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생활교육으로 학급을 운영하다 - 학생과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관계의 집짓기
강현경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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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 학년을 준비하면서 회복적 생활교육에 관심이 생겨서 2018년 학교 전문적 학습 공동체 주제 중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선택해서 들었고, 다양한 온오프라인 연수도 들었다. 2017년, 2018년 학급에서는 학기 초 신뢰 서클도 하고 반 분위기가 안 좋을 땐 간단한 서클을 통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이 기억이 참 좋아서(나만의 생각일 가망성이 많지만...-부정적인 대답이 두려워서 안 물어봤다.) 올해도 첫날 만남서클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서클을 쭉 진행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나는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은데 회복적 생활 교육을 전체 연수로 들어서 싫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에 다른 선생님도 ‘유행이니 또 지나가겠지...’라고 하셔서 좀 안타깝기도 했다. 가해자를 용서해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의미의 이야기였다. 이 대화를 듣는 순간, 아~ 또 하나의 좋은 시도가 오해로 묻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알고 있는 회복적 생활교육의 취지를 잠깐 이야기하긴 했는데, 그게 과연 그 선생님의 마음에 들어갔을 지는 모르겠다.

선생님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가해자를 용서’한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전에도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전체 연수의 폐해는 아닐까?

각설하고, 이 책은 회복적 생활교육의 이론에 대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실천서에 가깝다. 선생님들이 직접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고 학생들과 서클을 했던 시나리오, 실제 장면, 실천 이후의 느낀 점들이 자세히 서술되어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배운 것을 해보려면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잘 모르고, 그래서 어려운 것 같고, 그러다보니 굳이 그게 아니어도 우리 반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시도는 학년 초 만남 서클(이렇게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이었는데 아이들이 한단어의 단답으로 이야기해서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없는 거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그런데 재미있고 신기했던 경험은, ‘선생님이 그 동그랗게 앉아서 얘기하는 거 우리 반에서만 한 줄 알았는데 다른 반에서도 하셨더라’고 약간 섭섭하다는 뉘앙스로 반장이 나에게 이야기할 때였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 반에서는 자율 시간을 활용해서 종종 몸놀이도 하고 서클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었다. 첫 만남 서클로만 진행했던 것이 이렇게 한 해 동안 할 수 있게 했던 밑거름이 됐던 것이다. 

내가 회복적 생활교육의 취지에 가장 동의하는 부분은 ‘학급의 5%에 해당하는 학생들보다 95%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나의 95% 에너지를 쏟자’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5%의 힘든 아이들 때문에 나의 95% 에너지를 쏟곤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95%의 아이들도 5%의 아이들도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만 95%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이 남게 된다. 그게 그 전까지 너무나 싫었었는데,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고나서는 그래도 5%보다 95%에 좀더 마음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회복적 생활교육 관련 책들이 외국 책을 번역했거나, 특정 모임의 주도로 이루어져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잘 모르겠다, 이건 그 나라 이야기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라면 이 책은 경기도의 선생님들이 직접 하신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었을 때에도 훨씬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무엇보다 활동마다 시나리오와 어떤 음악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나와있어서 이번 해에는 이대로만 해도 되겠다 싶은 책이었다. 아마 올해 학교 책꽂이에 꽂혀있으면서 내 손에 자주 잡히게 될 책이 아닐런지. 

“학급 전체가 지닌 공동체의 평화적 압력”을 경험하고 싶은 선생님들이라면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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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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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우리나라의 소설은 세월호를 빼놓고는 사건을 서술할 수 없다. 무력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아픔과 분노를 느꼈고, (어쩌면 그로 인해)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가끔 이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일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아야 그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건 아닌가 할 때가 있다. 그 이전에 어떤 ‘조짐’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황정은 작가의 이 연작소설집은 ‘d’와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2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dd를 잃은 후의 ‘d’, 완결작품이 없는 소설가 ‘나’가 각각 주인공이며, 2015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교차된다.

나는 첫번째 작품보다 두번째 작품이 더 좋았다. 첫번째 작품이 ‘부재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두번째 작품은 ‘어른과 상식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없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두번째 작품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나’의 의식의 흐름에 너무나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랬지?

왜 내가 창피해야 했지?

어른 입장.

그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사람이 그냥 자라면 어느 순간 어른인가?

내가 어른이야?

누가 내게 그 기회를 줬어? p.238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 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 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 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p.240


‘어른’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그러면 된다 안된다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른인 나는 딸보다 오래 살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잔소리를 듣는 딸은 가끔 싫은 표정을 보이지만 그래도 묵묵히 듣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잔소리 하시는 우리 부모님을 보며, ‘내 딸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니 나를 그냥 좀 내버려두셨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문득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잔소리만 하고, 판단만 하고 딸의 혹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른 됨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힘없음을 혐오’하고 ‘약함을 혐오’한다. 김소리의 상견례에서 바깥사돈이 언제 한 번 찾아보겠다고 하자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분노한다. ‘아들 가진 유세’라는 것이다. 신부쪽이기 때문에 무조건 무시당한다는 느낌은 누가 만드는 걸까?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약자 중의 약자로 자신을 판단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혐오한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는 힘이 없고 그것은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어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했던 경험으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것같다. 과거의 경험이 두려움으로 남은 것은 <d>에서의 김귀자 할머니도 비슷하다. 

