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디자인 여행 안그라픽스 디자인 여행 1
박우혁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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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디자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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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어떤 나라?


누군가에게 스위스는 알랭 드 보통의 나라, 하이디의 나라, 자코메티의 나라, 파울 클레의 나라, 융의 나라, 스키의 나라, 시계의 나라, 적십자의 나라, 은행의 나라, 중립의 나라, 자유의 나라 등등 스위스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스위스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 이미지는 스위스 국기가 아닐까? 스위스 국기는 Swiss Made 라는 명칭과 함께 다양한 스위스 제품에서 같이 사용되곤 한다. 그리고 이 빨간 바탕에 하얀 십자가 모양의 문양은 우리에게 왠지 모를 신뢰를 준다.


스위스는 유럽 중앙에 자리 잡아 사방으로 5개의 나라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주변국들과의 접근성이 좋고 언어도 네 가지를 동시에 사용한다. 국가 면적은 꽤 작은 편이고 인구도 700만 명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수도는 베른이지만 취리히나 제네바같은 도시가 더 유명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박주호가 뛰고 있는 FC바젤을 기억할 것이다. 바젤도 스위스의 도시이다.


박주호가 FC바젤에서 뛰고 있다면 이 책의 저자 박우혁은 스위스 바젤 디자인 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했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며 바라 본 스위스가 이 책 안에 담겨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스위스라하면 타이포그래피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타이포그래피에 있어서 스위스란 나라는 교본같은 느낌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스위스에서 탄생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 ‘ 때문일 것이다. 산세리프체 그러니까 고딕계열의 영문서체인 헬비티카와 유니버스로 대변되는 딱딱해보이는 글자모양과 지면을 그리드로 나누어 구성하는 방식등을 우리는 ‘스위스 스타일’이라 한다. 그리고 ‘스위스 스타일’은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패션 혹은 제품 등 디자인 전반에 걸쳐 퍼져있다.


사실 스위스의 타이포그래피가 무엇인지는 비전공자에게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는 ‘스위스’란 나라와 ‘디자인’ 그리고 ‘여행’이란 단어들의 조합으로 새롭게 혹은 독특한 느낌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스위스 디자인이냐 스위스 여행이냐.

스위스 디자인을 선택한다면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둘어본 후 게리 허스트윗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헬베티카>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된 아드리안 프루티거, 볼프강 바인가르트,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 아민 호프만, 에밀 루더 등의 유명 디자이너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어느 포털사이트에는 ‘스위스’를 검색하면 주요인물에 브로크만과 아민 호프만이 융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 책의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사실 그 흐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구성이 좀 더 잘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읽기 위한 텍스트, 문장 구성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리고 만약 스위스 여행을 선택한다면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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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Normal - 평범함 속에 숨격진 감동 슈퍼노멀
재스퍼 모리슨. 후카사와 나오토 지음, 박영춘 옮김 / 안그라픽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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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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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


이제는 개성시대라는 말조차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너도나도 특이한 것, 화려한 것, 남들과 다른 것을 강요받고 표현하다보니 무엇이 개성이고 무엇이 차별인지 모르는 몰개성의 시대가 되어버렸다이건 단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도 제각각 튀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 애쓴다. 이렇게 사물들이 아우성치는 데에는 우리가 평범한 사물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모나미 볼펜은 일회용품처럼 생각한다. 누구도 모나미 볼펜만의 평범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회용 젓가락처럼 한시적으로 대충 쓰고 쉽게 버리는 식으로 여긴다.

 

평범함 속에도 독특함이 있다.

 

평범한 것은 잘 변하지 않는다. 종이컵이 그렇고 클립도 그렇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물건 스스로가 신경 쓰이지 않게 한다. 그건 사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밤낮 구분없이 일더미에 치여 사는 오피스맨에게 책상 위의 갖가지 사무 용품들이 제 목소리로 꽥꽥 소리친다면 책상을 통째로 집어 던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즐거워야 할 저녁 식사 시간 주방의 온갖 주방 용품들이 날 좀 써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면 켜지도 않은 가스 렌지를 폭발시켜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물에 감사할 일이다.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한때의 유행처럼 쉽게 쓰고 버리지만 누군가는 변치 않는 클래식을 대하듯 그 물건을 존중해준다. 그렇게 사물에도 클래스이 있다.

