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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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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환상적인 출발이에요.
첫
문장을 이처럼 탁월하게 출발시키는 작가는 흔치 않죠. 오늘은 그 주인공이 커트 보네거트예요. 보네거트는 마크 트웨인 이후 가장
웃기는 작가라는 말도 있죠. 보네거트의 어떤 문장들은 웃긴데 마치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독자를 골탕먹이는 아주 웃기는
작가지요. 그런 그가 로즈워터씨를 만들어냈어요.
로즈워터 재단의 마지막 상속인인 엘리엇 로즈워터는 로즈워터군(마을 군)에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고민도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면서 살고 있어요. 물론 로즈워터 재단의 돈으로 말이에요.
자본의 나라 미국에서는 엘리엇의 이같은 행동을 검사해 볼 필요도 없이 정신 나간 짓이라 생각하죠. 그가 정말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닌지는 알쏭달쏭해요. 다만, 그가 정말 정신이 나갔다면 문제가 복잡해지죠. 왜냐면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는 데다가
재단의 모든 돈은 겁나게 먼 사촌인 로드아일랜드의 또다른 로즈워터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에요. 얼굴을 본적도, 서로의 존재도 잘
모르는 그런 사이죠. 이를 간파한 변호사 무샤리가 엘리엇의 정신이상을 증명한 후 로드아일랜드의 모자란 사촌의 대리인이 되어
재단의 돈을 가로채보겠다는 궁리를 하고 있죠.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이런 위기에 빠진 로즈워터 재단 아니, 가문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왔는 지를 되짚어보고
있어요. 일종의 로즈워터 가문의 족보라고 할까요. 엘리엇이 정신이상인지 아닌지 끝까지 분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진짜에요,
믿어주세요) 로즈워터 가문에게 한가지 안심인 건, 엘리엇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엘리엇이 밝혔다는 거에요. 이 사실에 가장
기뻐한 건 바로 엘리엇의 아버지이자 상원의원인 리스터 에임스 로즈워터죠. 엘리엇이 정신이상이라도 재산을 상속 받을 직계 후손이
있다면 재산이 엉뚱한 길로 새어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아버지의 염려와는 상관없이 엘리엇은 그 스스로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고 싶어하죠. 아니면 돈 많은 산타가 되고 싶은 지도...
아, 어쩌면 엘리엇은 자신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성서가 되길 바랐는 지도 몰라요. 엘리엇은 이 시대의 예수가 될지도 모르고요.
정말 모를일이죠.
수백년전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찍어낸 성서를 읽은 유럽인들은 경건한 마음이었겠지만, 만약 이 이야기가 새로운 성서가 된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배꼽을 잡으며 키득키득거렸을지도 모를 일이죠.
정말 모를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