특히 또다른 '나'의 아버지 이야기는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다.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게 왜 나라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그 이후로 다시는 세월호를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세계... 그들의 세대. 그들의 무력함.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혹은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완전무결한 어른이라고 생각한 부모의 모습이 깨어지는 경험이다. 차압 딱지가 붙을 것임을 알았던 ‘나’의 아버지는 두 딸만 남겨둔 채 출근하는 척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딸들 앞에서 그 일을 안쓰러운 자신의 과거로 회상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딸들의 절망감이란! 그 일을 직접 경험한 딸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자신만의 과거 회상. 나는 두 딸인 ‘나’와 김소리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발언인 듯하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어떤 측면은 평범성이라기보다는 상투성에 그 기원이 있을 것이다. p.219


이것과 저것을 연상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연상이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이고, 거기서 ‘상식’은 무슨 일을 할까. 선한 것과 천사와 아기는 ‘핑크’ 속에서,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있는 걸까. p.246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가? 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 니까 세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은 그러할 것이라는 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해제를 쓴 정화열 선생은 상식을 ‘사유의 양식’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감각에 바탕을 둔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상식, 또는 공통감이란 아무래도 ‘생각’인 모양이고, 다시 그를 인용하자면 서수경에게 적용되었다는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 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으며 내가 주장하는 상식으로 네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질 않잖아. 그럴 때의 상식이란 감도 생각도 아니고...... 그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고 저 이야기는 저렇게 끝나는 것이라는 관습적 판단일 뿐 아닐까. p.264~266


부분이다. 

예전에 ‘윤리학과 교육’이라는 책을 보면서 ‘상식’이라는 게 과연 영원불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식은 100년 전, 50년 전, 30년 전이 다른데, 그냥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그렇게 하니까 좋은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는, 흘러가 버리는 상식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걸 생각없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혹은 '상식이지' 라고 해버려도 되는가? 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한 얼마전에 보았던 '알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잠깐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일부러 화면을 캡쳐해두기도 했다. 아이들과 '생각없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상식'에 대해 나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았으니 '상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다. 

황정은 작가가 오랜만에 낸 책이라 무척 기대하고 읽었는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책을 읽으며 올해 좋은 책들을 만나게 됨에 참 감사하고 기뻤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는 소설이 정말 좋은 소설이라면 이 작품은 정말 손에 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몇몇 참고 버전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우선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부터


틀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 p.189~190

탈출의 경험이 내게 없기 때문일까? 내가 그것을 고민하고 있을 때 서수경은 1997년에 네가 김포 포도밭에서 나오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탈출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것이 탈출일까? 나는 오랫동안 도망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 여름에 나는 경기도 김포 모처의 포도밭에서 도망쳤다, 라고.

나는 포도밭에서, 탈출했을까 도망했을까.

그 둘은 구별되는 것일까. p.196

어쨌거나 어머니가 모성을 말하고 아버지가 금기를 말하는 이야기는 싫다. 그런 이야기를 도취된 채로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어른도 싫다. 정진원은 그것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읽고 자랐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독서의 경험이란 앞선 삶의 문장을, 즉 앞선 세대의 삶 형태들을 양손으로 받아드는 경험이기도 하니까.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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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실천편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이명섭 외 지음 / 에듀니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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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전 교과 연수를 통해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 백워드 교육과정 등의 내용을 접하고, 내가 가르치는 방법과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매해 형식적으로 내던 교육과정 재구성 문서와 얼마 되지 않는 비율의 단발성 수행평가로 아이들의 ‘수행’을 평가하고 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말은 ‘수행’이었지만 글 한 번 잘 써내면 A였고, 못하면 그 항목에선 저조한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연수 후 조금씩 교육과정 재구성과 과정형 수행평가를 시도하고 있지만 단번에 뭔가 바뀌거나 하진 못했다. 참고 도서도 찾아보고 다양한 정보를 찾고 있던 차에 김덕년 장학사님의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를 읽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에 읽은 실천편의 예시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왜 일체화를 꿈꾸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체화를 하고 있는지의 실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일체화’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대학입시와 직결되어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행의 비중을 높이고 강의식 수업의 비중을 낮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교사들끼리의 협의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요구와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부’ 혹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배움을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 목표가 될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수능에서의 만점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일 것이고, 학생의 성장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알 수 있다고 본다면 결국 과정-수업-평가-기록이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중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어릴수록 과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 사이 많은 시행착오가 있지만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등과정에서의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는 꼭 필요한 일인 것같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하고 있고, 나도 뜻을 함께 한다면 이들과 함께 발을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2월에 이 책을 보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다가오는 3월은 좀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달라진 평가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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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소설의 첫 만남 2
성석제 지음, 교은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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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 성석제

중고등학생 대상 소설들을 의무적(?)으로 읽는 편이다. 아이들이 추천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 상황에 따라 내가 책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기 때문이다. 신간 도서도 자주 읽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미 여러 단편 작품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었고, 국어 선생님들 사이에도 인기가 있는 편이다. 그러다 신간 도서 목록을 보고 이 단편 소설만 따로 책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고, 설명을 통해 출판사의 신선한 시도라 생각해 읽어보았다.