 

후카사와 나오토는 2005년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에 스툴의자를 출품했는데 사람들이 나오토의 의자를 전시품인지 모른채 앉아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슈퍼 노멀은 탄생했다. ‘슈퍼 노멀은 평범함 중의 평범함, 혹은 너무 평범해서 특별함이 느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함이 진부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범함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사물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슈퍼 노멀은 이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브랜드인 무인양품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기때문이다. 무인양품 매장을 둘러보면 평범한 것 투성이다. 평범하다 못해 마치 만들다 만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곳에 자리 잡은 소파에 앉고 싶어지고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우리는 슈퍼 노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슈퍼 노멀>에는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의 이야기가 있다. 흔히 후카사와 나오토만 주로 부각되는데, 재스퍼 모리슨은 모리슨만의 슈퍼 노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슈퍼 노멀이라는 개념을 공유하지만 사물에 접근하고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재스퍼 모리슨은 후카사오 나오토의 제품보다 아주 조금 더 컬러풀하고 아주 조금 더 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건 재스퍼 모리슨이 사물을 섬세한 유기체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카사오 나오토는 사물의 정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을 더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정형화된 우리집 아파트에는 냉장고 놓을 자리, 티비 놓을 자리 등 사물이 들어오기도 전에 모두 자리가 잡혀져있다. 심지어 벽걸이 에어컨 콘센트조차 벽 중간에 달려있다. 정해져버린 자리들 사이에 후카사와 나오토의 무인양품 CD 플레이어가 있다. 카달로그에 나와있는 것처럼 벽에 걸려있지는 않지만 침대옆 사이드 테이블에 세워져있다. 가끔 눕혀 놓기도 한다. 이 사랑스런 CD 플레이어는 어디에 놓아도 제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평범함이다.

 

나는 이 평범한 사물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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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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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께 전해 듣던 옛 이야기는 주로 무서운 이야기들이었죠. 한 여름밤에 듣는 오싹한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궁금한, 묘한 매력을 가졌어요. 할머니의 옛 이야기뿐 아니라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페로의 동화도 원래는 굉장히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니까요.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에 끌리는 면이 있나봅니다. 하지만 옛이야기 속 환상은 무서운 이야기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낡고 투박한 이야기라도 누가 들려주느냐에 따라 환상적으로 들리기도 하니까요.


로알드 달의 어떤 이야기들은 낡고 투박한 모자 같아요. 오래되서 낡고 헤진 마술 모자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검은 마술 모자에 익숙해져 있지요. 이건 할머니의 마술 모자에요. 그 속에는 비둘기며, 토끼며, 기다란 지팡이, 엄청 많은 꽃가루 등등 없는 게 없어 보여요. 사실 검은 마술 모자 속에서 나오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우리는 마술사가 이끄는 데로 마술 모자 속의 환상을 즐기죠. 수 많은 이야기들이 검은 마술 모자 속의 놀라움처럼 우리에게 온갖 환상을 보여준답니다. 재밌는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로알드 달 역시 수 많은 이야기의 마술사 중 한 명이에요. 혹은 아닐 수도 있고요. 낡은 마술 모자를 가진 마술사는 흔치 않으니까요.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은 몇 개의 단편으로 엮인 평범한 단편 소설집이에요. 그리고 <맛>이란 제목은 여러 단편 소설들 중 하나인 ‘맛’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요. 여러 단편들에는 내기가 등장해요. 단편 ‘맛’에서도 내기가 등장하죠. 어느 저녁식사에서 미식가와 집 주인이 딸을 걸고 벌이는, 말 그대로 맛 내기이죠. 이 내기의 결과야 어찌됐든 이 책의 제목을 <맛>으로 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에요. 이 책에서 느껴지는 이야기의 맛!이 정말 끝내 주거든요. <맛>은 우리를 현혹하는 기괴한 생물이나 신비로운 숲 없이도 낡은 듯 하지만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이야기들이죠.


