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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신경숙 소설을 이렇게 짧은 기간에 몇 번이나 읽게 될지 몰랐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첫 프롤로그 <내.가.그.쪽.으.로.갈.까>부터 마음을 잡았다. 처음 몇 구절을 읽는 순간 ‘아~ 이 책을 처음 든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내려놓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랬다.
알라딘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때 컴퓨터 앞에서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나의 산만함을 탓하면서 신경숙의 소설을 매일 마음 졸이며 기다리며 읽는 감질맛을 버리기 위해 과감히 인터넷 연재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렇게 연재가 끝나 갈 때 쯤 몰아서 읽겠다는 호기도 부렸다. 그러나 내가 연재를 읽기 시작할 무렵 연재는 끝이 났고,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 익숙치 않는 인터넷 연재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기다리자! 아주 쉬운 선택이었으나 책이 나온 후 연재동안 읽어보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산만함을 후회했다.
책 읽는 동안 느낀 나의 20대 생생한 기억을 한발 늦게 접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 만이었다.
나는 단 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수화기 저편에 여보세요? 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디야? 하고 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켰다. 팔 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한 시간 단위로 풀어놓으면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올 것이다. 팔 년 만이라고 말했지만 팔년 전에도 우리는 지금 잊어버린 무슨 일인가로 사람들과 만나 서로 다른 곳을 보다가 헤어질때야 가만히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게 다였다.”
(p9)
아련하게 윤이와 명서의 저 전화 대화 모습이 그려졌다.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 자연스러운 행동 그러나 그 익숙함이 과거라는 현실의 깨달음......
시작부터 무릎이 훅 꺾이는, 심장에서 뭔가를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그렇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나를 끊임없이 과거로 과거로 이끌었다.
“살기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
첫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눈에서 집을 떠나올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한방울 툭 떨어졌다. (중략) 이 도시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높은 빌딩과 수많은 집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손을 잡을 사람은 없었다. 넓고 좁은 길이 너무 많아서 자주 길을 잃게 만들었다. 나도 이도시의 사람들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며 나는 어린 실향민이 되었다.”
(p33~34)
내성적인 스물한 살 윤이의 불안이 느껴졌다.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주변의 사촌언니도 아버지도 자신 스스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내 마음조차 불안해졌다. 그런 윤이 안쓰럽고 대학시절 동굴같은 자취방을 구해 그 속에서 나오지 않던 검은 눈의 그 아이가 생각났다. 겨우 스물살인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불안한 20대를 시작하는 아이는 처음 보았기에 그 아이와 겹쳐지는 윤의 눈물이 안쓰럽고 손을 뻗어 닦아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윤교수는 안경을 고쳐쓰고 참밖을 잠깐 응시했다. 교정의 집회장에서 구호 소리가 일순간 강의실로 파고들었다. 일 년 전에도 같은 상황이었다. 윤교수가 강의실을 한번 둘러본 다음 말했다.
-자네들, 크리스토프라는 사람이야기를 들어보았나?
크리스토프?”
(p57~58)
그렇게 시작된 윤교수의 크리스토프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한 질문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라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그 교실의 수업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했다. 윤의 표현대로 각자의 내부에서 싹트고 있는 신뢰가 강의실을 넘어 나에게도 전해졌다. ‘윤교수 같은 분의 강의는 어떨까?’ 내내 생각하게 한 강의였고, 윤교수의 수업을 위해 학교를 다니던 주인공들이 부러웠다.
“왜 하필 서른셋이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군. 글쎄 서른셋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간 나이고 알렉산더가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죽은 나이지. 서른셋이 지나면 더이상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요절이란 말도 서른셋이 되기 전 죽은 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것 아니겠나.”
(p77)
이 장면을 읽는데 울컥했다. "서른셋이 지나면 더이상 청춘이가도 할 수 없지 않을까"란 말에 서른셋을 훌쩍 지나버린 난 우울했다. 그리고 누구는 서른셋에 뭔가를 했는데 난?? 하는 의문이 날 괴롭혔다. 이래 저래 속상한 문구였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그냥 가져가. 시들시들해 돈 받기도 그래.
꽃집 아주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가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던 테이블야자를 플라스틱 화분째 봉지에 담아주었다.
- 집에 가져가면 다른 화분에 옮겨심고 물 충분히 줘...... 시위 안해도 되는 세상 물려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하다구.”
(p114)
그 시절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한 시위를 보며 미안하다란 말을 했다는 것!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말을 썼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 아주머니가 고마웠다. 열심히 집회하고 그 집회가 끝나면 단골이라 불리는 술집에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우리를 너무도 잘 아는 친구같은 주인아저씨가 서비스 안주와 오늘도 고생 많았다면 다독이던 그때가 생각났다. 아주머니의 미안하다는 말과 술집 주인아저씨의 서비스 안주와 고생했다는 말이 다시금 그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 어른들 덕분에 난 내가 하는 일이 늘 정당하다고 위안을 하곤 했었다. ^^
“루쉰이 일본 유학생이었을때 일본인 선생이 참배할 곳이 있다며 루쉰을 비롯한 학생들을 뒤따르게 했는데, 데리고 간 곳이 오차노미즈에 있는 고자 사당이었단다. 공자로 상징되는 전근대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유학을 온 루쉰으로서는 그때의 참배가 상당히 충격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머나먼 타향에서 만난 은사가 자신이 버리고 온 옛것 앞으로 데려가 참배하게 했을 때 루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p182~183)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p183)
이 두 부분은 나를 한참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이 그 때와 다르지 않구나! 시대가 달라져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다시 되돌아온다는 광주 망월동 묘역의 문구가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 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p354)
그렇게 나도 모르게 쌓여가는 윤교수에 대한 신뢰는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을 위한 손글을 남긴 윤교수를 보면서 확고해졌다. 그리고 어렴풋하게 그것도 거의 유일하게 교수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심어준 대학시절 "봄볕 따스한데 수업하러 와 있는 불쌍한 청춘들을 위해 출석을 부르지 않을테니 지금 일어나 잔디밭에서 낭만을 즐겨도 된다"라고 이야기 했던 교양국어 교수를 생각나게 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
(p374)
신경숙 작가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20대를 떠올리며, 끝없이 비교하며 읽었던 이유가 여기 있구나를 확인했다.
작년 어느 날 나와 같이 포럼을 하던 한 교수님께서 나와 술한잔을 하다가 문득 물었다. "도대체 몇학번이예요?"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내 나이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내가 웃으면서 "95학번이요! 그런데 절 가르친 선배들이 다 80년대 후반학번들이예요!" 나에게 베여버린 80년대 후반의 치열한 대학시절의 추억은 그 선배들의 말과 행동에서 배운 것이었다. 내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난 80년대 학번들의 정서를 가진 90년대 학번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 어중간한 대학생활을 한 나를 자꾸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