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애틋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해받고 싶어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그녀의 이면에는 늘 자신에 대한 자신 없음과 불안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떠본다거나 필요할 때마다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연날리기식의 사람 관계를 싫어했다. 그렇게 때문에 늘 어떤 말을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그 말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걸로 알았다. 물론 상대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알았다. 나이로 치자면 아직 삶에 대해 아무 기교도 터득하지 못할 열아홉 살 정도였다. 말하자면 마음이 미처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물여섯 살인 사람인 열아홉 살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또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사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있고 싶었다. 영악한 사람을 만나야 거꾸로 내가 편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투명하고 순순한 마음을 가진 그녀 옆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랑이란 어쩌면 이처럼 상식과 등식을 배제한 단순한 감정의 포화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 가족사진첩, 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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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함이라는 건 우주의 원리 안에서 감히 사용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우리도 결국 유한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나는 지금 영원함이 아니라,  

유한한 삶 속에서의 지속적일 수 있는 어떤 의지와 바람들을 말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건 유한한 것이기도 하지만 영원함을 닮아 있기도 해요.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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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D123 2009-12-0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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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가량을 작은 방에 앉아서 정해진 타깃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보름이라는 기간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방심한 상대는 경호원도 없이 여자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조준경 가득 그의 살찐 얼굴을 잡아당긴 뒤 그의 미간에 총알을 박았다. 성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관절은 아무리 주물러도 감각이 없었다. 쓰지 않는 근육이 낡아 가듯이 어느새 내 관절은 한쪽으로 굳어 있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모두 내 관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보름 동안 나는 외롭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울었다. 보름 동안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내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창 밖에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잠시 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손바닥으로 가린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났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L에게 얘기했다.  

L이 말했다.  

"자네는 혼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지. 고독이란 우주선을 잃어버린 우주인 같은 거라고."  

그는 나를 비웃지 않았다.  

"생각해 봐.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떠서 그는 차츰 떨어져 가는 산소량을 확인하겠지. 그때 그가 점점 멀어져 가는 지구를 바라보면선 말하지. '제길, 담배나 한 대 피워 봤으면' 하고 우주를 향해 날리는 유머 같은 것 말이야. 참 쓸쓸하지. 그래도 괜찮아. 그의 쓸쓸한 유머들로 헬멧이 부옇게 흐려지면 우주도 그의 눈물을 보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고독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L이 해준 마지막  충고였다.  
 

- 여우의 빛,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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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서 시체 부검을 해 보겠냐는 제안에 나는 싫다고 했다. 나는 사망 원인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원인이라는 게 진짜 이야기는 밝혀 주지 못할 테니까. 누나는 상심하여 죽었다. 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미리엄,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어. (...)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어요. 

. 

하지만 난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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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더기에서 내려오다가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고통 때문에 실신한 적도 있었는데,  

제창 병원의 캐나다인 의사는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 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내 물음에 캐나다인 의사는 오른손 검지로 가슴을 가리키며 외국인 특유의 음성으로  

그 고통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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