여러 편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맛을 내지만, 단편 ‘맛’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것 하나만 이야기해보죠. 사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마이크는 절대 맞출 수 없을 거라는 호언장담과 함께 미식가에게 내기를 제안합니다. 원하는 건 뭐든 좋다는 조건으로요. 미식가는 그의 딸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그의 딸을 원하죠. 경멸하며 반대하는 딸과 부인을 뒷전에 두고, 자신감에 찬 마이크는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미식가는 집을 걸었고요. 하녀가 들고온 포도주가 잔 속으로 따라지고 미식가는 그 빛깔과 향, 첫맛과 끝맛을 아주 조심스레 음미합니다. 그는 천천히 어느 지역, 어느 농가에서 언제 생산된 어떤 등급의 포도주인지 사람들에게 안내하듯 맞춰가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여느 모험소설에도 뒤지지 않는 흥미진진함이 느껴져요.

결국 미식가는 그 포도주의 생산년도와 이름, 지역, 농가 등 아주 정확하게 맞춰버립니다. 내기에서 이겼어요. 그럼 딸은 어떻게 되냐고요? 어떻게 되긴요. 아버지가 내기에서 졌으니 늙고 탐욕스런 미식가에게 시집가게 되었죠. 이게 이야기의 끝이냐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로알드 달은 마술사라고.


낡은 듯 투박하고 털털한 이 모자의 속이 궁금하다면 주저말고 책을 펼치세요. 로알드 달의 이야기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첫 맛부터 끝 맛까지 어느 하나도 놓쳐서 안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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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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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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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표지 책등에 검은 글자로 새겨진 제목, 《삼월은 붉은 구렁을》. 책은 하나의 우주이며 새로운 세계라고도 하죠. 이 책은 오묘하고도 환상적인 또 하나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 ‘책’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소재를 이야기 하고 있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손에 쥐는 실제의 책이자, 이야기 속의 주 소재로 다뤄지는 책이기도 하죠. 소재로서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실물로서의 책을 통해 보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책을 통해서 말이에요. 이 책의 네 가지 이야기 중 첫 번째 <기다리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에 대해,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와 책을 읽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책에 관해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는 흔하지 않아요. 사실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50페이지 정도에서 탁! 하고 책을 덮었어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에요. 이런  일은 스토리가 강한 소설, 특히 쥘 베른 식의 모험 소설을 읽을 때 경험하곤 하는데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페이지를 단숨에 넘기는 게 아니라 아껴서 천천히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하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쥘 베른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또 달라요. 쥘 베른의 이야기가 놀이기구에 올라타 이야기를 경험한다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마치 우연히 들른 바에서 낯선 이가 건네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느낌이죠. 그런 상황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나요?!


뭘까, 이 느낌은. 아득한 기억을 일깨우는 이 감각은. 따뜻한 집 안에서 테이블을 둘러싸고 낯선 이야기의 줄거리를 듣고 있다. 이런 상황에 유난히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단지 착각일까. 문득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야기를, 픽션을 듣는 것이 대체 몇 년 만인가.

커피 향과 브랜디 향. 그때 고이치는 문득 ‘지복’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어두운 밤, 따뜻한 실내에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먼 옛날부터 세계 곳곳에서 있어 왔을 행위. 역시 인간이란 픽션이 필요한 동물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는 것은 바로 그 한가지뿐일지도 모른다.


