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정신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다치고 빗장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온통 캄캄한 절망이 되어버린다.

짧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유도 없이 떠돌고 있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혼란스럽기만한 마음들을 어떻게 붙들어매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속의 미자를 드라마 보는 내내 미워했었다. 가끔 TV를 꺼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미워했던게, 그렇게 싫었던게....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

태어나길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흔들리고 위태롭고...... 결정적으로 이기적이고......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결점들이 살아가다보면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면 세상은 순식간에 캄캄한 절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순간은 정말 가족 누구의 얼굴조차도 보이지 않는 이 지구상 어느 구석에 꽁꽁 숨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아주 낯선 타인과 몇시간이고 내내 수다떨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나 결국은 후회를 하게 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이 모순과 혼란이 두려울만큼 외롭다.

결국은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곁에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근원적인 외로움을 다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인가에 특별한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 특이체질처럼 그렇게 타고나버린 탓일게다.

이 끝나가는 가을이, 아직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저 눈부신 단풍들이........... 슬프디 슬픈 늦가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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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 스타일 1 - 오직 하나뿐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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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점선을 알게 된 건 TV문화지대를 통해서였다.  무심코 틀어둔 TV에서 책을 읽는 듯한 약간은 어눌한 나레이터가 수많은 매끄러움들 속에서 붙잡듯이 귓속으로 파고 들어와 하던 일을 잠시 접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칼, 집에서 청소하다가 나온듯 편안한 옷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주 잠깐 헷갈리게 했던 그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별스런 자유로움"이란 시각적 이미지로 선연히 그려졌다.. 그리곤 이내 그 독특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누구지? 했는데 무식한 나만 몰랐을뿐 꽤 알려진 유명인사인 화가 김점선이었다. 이후로 그녀만의 스타일로 진행된 인터뷰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지켜보았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때 반가움에 덥석 집어들고선 조금은 두근거리면서 읽어내렸다. 그녀만의 독특한 색채를 만나는 기쁨과 내게도 매력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하며....

지금은, 반의 충족감과 반의 실망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너무나 궁금했던 김점선에 대해 알아감의 기쁨(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표현했구나... 하는)이 충족이라면, 인터뷰로서의 부족함이 실망이랄까..

활자로서 인터뷰를 읽는 것은, 매력적인 사람들의 세상에 알려진 외형의 모습외에 그 내밀함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그녀가 표현했듯이). 직접 만나볼 수 없으니 인터뷰어의 시선을 따라가며 상상해보고, 미루어짐작해 보기도 하면서 좀더 친밀한 정신적 교감을 느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목마름에 주어진 한모금의 물같다. 오히려 더욱 갈증을 느끼게 하는 딱 한모금의 물...

어쩌면 이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오로지 주관적 기대치를 안고 책장을 넘겼던 내탓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터뷰어의 시선을 따라가게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책에서는 인터뷰어의 시선이 카메라처럼 우리를 안내해 주지만 여기서는 몇명을 빼고는 진작부터 그녀가 알고 있던 이들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지인에 대한 글이기에 주관적인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만났던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에세이를 접할때처럼 얌전히 앉아서 고개만 끄덕여야 한다.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처럼..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오롯이 김점선이다. 그녀가 만난 열일곱명은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개체가 아니라, 이 책 안에서 김점선을 만나, 그녀가 되어 버린다. 오로지 하나뿐인 김점선이 오로지 하나뿐인 사람을 만나서 오로지 하나뿐인 인터뷰를 한다. 그래서 오로지 하나뿐인 책 김점선 스타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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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우리에게 독일은 무엇인가...
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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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을 읽고 나서 다시 공지영을 읽는다.

전에 착한 여자를 읽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참 시시한 작가란 생각을 해서 한동안 그미를 놓고 있었드랬는데... 간혹 무슨무슨 수상작 모음에서 한번씩 만났을 뿐.

얼마 전에 읽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별들의 들판'은 1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다만, 별들의 들판은 그 공간적 배경이 독일의 베를린이란 회색 도시인 것이 차이점이랄까.

지난 토고와의 경기에서 깜짝 놀란 것은, 온 관람석을 뒤덮은 붉은 색 때문이었다. 토고는 가난한 나라여서 거기 비싼 응원료 내고 표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겠지만, 한국인들은 이제 십여 만원 정도 내고 충분히 구경올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잠입하기 제일 좋은 루트 중의 하나였다. 베를린은 서독과 동독의 섬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동백림 사건도 일어났고, 윤이상처럼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결과적으로 생겼던 것.

