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작가정신 소설향 23
배수아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9월
구판절판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오래 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먼 미래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불특정한 사람들이 밤의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은 내 인생의 사람들이다. 내가 오래 전에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고 살아갈 것이며 먼 미래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사람들은 지금 나를 모른다. 그들은 어두운 얼굴로 불빛 희미한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무감동하게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간다. -13쪽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 우리들은 많은 일반화된 오류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 교육정도가 낮거나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집단에서 발생빈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나타난 가정의 화목도가 가정폭력과 반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녀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경우 부모 중 대상 아동과 친밀도가 덜한 사람이 폭력의 가해자일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 폭력이 존재하는 가정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결손, 알코올중독, 전과 등의 부적응의 경우와 반드시 결부된다는 것 그런 점들이 여러 오류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여러 사회조직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이 원시적인 친족 공동체의 생래적인 특징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 현대로 옮겨올수록 가정 내 폭력과 상관관계를 이루는 유발요인, 유인요인, 통제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심층화 다양화되어서 선명한 단언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여러 케이스 스터디의 경우 보여진다.'-45쪽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 너에게 느끼는 것도 증오인지, 가슴속 깊이 숨겨진 단조로운 애정인지, 아니면 지리멸렬할 뿐인 이 생을 견뎌나가기 위해 어떤 극적인 감정을 연극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제발 그런 식으로 내 어깨를 만지지 말아. 난 짐승이 아냐. -68쪽

내가 철수를 스쳐 지나갈 때 철수가 이빨 사이로 씹어 뱉듯이 낮게 중얼거렸다. 철수는 계속했다.
"너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벽을 쌓고 있기만 한다. 나는 아무렇게나 기분대로 이 세상을 사는 인종들이 언제나 싫었어. 나, 너에게 의무감을 가지려고 했다."-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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