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우리에게 독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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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행복한 시간을 읽고 나서 다시 공지영을 읽는다.
전에 착한 여자를 읽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참 시시한 작가란 생각을 해서 한동안 그미를 놓고 있었드랬는데... 간혹 무슨무슨 수상작 모음에서 한번씩 만났을 뿐.
얼마 전에 읽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별들의 들판'은 1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다만, 별들의 들판은 그 공간적 배경이 독일의 베를린이란 회색 도시인 것이 차이점이랄까.
지난 토고와의 경기에서 깜짝 놀란 것은, 온 관람석을 뒤덮은 붉은 색 때문이었다. 토고는 가난한 나라여서 거기 비싼 응원료 내고 표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겠지만, 한국인들은 이제 십여 만원 정도 내고 충분히 구경올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잠입하기 제일 좋은 루트 중의 하나였다. 베를린은 서독과 동독의 섬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동백림 사건도 일어났고, 윤이상처럼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결과적으로 생겼던 것.
70년대, 돈줄이 당긴 박정희에게 손을 내밀어 광부와 간호사를 마구 송출한 일이 있었던 나라. 그래서 그 간호사와 광부들이 아직도 가득 붙박이 별이 되어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는 나라.
광주에서 동포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이들의 <비극>을 온 세계로 알린 용기있는 사람(위르겐 힌츠페터)이 살던 나라. 결국 6년 뒤, 광화문 한복판에서 그 독일인을 죽도록 폭행해서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든 나의 조국, 대한 민국.
날마다 독일에서 송출되어 오는 전파를 받아 밤낮이 뒤바뀐 요즈음, 끝없이 꽃가루가 날려 화면에서 축구공인지 꽃가루인지도 모르게 시멘트로 칠갑이 된 나라, 백야라서 열 시가 되어도 훤하다는 북구의 나라, 초여름인데도 30도를 훨씬 웃돈다는 나라. 그 나라에서 살아온 한국인들, 베를린에서 천사가 되어버린 이들의 시같은 이야기 여섯 편이 단편으로 실려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없는 애환이 <독일>에는 있었다.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동양인을 경계하는 나라에 자국민을 보내 두고, 그 피를 빨았던 삼십 년 전의 한국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피땀흘리며 신분이 늘 불안한 동남아 형제들, 그 블랑카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공지영의 기록 정신은 철저하고 투철한 편인 것 같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치밀한 스탈의 영혼을 가진 여자. 그가 결혼 생활이란 장막 속에서 무던히 사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소설에 이혼 모티프가 유독 많은 것이 그런 것일게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 독한 기록자도 필요하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일일진대, 요즘 소설가들은 <현실>을 다들 잊어버린 듯 하다. 아직도 현실은 시린 칼날 그대로건만... 이육사 시대로 무릎 디딜 한 곳 없는 칼날 같은 현실이건만... 많은 작가들은 달팽이처럼 그 칼날을 두루뭉실 미끈덩 넘어가 버리고 만다.
달팽이처럼 점액질을 분비하지 못하는 공지영같은 이는 스스로 칼에 베어 고통스런 불면의 밤을 지새곤 하겠지만, 그의 소설의 힘은 그 불면의 밤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가 깨닫고 있기를 바란다. 그 상처입는 불면의 밤이 고통스러워 펜대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좋겠다.
연작소설이라고 하기엔, 각각의 인물들이 동떨어져 있고, 그저 단편집이라 하기엔, 공간적 거리가 극도로 가깝다.
요즘 내가 소설들을 보면서 불만스런 것은 이거다. 장편 소설, 연작 소설, 소설집 이렇게 정체를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처럼, 공지영 소설...이러고 하면, 좀 애매한 것이 사실이잖은가.
이 책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이라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 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란 짠한 구절이 아닐까 한다. 여기 저기서 많이 읽어 본 구절. 어쩌면 공지영은 주워들은 데모 이야기보다, 이런 짠한 연애 소설에 더 적합한 감상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