70년대, 돈줄이 당긴 박정희에게 손을 내밀어 광부와 간호사를 마구 송출한 일이 있었던 나라. 그래서 그 간호사와 광부들이 아직도 가득 붙박이 별이 되어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는 나라.

광주에서 동포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이들의 <비극>을 온 세계로 알린 용기있는 사람(위르겐 힌츠페터)이 살던 나라. 결국 6년 뒤, 광화문 한복판에서 그 독일인을 죽도록 폭행해서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든 나의 조국, 대한 민국.

날마다 독일에서 송출되어 오는 전파를 받아 밤낮이 뒤바뀐 요즈음, 끝없이 꽃가루가 날려 화면에서 축구공인지 꽃가루인지도 모르게 시멘트로 칠갑이 된 나라, 백야라서 열 시가 되어도 훤하다는 북구의 나라, 초여름인데도 30도를 훨씬 웃돈다는 나라. 그 나라에서 살아온 한국인들, 베를린에서 천사가 되어버린 이들의 시같은 이야기 여섯 편이 단편으로 실려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없는 애환이 <독일>에는 있었다.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동양인을 경계하는 나라에 자국민을 보내 두고, 그 피를 빨았던 삼십 년 전의 한국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피땀흘리며 신분이 늘 불안한 동남아 형제들, 그 블랑카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공지영의 기록 정신은 철저하고 투철한 편인 것 같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치밀한 스탈의 영혼을 가진 여자. 그가 결혼 생활이란 장막 속에서 무던히 사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소설에 이혼 모티프가 유독 많은 것이 그런 것일게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 독한 기록자도 필요하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일일진대, 요즘 소설가들은 <현실>을 다들 잊어버린 듯 하다. 아직도 현실은 시린 칼날 그대로건만... 이육사 시대로 무릎 디딜 한 곳 없는 칼날 같은 현실이건만... 많은 작가들은 달팽이처럼 그 칼날을 두루뭉실 미끈덩 넘어가 버리고 만다.

달팽이처럼 점액질을 분비하지 못하는 공지영같은 이는 스스로 칼에 베어 고통스런 불면의 밤을 지새곤 하겠지만, 그의 소설의 힘은 그 불면의 밤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가 깨닫고 있기를 바란다. 그 상처입는 불면의 밤이 고통스러워 펜대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좋겠다.

연작소설이라고 하기엔, 각각의 인물들이 동떨어져 있고, 그저 단편집이라 하기엔, 공간적 거리가 극도로 가깝다.

요즘 내가 소설들을 보면서 불만스런 것은 이거다. 장편 소설, 연작 소설, 소설집 이렇게 정체를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처럼, 공지영 소설...이러고 하면, 좀 애매한 것이 사실이잖은가.

이 책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라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 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란 짠한 구절이 아닐까 한다. 여기 저기서 많이 읽어 본 구절. 어쩌면 공지영은 주워들은 데모 이야기보다, 이런 짠한 연애 소설에 더 적합한 감상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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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그리고 아마도 대구에서는 처음의 콘서트가 아니었을까..

가슴이 설레었지.... 가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여느때처럼 또 바람들만 잔뜩 키우다가 체념하듯 포기하고 말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거기에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에이 어쩔수 없지" 한숨처럼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고등학생인 아들이 도서부 지원금을 받으니, 보태서 가보자고 했고,

정말 과감히 결단을 내려버렸다. 다른 모든 일상의 소소함들은 모두 던져 버리고........

방황과, 소문들과 오해의 시간들을 끝냈노라고,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소리꾼으로 우리곁에 있겠다는 그는,,,,

그렇게 영혼을 울리는 긴 호흡을 남겨 주었다.......

예전의 어느 한 나날들속에 처음 임재범을 만났던 것은, 

영혼의 공명을 느꼈던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서였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버릴 뻔 했던 그의 존재는 김춘수의 시처럼 내게 의미있는 "꽃"이 되었다.

