우리나라 어느 지방 행사들의 내실과 외적인 비주얼들을 보면 학생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수준의 차가 월등히 높아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오픈 스튜디오가 척박한 우리나라의 지방문화를 끌어줄 수 있는 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문화 지형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퍼지는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서울에서 떨어진 지방의 문화들은 안으로 갇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문화 예술 분야의 일은 폐쇄적이기 쉽고 게다가 지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로 연결해 묶어 버린다면 더욱 더 폐쇄성이 강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것에 OPEN의 개념을 가지고 온다면 좀 더 재밋어 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척박한 황무지에서 숲을 가꾸기가 엄청 힘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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