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4

더스티는 계속해서 흐느껴 울었다.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추위가 점점 심해졌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몸을 웅크리고 싶을 뿐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더스티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렇게 계속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했다. 지금은 어쨌든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더스티는 휴대전화가 내동댕이쳐진 곳으로 간신히 기어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다행히 망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여전히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더스티는 눈물을 삼키고는 발을 질질 끌며 간신히 벽을 향해 다가가 기대어 섰다.
“울지 마.”
더스티가 중얼거렸다.
“울지 말란 말이야… 빌어먹을….”
하지만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펑펑 쏟아져 눈앞의 시야를 가리고 생각마저 막아버렸다.
“침착하자.”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까처럼 다시 몸을 웅크린 채 주저앉고 싶었다. 아니,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그 사람들한테 질 수는 없어.”
더스티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전화를 걸었던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외쳤지만, 머릿속에서의 외침일 뿐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버튼을 마구 눌러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침착하자. 넌 지금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있어… 버튼을 누르고 있어….”
더스티는 자신이 무얼 누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동시에 여러 개의 버튼을 무작정 마구 누르고 있었다.
“젠장… 제발 좀… 침착해 줘.”
더스티는 버튼을 누르던 동작을 간신히 멈추고 거칠게 숨을 쉬면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눈이 펑펑 내려 오솔길 위로, 돌담 위로, 그리고 더스티 위로 한층 두텁게 내려앉고 있었다. 굵은 눈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고, 몸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얼굴과 몸 위에 부딪는 차가운 눈송이들의 감촉이 잠시나마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더스티는 몇 차례 천천히 숨을 내쉰 다음 다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취소 버튼을 누르자. 액정의 숫자를 다 지우는 거야.”
더스티는 취소 버튼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른 다음, 마침내 주요 기능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아까보다 더 천천히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여전히 온몸이 떨렸고, 하얀 눈도 더 이상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온몸이 눈에 젖었고 추위 때문에 이가 딱딱 부딪쳤다.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찾아야 해.”
더스티는 혼잣말을 했다.
목소리를 크게 내면 마음이 좀 진정될 것 같았다. 더스티는 휴대전화의 수신번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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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내 판단이 틀림없었어. 넌 역시 영리한 계집애야. 기지가 보통이 아닌걸.”
더스티는 개들을 주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예쁜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군. 안 그래? 그래봤자 고작 못생긴 말괄량이 주제에.”
더스티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경멸에 찬 그의 눈동자가 번득이고 있었다. 더스티는 자신의 눈동자도 그와 똑같이 번득이길 바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꼭 너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닌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한 미모 한다고는 볼 수 없단 뜻이지. 안 그래? 이쯤 되면 녀석이 노리는 인간이 어떤 부류인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마치 더스티가 입을 열길 기다리기라도 하듯 그가 잠시 숨을 돌렸다. 더스티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를 향해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속으로만 고함을 질러댈 뿐 겉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지, 이번엔 좀 이해가 안 되는 걸. 아무리 봐도 넌 그 녀석 타입이 아니거든. 그러기에는 너무 말괄량이 같단 말이지.”
또 그 소리였다. 마치 주먹으로 한 대 치는 것처럼 말괄량이라는 단어가 더스티를 세게 내려쳤다.
“자, 내 말 잘 들어, 아가씨.”
남자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말해주지. 난 경찰이든 누구든 이 일에 관여하는 거 원하지 않아. 내 말 알아듣겠어? 경찰한테든 가족한테든 친구한테든, 하여튼 얘기만 해봐. 그 즉시 네가 아끼는 누군가가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물론 너 역시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그 조그만 주둥아리 나불거리기 전에 심사숙고하라 이 말씀이야.”
남자가 더 가까이 몸을 구부렸다.
“이게 끝이 아니라니까.”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는 소형트럭을 향해 몸을 돌렸다.
더스티는 둥글게 몸을 움츠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더스티의 몸 위로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더스티는 소형트럭을 보지 않았다. 지금은 도저히 그것을 볼 자신이 없었다. 엔진이 활기차게 그르렁 대는 소리를 들었고, 번쩍번쩍 빛나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자기 몸 위로 떨어지다가 소형트럭이 후진하면서 불빛도 소리도 모두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잠시 후 소형트럭이 골목의 너른 구역에서 방향을 트는 소리, 엔진이 마지막 굉음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소형트럭은 침묵과 눈을 남긴 채 캄캄한 밤 속을 달려갔고, 더스티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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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더스티는 발버둥 치면서 달아나려 애썼지만 금발 소년이 이내 다른 손으로 더스티의 배를 움켜쥐고 벽 쪽으로 더스티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또 한 명의 소년이 더스티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더스티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더스티는 도망치려고 다시 한 번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손에 더욱 완강히 붙잡힐 뿐이었다. 그때 더스티가 무릎을 들어 올려 금발 소년의 사타구니를 최대한 세게 쳤다. 소년은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질렀다. “이 계집애가!” 더스티는 그의 주먹이 한 차례 뒤로 갔다가 앞으로 휙 날아오는 걸 보았다. 순간 더스티는 몸을 홱 구부렸고, 그 바람에 주먹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벽을 쳤다. 소년은 다친 손을 흔들면서 신음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더스티는 두 발로 마구 발길질을 하며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차댔다. 한쪽 발이 다른 소년의 정강이를 찼다. 그러자 이 소년 역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두 소년 모두 더스티를 향해 돌진했다. 더스티는 소년들의 팔 아래에서 몸부림쳤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빠져나와 오솔길 아래로 냅다 달렸다.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지만 채 5미터도 가기 전에 그들에게 양 어깨와 허리를 잡히고 말았다. 더스티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주먹이 날아와 더스티의 등허리를 쳤다. 더스티는 신음소리를 내며 눈 위에 푹 쓰러졌다. 소년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더스티 곁으로 다가왔을 때, 더스티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더스티는 얼른 전화기를 꺼내 응답 버튼을 누른 다음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노울로 가는 오솔길이에요!” “저 계집애한테 전화기 뺏어!” 남자가 소리쳤다. “노울로 가는 오솔길이요!” 더스티가 소리쳤다. “경찰에 전화해 주세요!” 여러 개의 손들이 전화기를 낚아채고 있었지만, 더스티는 전화기에 대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남자 하나가 있고요! 소년도 두 명 있어요! 투견들도 있어요!” 손 하나가 더스티의 손목을 움켜쥐고 휴대전화를 뺏으려고 더듬거렸다. 더스티는 어떻게든 손을 뿌리치며 연거푸 전화기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검은 머리카락! 묶은 머리! 흰색 소형트럭! 차량 번호는….” 그때 꽉 움켜쥔 손에서 전화기가 빠져 나갔다. 금발 소년이 발로 전화기를 걷어찼다. 더스티는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두 소년과 남자가 자신을 감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개들을 묶은 가죽 끈은 여전히 남자의 손아귀에 단단히 쥐어져 있었지만, 녀석들의 턱과 더스티의 얼굴은 불과 몇 인치 떨어지지 않았다. 더스티는 곧이어 한 차례 더 주먹이 날아오길 기다렸지만 더 이상 주먹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남자가 소년들을 흘긋 쳐다보았다. “트럭에서 기다려.” 그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소년들은 아무 말 없이 남자의 말을 따랐다. 남자는 그들이 가는 걸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눈 덮인 자신의 발치에 아직 누워 있는 더스티를 쓱 훑어본 다음, 발치에서 몇 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내동댕이쳐진 휴대전화를 흘끔 바라보았다. 굳이 휴대전화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전원을 끄거나 박살을 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더스티를 노려보았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젖었다. 그가 조금 전과 같은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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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 2010-01-0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긴박감 내일까지 기다려야돼 ㅜㅜ
 

