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그러면 된다 안된다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른인 나는 딸보다 오래 살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잔소리를 듣는 딸은 가끔 싫은 표정을 보이지만 그래도 묵묵히 듣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잔소리 하시는 우리 부모님을 보며, ‘내 딸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니 나를 그냥 좀 내버려두셨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문득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잔소리만 하고, 판단만 하고 딸의 혹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른 됨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힘없음을 혐오’하고 ‘약함을 혐오’한다. 김소리의 상견례에서 바깥사돈이 언제 한 번 찾아보겠다고 하자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분노한다. ‘아들 가진 유세’라는 것이다. 신부쪽이기 때문에 무조건 무시당한다는 느낌은 누가 만드는 걸까?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약자 중의 약자로 자신을 판단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혐오한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는 힘이 없고 그것은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어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했던 경험으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것같다. 과거의 경험이 두려움으로 남은 것은 <d>에서의 김귀자 할머니도 비슷하다.
특히 또다른 '나'의 아버지 이야기는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다.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게 왜 나라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그 이후로 다시는 세월호를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세계... 그들의 세대. 그들의 무력함.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혹은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완전무결한 어른이라고 생각한 부모의 모습이 깨어지는 경험이다. 차압 딱지가 붙을 것임을 알았던 ‘나’의 아버지는 두 딸만 남겨둔 채 출근하는 척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딸들 앞에서 그 일을 안쓰러운 자신의 과거로 회상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딸들의 절망감이란! 그 일을 직접 경험한 딸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자신만의 과거 회상. 나는 두 딸인 ‘나’와 김소리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