-P52


네 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 중에서도 저는 첫 번째 <기다리는 사람들>이 유독 좋았어요. 앞서 말했듯 책 그 자체의 매력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평범한 샐러리맨 고이치는 매년 열리는 회장의 요상한 다과회에 초대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회장과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듣게 되죠. 고이치는 그들로부터 책에 관한 어떤 비밀을 풀어보라는 제의를 받죠. 그건 일종의 내기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들의 내기에 고이치도 동참합니다. 고이치가 비밀을 푸느냐 못푸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회장과 그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에요. 이 네 사람은 고이치에게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마치 ‘재밌는 이야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 흥미로운 대답들을 내놓는 듯하죠. 그 대답들은 그들의 대화 속에 녹아있고요. 그 대답들이야말로 진정한 비밀일지도 모르죠.


상상해봅시다.


당신이 도서관으로 들어섭니다. 거대한 고요함 속에 빼곡히 진열된 책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어요. 책들은 속삭입니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야. 당신은 수 천 권의 책 중 어떤 걸 고를까, 고민합니다. 그러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겁니다. 이 책은 왜 재밌는 걸까, 재밌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건 어떤 걸까, 재밌는 이야기란 대체 뭘까. 고이치와 회장 친구들이 던진 질문이며 그들 각자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지요.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대답이 있을 겁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당신이 느끼는 뭔가가 회장과 친구들이 나누었던 비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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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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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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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상의 수 많은 동물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괴롭히기도 하면서 또다른 사람들은 인간의 욕심 덕분에 사라져가고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호해주기도 하죠. 이것은 동물과 인간사이의 계약관계가 아닙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이 가져온 불행이라고 봐야겠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보호하는 삶과 보호받는 삶으로 살아갑니다.

애완동물과 유기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 눈 사이에서는 관심과 욕심이 왔다갔다 합니다. 버림받은 강아지와 로드킬 당한 길고양이들의 눈빛속에서 동물들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더욱 커져 왔지요. 그리고 동물에 대한, 구체적으로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라는 이 책은 동물복지에 관한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제목에서 잘 알 수가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동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닌 육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만약 이 책을 두고 버림받은 강아지나 상처받은 고양이, 눈물흘리는 코끼리와 기름을 뒤집어쓴 펭귄을 상상했다면 우선 지난 일주일간 먹었던 음식을 되짚어 봅시다. 그 식탁 접시위에 살아있는 돼지, 닭, 소, 참치, 오징어, 새우가 있었다고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바라보고 책장을 넘기는 거죠. 그러면 지난 일주일간의 '동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접시위에 올려져 있었는 지를 알게 될거에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으면서 서로 미소를 주고 받았다는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2.

일요일 우리는 어김없이 대형마트로 향합니다. 이것 저것들을 사고 나들이도 할 겸해서 나온거죠. 그 중에서도 역시 '먹을 거리'를 사는 게 제일 큰 목적이에요. 여기저기 많이 둘러보고 쇼핑을 했지만 육류쪽만 다시 돌아볼까요.

소고기 코너에는 각 부위별로 한우, 미국산, 호주산 등이 있어요.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지만 '우리몸에는 우리 먹거리!' 따위의 문구에 세뇌되어 한우가 좋기는 좋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질 않아요. 그렇다면 미국산인데, 광우병과 관련해 문제도 많고 미국산은 GMO 콩, 옥수수등으로 뭔가 불안해 찝찝하고 내키지가 않아요. 마지막으로 호주산인데 호주산 척롤을 집어 들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미국산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푸르른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으며 노니는 호주산 소를 상상하죠.

카트를 밀어 돼지고기 코너에 갑니다. 여기는 종류가 더 많네요. 산지별도 많지만 목초를 먹인 돼지라나, 녹차잎을 먹인 돼지라나. 왠지 더 건강하고 행복했을 것 같은 돼지의 미소가 그려져요. 좀 더 비싸지만 녹차잎을 먹고 도축당한 돼지를 고릅니다. 녹차잎을 입주위에 묻힌 돼지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네요.

