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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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9쪽

나는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내 연인과 브라키오사우루스 외에는 생각하고 싶은 것이 많지 않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잊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15쪽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신과 세상은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잊었었다. 야넨시 교수가 텐다구루에서 그것의 뼈 몇 개를 발견할 때까지 1억 5천만 년 동안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지상의 기억에서, 어쩌면 심지어 우주의 기억에서조차도 사라졌었다. 야넨시 교수가 그를 발견한 후에 우리는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다시 꾸며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작은 뇌, 그의 먹이, 습관, 동시대 동물들, 그의 오랜 종족 생활 전부와 그의 죽음을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그는 다시 존재하며 모든 아이가 그를 알고 있다. -15쪽

나는 신문을 보고 그의 죽음을 알았다. '시장 사무실 책임자 에밀레 P가 연인의 집에서 이른 아침시간에 세번째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했다.'
나는 지빌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묻기도 전에 지빌레가 먼저 말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이미 끝없이 혼자서 그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에밀레는 내 집에서 죽지 않았어."-38쪽

카린과 클라우스는 학창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그들은 내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 즉 청춘의 사랑이었다. 청춘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물었다면 나는 카린과 클라우스라고 말했을 것이다. 청춘의 사랑은 단순히 젊은 시절에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청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견주어 잴 수 있을 어떤 것도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아직 실망을 극복할 필요도 없고 이전의 행복을 능가하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도 반박하거나 수정하거나 대체하지 않아도 된다. 카린과 클라우스가 서로를 위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쉬는 시간에 두 사람이 바싹 붙어 학교 운동장 울타리에 기대 서 있기 전에 다른 학생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74쪽

"정말이야. 차라리 그가 죽었다면 더 나았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버림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도 했다. 아마 그녀는 클라우스 외에 다른 남자는 몰랐을 것이다. 카린은 아마 나라면 그런 일을 견디기가 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면 그런 충격에 단련이 되어 있겠지만, 자기는, 카린은 불행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80쪽

그들은 나를 감시했어. 세 사람 모두. 프란츠가 말했다. 세 사람 중 하나가 불성실한 남편들에 대한 이야기를 바깥에서 듣고 오면 곧바로 식사 중에 위협적으로 그 이야기가 거론되었지. 그 얘기에 따르면 대부분 남편이 성교 불능이 되거나 병에 걸렸어. 아니면 새로 얻은 아내가 급사하거나 아이가 불구로 태어났어. '그 위에는 축복이 내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나만 쳐다보셨어.-157쪽

프란츠가 언제 그 문장을 말했을까. 내 아버지가 옳았어. 이미지도 없고 빛도 없고 단지 프란츠의 목소리만 들린다. 날이 어두웠을 것이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프란츠의 팔에 안겨 눈을 감고 말없이 누워 있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가 옳았어. 사람은 인생의 것이지.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인생이 루치에 빙클러였다면 아버지는 그녀의 것이었어."-191쪽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한 문장이 아직 부족했다.
항상 아버지가 진 빚을 내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버지가 옳았기 때문에, 루치에 빙클러에게 가기로 했던 결정이 정당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빚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면......
프란츠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의자등받이에 걸쳐져 있는 그의 흰색 셔츠가 빛나고 있었다. 여전히 한 문장이 부족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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