   
  Mon 4 January 2010

Happy New Year to you all. I hope 2010 is good for you. January is a special time for Frozen Fire. Firstly, the novel is being launched in Korea – I am terribly excited about that – and secondly it is the month in which Dusty's adventure starts. She receives the phone call from the mysterious boy on New Year's Day. So this is Dusty's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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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여러분 모두 행복한 새해 되길 바래요. 2010년은 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할게요.

1월은 <프로즌 파이어>에게 특별한 시간이랍니다. 첫째, 1월은 <프로즌 파이어>가 드디어 한국에서 출간되는 달이기 때문이구요. (사실 한국 출간에 전 완전 흥분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둘째, 1월은 더스티의 모험이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에요. 더스티는 새해 첫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소년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거든요. 그래서 1월은 더스티의 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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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더스티는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고, 설사 그들이 자기 말을 믿는다 해도 어쩐지 그들에게 소년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그 소년이 무슨 짓을 했든, 그가 조쉬 오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든 전혀 아는 바가 없든, 소년보다 이 사람들이 훨씬 못미더웠다. 
“난 그저 발자국을 쫓아갔을 뿐이에요.”
더스티가 말했다.
“눈 위의 발자국을 보고 따라간 것뿐이란 말이에요.”
“날 바보로 아나본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전….”
“날 바보로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남자의 목소리는 냉혹했고 악의로 가득 찼다.
“아직 어린 소녀인 네가 한밤중에, 그것도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는 이 공원 을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거지. 세상에, 그것처럼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넌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발자국을 보았어. 그 발자국이 누구 발자국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호기심으로 발자국을 따라갔다는 말인데. 내가 그 따위 말을 믿을 것 같아?”
더스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네, 저는….”
“그리고는 나한테 거짓말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무례하게 굴고 있어.”
남자가 좀 더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개들도 거의 더스티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더스티를 노려보더니 더스티를 향해 풀쩍 뛰어 올랐다. 더스티가 벽에 납작 달라붙는 동안, 남자는 개들을 뒤로 잡아당기고 손목에 가죽 끈을 묶어 끈을 짧게 했다. 덕분에 개들과 더스티와의 간격이 제법 벌어졌지만 그래봤자 고작 몇 인치에 불과했다. 소년들도 더스티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게 고집 부려봐야 소용없어.”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오싹할 정도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보아하니 제법 영리한 아이 같은데. 아무 이유 없이 혼자서 어슬렁거리며 공원을 돌아다닐 리가 없어. 눈 위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발자국이 찍힌 걸 보고 쫓아갔을 리도 없고 말이야. 왜냐고?”
더스티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위험하기 때문이지.”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밤늦은 시간에는 험악한 인간들이 돌아다니거든. 그런 위험한 인간들 눈에 띄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셨나?”
“내 일에 상관 마세요.”
“네가 사실대로 말하면 상관 안 하지.”
“사실대로 다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도대체 왜 발자국을 따라갔냐니까?”
“그냥요.”
더스티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남자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난 네가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나한테 설득 좀 당해봐야겠는걸.”
남자는 소년들을 슬쩍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년들이 더스티를 향해 다가왔다.
더스티는 그래봤자 시간 낭비만 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눈 덮인 골목길에서 자신의 비명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래도 더스티는 연거푸 비명을 질렀고, 그러자 금발 소년이 한 손으로 재빨리 더스티의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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