오늘, 이제 열일곱의 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 노래 속에 들어있는 많은 세월의 무게를 나처럼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아들에게도 그의 노래가 의미있는 "꽃"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는 많은 나날들속에서 때로 힘들고 지칠때,

그의 조금은 쓸쓸한 목소리가,  그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세대를 넘어 공유했던 오늘의 시간들이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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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81)

며칠 미루어두었던 연재를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자꾸 미뤄지는 걸 보면 이것도 확실히 '일'인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 이번에도 고른 책들은 일단 최근에 나온 책들 다섯 권이다. 개인적인 관심범위 안에 놓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책들을 꼽아보자는 게 이 연재를 끌고가는 나의 '원칙'이다(비록 모든 책에 적용되기는 힘들더라도). 단순하게 나열하는 건 재미가 덜하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자면 '멸종의 역사에서 철학까지'이다.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무의미한...

 

 

 

 

제일 먼저 꼽을 책은 <멸종의 역사>(아고라, 2006)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들의 삶과 죽음'이 부제니까 제목의 '멸종'은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멸종'이다. 멸종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리처드 리키의 <제6의 멸종>(세종서적, 1996) 이후에 드물지 않게 출간되었다. 멸종의 역사가 10년내 사뭇 달라졌을 리는 없는 만큼 초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의 대차는 없을 거라고 본다.

No Turning Back: The Life and Death of Animal Species Cover

이번에 출간된 책도 "지구가 탄생하고 30억 년 전에 생물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생명의 역사를 다룬다. 책은 지구에 살았던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멸종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구에 처음 생물이 나타났을 때 있었던 종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종은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종이 나타난 지 1,000만 년 안에 멸종했다. 이 수치는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 중 99퍼센트가 멸종했음을 뜻한다." 문학이론가 프랑코 모레티가 쓴 비유이지만, 진화사는 달리 '도살장의 역사'이다.

책의 저자는 리처드 엘리스인데, 동물학자이자(보다 정확히는 '해양생물학자') 미국 최고의 자연사 작가라고 한다. "리처드 엘리스는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글솜씨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라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하고 있으니까 신뢰할 만한 책이기도 하고. 그가 어떤 책을 쓰냐면 아래와 같은 책들을 쓴다. 말 그대로 '해룡'인가, 아님 '어룡'?

 

다시 <멸종>으로 돌아오면 "책은 현재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에 이은 제6의 대량 멸종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6의 대량 멸종은 진화와 멸종의 개념을 아는 유일한 종인 인간이 자연의 균형을 철저하게 뒤집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죽음의 기록'이기도 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풀어내면서 생명체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동시에 인류의 종말을 경고한다." 네들 다 끝났어!

 

 

 

 

사실 저 우주공간에서 빛나는 '항성'들 또한 '역사'를 갖는 것이니 이런 멸종의 위협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좀더 '노골적인' 경고를 기대한다면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을 펼쳐들어야 하는지도(최근에 영화도 개봉된 듯하다). 너무 불편하다면, 몇년 전 출간되어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 2003)와 맞대결시켜보면서 읽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겠다. 그 길로 더 나가면 생태학적 위협(니콜라스 루만)과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경고하는 사회학자들의 책까지 (다시) 챙겨볼 수도 있겠다. 오버인가?

 

 

 

 

두번째 책은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치, 2006). 저자는 예일대 교수라고 하고(<전쟁과 인간>이 이미 국역돼 있다) 국내 그리스/로마사 권위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오전에 구내서점에 가보니까 '명품서적' 30% 할인판매장에 이미 책이 나와 있었지만, 형편상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면 여러 전쟁사들은 놔두고서라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음사) 정도는 같이 읽어줘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여유를 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여 출간소식을 승전소식처럼 전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그리스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흐름을 뒤엎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대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뛰어넘어 2,400년 전의 전쟁을 오늘날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마저 인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대제국의 흥망, 매우 이질적인 두 사회와 삶의 방식 사이의 충돌, 인간사에서 지성과 우연의 상호 작용, 리더십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려준다. 이미 학자를 대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지은이는 일반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서술로 사라져버린 세계를 풍성하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인간과 국가의 흥망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 전쟁사인 만큼 흥미롭게 읽을 법하다. 무슨 '배틀'들에 몰입하시는 분들이 이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어떠실지?   

저자인 케이건 교수는 1932년 리투아니아 태생의 원로 역사학자이다. 1958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9년부터 예일대에 봉직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2003년에 출간된 그의 최신작이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그가 2002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한 걸로 돼 있는데, 그가 받은 건 'National Humanities Medal'(국가 인문학 메달)이니까 인권과는 무관하다.