내용은 '유명 화가의 초등학교 때 이야기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
소제목 0과 1이 반복되고 그에 각각의 서술자가 있다. 서술자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끝나 있는 작품이다. 사건은 소설의 거의 3/4 지점 쯤에 등장하고 소설의 끝부분은 독자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주인공들의 선택, 재능,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 등 단편 소설이지만 학생들과도 이야기할 거리가 꽤나 많다.
그보다 이 책 자체는 그 자체로도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우선 두께가 얇다는 게 꽤 매력적이다. 그림이 없으면 우선 싫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고, 그림이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같다. 글자의 크기가 작지 않은 것도 보기에 편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쥐어주기 좋은 크기이기도 하다.

아이들 사이에도 독서력은 꽤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다. 중학생임에도 성인용 도서를 잘 읽어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초등학교 중학년 수준의 동화책도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 이 두 부류의 아이들을 잘 연결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둘 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나온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 시리즈 몇 권을 비치해두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시리즈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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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이 희망이다 - 한국 민주시민교육의 철학과 실천모델
장은주 지음 / 피어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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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이 책을 매일 조금씩 읽었다. 다른 책도 함께 읽는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밑줄을 긋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학창시절은 6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한 교실 안에서 생활하는 세대였고, 반장, 부반장, 각 부 부장을 뽑고 매주 학급회의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에 당연히 회의를 하고 결과를 적었던 세대이다. 그런데 그때의 경험이 나를 민주시민으로 키웠으냐고 묻는다면 금방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하라니까 했고, 빨리 결론을 내야 했고, 주제도 학교에서 내준 것에 대해 선생님들이 좋아할만한 의견을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의 중학교 모습은 그 때와 많이 달라보이진 않는다. 물론 요즘은 다양하게 학생들이 학칙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고 학교의 정책을 세우는 데에도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민주시민이 되겠느냐 하면 그것에도 역시 답은 딱히 긍정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이 책은 그래서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을 읽어봐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는 없겠다는 단순한 진실"(p.12)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에게도 적용되는 문장이다. 나도 학창 시절 제대로된 민주주의 교육은 받아본 기억이 없다. 이론적으로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체제라는 것을 주입식으로 암기했을 뿐이다. 정치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조차 배운 적이 없었다. 아니 이건 일부러 안 가르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지금부터라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부해보고 학교에서도 그 실천을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보이지 않은 채 진행되는 사회정치적 대결과 투쟁이 일상화된 곳이 우리 사회다."(p.27) 라는 문장을 읽으며 얼마전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칼럼이 떠올랐다. 찬반 토론을 위해 선거 연령 하향 찬반 칼럼을 보던 중, '가족끼리는 정치 이야기 하는 거 아니다'라는 문장을 나온 것이다. 내 생각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사실 같은 성향이 아닌 이상 정치 이야기를 가족 안에서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누구와 정치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학교에서만 사회에서만 해야하나? 아이의 정치에 관련된 교육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가족끼리도 건전하게 서로 다투지 않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하는 것이 먼저이고, 이를 반성해야 할 어른의 입에서 저런 문장이 나왔다는 것이 더 창피했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이견을 말하면서 그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민주시민으로 키운다는 것이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닌 민주 사회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일텐데 아직도 사회에서의 '민주'는 곧 '정치'의 다른 말인 것같다.

물론 이 책이 이런 류의 정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맥락은 '민주시민' 그 자체이므로 민주시민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참여해야하는지를 챕터 별로 잘 서술하고 있다. 특히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저마다 '좋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해야한다는 부분에서는 밑줄과 별표를 동시에 주어야했다. 대통령 선거 내내 화두였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교육이 변해야한다는 주장 안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이 '저마다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이 돕는 것'이 아닐런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더 좋은 방향으로 국가가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어느 누구에게도 불합리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은 꼭 필요해 보인다.
미리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던 사례들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적용해볼만한 참고사항도 좋았다. 특히 서울원당초등학교의 사례는 위계를 세우지 않고 동일한 위치에서 함께 합의에 이른다는 점에서 한번쯤 해보고 싶은 방법이었다.

동일한 챕터 안에서 자주 반복되는 문장이 보이는 것이 강조를 넘어 너무 자주 등장하는 듯해서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내 아이, 우리 학생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민주 시민으로 자라기 위해 한 번쯤 읽어보고 실천해볼만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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