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가량을 작은 방에 앉아서 정해진 타깃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보름이라는 기간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방심한 상대는 경호원도 없이 여자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조준경 가득 그의 살찐 얼굴을 잡아당긴 뒤 그의 미간에 총알을 박았다. 성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관절은 아무리 주물러도 감각이 없었다. 쓰지 않는 근육이 낡아 가듯이 어느새 내 관절은 한쪽으로 굳어 있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모두 내 관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보름 동안 나는 외롭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울었다. 보름 동안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내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창 밖에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잠시 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손바닥으로 가린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났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L에게 얘기했다.
L이 말했다.
"자네는 혼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지. 고독이란 우주선을 잃어버린 우주인 같은 거라고."
그는 나를 비웃지 않았다.
"생각해 봐.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떠서 그는 차츰 떨어져 가는 산소량을 확인하겠지. 그때 그가 점점 멀어져 가는 지구를 바라보면선 말하지. '제길, 담배나 한 대 피워 봤으면' 하고 우주를 향해 날리는 유머 같은 것 말이야. 참 쓸쓸하지. 그래도 괜찮아. 그의 쓸쓸한 유머들로 헬멧이 부옇게 흐려지면 우주도 그의 눈물을 보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고독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L이 해준 마지막 충고였다.
- 여우의 빛, 이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