 

 

 

 

세번째 책은 김시천 교수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국가간의 이기주의는 간혹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리뷰들을 얼핏 보니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이기주의는 소소한 개인, 곧 소인들의 이기주의이다.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란 부제가 말해주는 바 그대로. 사실 공자왈 맹자왈의 대종은 군자/대인에 관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우리 인간의 대종은 아무래도 소인들이 아니겠는가. 책은 이 소인(배)들의 (정당한) 탐욕과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소개에 따르면, "동양의 이기주의란 씨실과 동양고전이란 날실을 엮어 동양적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 동양 이기주의의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고, 대인의 큰 이기주의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그들의 역할을 명시했다... 책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 즉 사회적 이기주의를 보다 당당하게 누리자고 권장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국가권력에게 자신을 희생했던 소인들에게 ‘당신들은 대인이 아니라 소인이니 권리를 내세우며 오늘 하루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소인을 '작고 평범한 사람들'로 평범하게 정의한다. 예전에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도 스스로가 '보통사람'임을 내세워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양반들의 자기변명서로 활용될까 걱정된다(하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행복한 이기주의'는 한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인간됨의 그릇이 작아 '소인'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얼만큼 겹쳐지면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서도 합당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지라 책이 그런 내용까지 다 포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번째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힐러리 퍼트넘/퍼트남의 <존재론 없는 윤리학>(철학과현실사, 2006). 국내엔 <이성-진리-역사> 이후에 그래도 몇 권 소개돼 있는 편인데, 퍼트넘은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엔젤레스)에서 H. 라이헨바흐에게 과학철학을 배우고 하버드 대학에서 W.V.O. 콰인에게 현대 논리학을 배운" 미국의 주류/정통파 철학자로서 1965년 이후 하버드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그러니까 존 롤즈와 넬슨 굿맨 등의 그의 과 동료들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동료인 저명한 철학자 스탠리 카벨의 책들이 소개되지 않는 건 상당히 기이한 일이다).

사실 윤리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들은 피터 싱어의 책들이다(싱어의 책들은 열댓 권 가량이 출간됐다). 하지만, 눈길을 끈 건 퍼트넘의 책인데, '존재론 없는 윤리학'이란 제목부터가 뭔가 유혹적이지 않은가?  

 The Collapse o fht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물론 퍼트넘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상당히 '딱딱한' 책일 거라는 걸 미리 점쳐볼 수 있다. 그래도 고통을 좀 덜어주는 건 200쪽 분량의 아주 얇은 책이라는 것. 그의 전작 <사실/가치 이분법의 붕괴>와 합본을 해야 보통의 '철학서' 분량이 된다. 그 얄팍한 분량에 유혹되어 책을 사두긴 했는데, 언제나 정독하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래도 <수학의 철학> 같은 책에 비할 바가 아닌 건 분명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페인의 국보급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이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라도 기억하게 되는 27세에 마드리드대학 철학부 정교수가 된 '천재'였다. 소개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책은 그의 대중 철학 강의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버전의 철학입문서이다.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오르테가가 철학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지를 친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서 철학이 생성되면서 나 역시 철학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게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소개이다.

작년봄에 <대중의 반역>이 다시 번역돼 나와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었던 듯한데, 내가 갖고 있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주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런 첫인상을 심어준 이는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서평을 썼던 문학평론가 이동하이다. 두번째 인상은 러시아 체류시 받은 것인데, 러시아어로는 대표작들이 문고본으로 출간되어 있어 그 지명도를 짐작케 했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도를 읽는 건 '교양'에 해당한다는 것.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그 '교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겠다. 내가 더 기대하는 건 언젠가 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 출간되었던 <돈키호테의 성찰>이 세련된 장정으로 재출간되는 것이다(저자 자신이 멋쟁이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책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리더스북, 2006)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체가 니체에 버금한다고 하여 떠올려본 것인데, 철학서는 아니고 어빈 얄롬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소설이다. 책이 친숙한 건 예전에 교보문고의 철학코너에서 뻔질나게 보던 책이어서이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서구 사상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 19세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에 지적 상상력을 더해 집필한 팩션"으로서 "음울한 천재 철학자 니체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브로이어와 벌이는 화려한 지적 공방을 그린다.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커먼웰스 베스트'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후 13년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그러니까 니체와 프로이트에 관한 이야기들의 성찬일 텐데, 장기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철학책보다 철학자에 더 흥미를 갖는 독자에게라면 자신있게 권할 만하겠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그의 눈물이 비명이 되기 전에...

06.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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