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박완서 님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워낙 독서 편식이 심한데다가, 소설은 왠지모를 가벼움이 느껴져 쉽게 구입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 TV 프로에서 박완서 님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곧바로 이 책을 구입했다. 그 모습에서 나의 미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고 싶다는.... 누구나 한 번씩 꿈꿔보는 미래상. 어떤 책일까? 라는 궁금증도 없이, 오직 작가 하나만 보고 책을 선택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구입하고도 6개월이나 뒤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썼길래 저리들 난리들이래? 라는 마음에 빨리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첫사랑 그 남자'에 관한 그저 그런 연애담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앞서자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6개월 후 우연히 이 책을 들었고, 성급하게 연애 소설 쯤으로 치부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 조차 했다.

주인공과 그 남자의 연애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늙그막히 우연히 그 남자네 집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주인공과 그 남자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큰 맥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

그렇다고 짜릿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순정 만화에나 등장하는 연애담은 이 책에선 들을 수 없다. 작가의 의도는 남녀간의 연애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자와 그 남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의 삶에 작가의 시선이 깊게 꽂혀있다.

악랄한 전쟁의 포효가 남긴 치열한 삶의 악다구니 속에 남겨진 사람들, 바로 아녀자들. 피난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남으로 남으로 떠나 버린 황량한 도시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 모두가 가난하다 보니 진짜 가난뱅이를 찾기조차 힘들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쟁의 수마가 휩쓸고 간 서울에 남은 건 아녀자들과 끈질기게 착 달라붙은 가난밖에는 없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야지. 가족을 위해서' 라는 무덤덤하면서도 근심 어린, 또한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말은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여성들의 삶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가 아닌 자식을 위해서, 혹은 동생들을 위해서 희생된 여성들의 삶. 바로 그 시대가 정상을 되찾도록, 시대에 의해서 희생이 강요된 여성들의 삶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박완서 님의 글에는 연륜이 느껴진다.  조곤조곤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글이다. 박완서 님의 작품을 통해서 '소설을 가볍게 여겼던 과거의 성급함으로인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놓쳤겠구나...' 하는 반성의 시간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