코너를 돌며 달걀코너에 들립니다. 목초를 먹인 닭이 나은 자연란, 자연을 뛰어다니며 자란 닭이 나은 신선란, 지리산에서 자란 건강란, 제주도 푸른 란. 뭔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알을 낳은 닭이 건강한 듯한 인상을 주네요. 새벽같이 일어나 꼬끼오- 를 외치며 알을 낳는 행복한 닭의 일상이 그려지기도 해요. 자연란이든 신선란이든 죄다 비슷해 보여 그냥 평소에 먹던 목초 먹인 달걀을 카트에 담고 계산대로 향합니다.

카트 속에는 한가로운 소의 울음소리와 행복한 돼지의 미소, 자유로운 닭의 날개짓이 어우러져 있는 듯 해요. 그럴거라고 믿는 거죠. 그리고 그냥 먹는 거죠.


3.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미국 작가가 쓴 미국내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에 관한 이야기에요. 물론 미국만의 이야기로 한정짓는 다고 해도 그 피해는 어마어마하며(미국인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공장식 축산업을 하는 미국기업의 시스템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고 봐야겠지요.

마지막장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이야기를 마저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실제로 농장을 가본다거나 주변에서 농장을 하시는 분들이 없어 이런 저런 검색을 해봤어요. 미약하나마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일례로 FTA때마다 농가들은 수입에 관해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어느 기사에서 보니 갈수록 농가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군요. 그런데 줄어드는 농가수에 비해 육류의 국내 소비와 생산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아이러니의 매듭에는 밀집 축산 즉, 공장식 축산이 버티고 있는거죠.


우리나라 축산에 관한 부분들은 통계청에서 볼 수 있는데, 통계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면 됩니다.

저는 통계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주제별 > 농림어업 > 농업 > 가축 동향 조사 > 닭 시도/월령별 마리수로 들어가 봤습니다. 분류는 3개월 미만, 3~6개월, 6개월이상으로 되어 있네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닭은 태어나서 6개월 내에 도축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닭의 기대수명은 15~20년이죠. 닭에게 15년은 정말 기대밖에 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전국 1억 7천여마리중 1억마리가 3개월 미만의 닭이군요. 

돼지 사육규모별 가구수 및 마리수로 들어가보니 전국 1000~5000 규모의 농장에서 돼지 5,253,444마리가 살고 있네요. 한 마리당 평균 4.7 제곱미터에 산다는 건데, 평균 돼지 몸길이가 1.5미터라고 봤을때 평생을 2평 미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거네요. 평생이란 말이 적절치 않지만요.

그외 통계청에 친절히 게시되어 있습니다.


4.

축산농가 동물들의 인도적인 처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삼겹살, 뒷다리살, 가슴살등이 소, 돼지, 닭들을 도축해 얻는 고기라는 사실도 대부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고기를 소비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중 잘 모르는 일들도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환경, 질병의 문제가 바로 육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생산소비위주로 유전자가 변형되고 항생제를 가득 맞고 자란 조류들의 바이러스는 배설물을 통해 전세계에 퍼져있고, 돼지의 분뇨에서는 유독가스가 방출되는데 분뇨의 양이 자동차 배출가스보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더 큰 원인이며, 정화되지 않고 강으로 흐르는 동물들의 분뇨로 바다는 병들어 가며, 그 바닷물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들도 병들고 그 물고기를 잡아 먹는 인간도 병들어 갑니다. 공장식 가축들을 먹이기 위한 곡물들은 있어도, 제 3세계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밥 한끼는 없는게 공장식 축산의 가장 큰 폐해지요. 저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옛말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지요. 한 쪽만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사실 하나라도 알아야 둘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하나 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무지함이죠. 또 다른 말에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도 있어요. 동물과 관련해서 아니, 우리의 미래와 관련해서 모른다는 건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는 무지를 변명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무관심일 뿐이다' 라고 합니다. 우리가 채식을 하건 육식을 하건 그건 우리 각자 선택의 문제죠. 하지만 우리의 음식들로 인해 벌어지는 현재과 미래의 문제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은 다같이 공범임을 인정하고 썩은 지구를 만드는 데 가담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관심의 반댓말은 무관심이 아니라 방임이니까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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