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혜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다 읽은 직후다. 내게 '생의 한가운데'는 한번만 읽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책이었다.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왕에 읽을거면 다른 번역본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얻게 된 것이 전혜린 번역본이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자살을 감행했다는 사실도 그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자실이란 단어는 마력과 같이 나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그녀가 남긴 수필집을 서슴지 않고 구입한 것은 아마 당연한 결과이리라.
전혜린의 수필집 <목마른 계절>
한꺼번에 전혜린 수필집 세 권을 모두 구입했지만, 가장 먼저 손에 든 것은 <목마른 계절>이다. 제목에 흠씬 담겨 있는 갈증이 나의 그것과 유사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나에게도 목마른 계절이었다. 극도의 목마름 상태는 아니었지만, 늘 뭔가를 갈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상태.
전혜린은 무엇을 갈망했는지, 무엇이 채워지지 않아 여전히 목마른 계절에만 살고 있는지, 덤으로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도대체 그녀의 짧디 짧은 31년간의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명확한 답변을 얻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저 그녀의 글을 통해 추측할 뿐.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사고는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절대적인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목마른 계절> 에 투영된 전혜린의 열망과 고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장을 제시하라면 난 이 두 귀절을 소개하고 싶다.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
'평범한 과정을 밟은 가장 평범한 직업인, 아내, 어머니'로서 가장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평범하다와 평범하지 않다를 나누는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 전혜린에게 그 기준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전혜린은 자신의 삶이 전혀 뜻하지 않는 평범한 날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럴때면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 별거 있나? 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그렇다고 전혜린의 인생이 평범했다는 것은 아니다. 전혜린은 1955년에 독일 뮌헨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독일과 유럽 곳곳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회인으로서의, 아내로서의, 어미니로서의 전혜린의 모습은 21세기를 살고있는 여성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전혜린이 평범하지 않다는 증거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전혜린의 모습은 주로 1955년부터 1965년까지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정형화된 그 시대에 전혜린 사고 속에선 전혀 구시대적인 의식을 엿볼 수 없다.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 여행을 떠난 곳,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연주되는 반면, 무대의 주인공인 전혜린은 분명하게 자신의 심정을 뱉어낸다.
그렇다. 인생 별거 있나? 다 그렇게 사는거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우리가 겪게 되는 삶의 큰 틀은 어느 누구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여자로 태어난 경우에는, 직장인, 아내, 어머니의 과정을 밟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 과정을 얼마나 알차게 채워넣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전혜린은 충분히 알차게,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어느 누가 그녀의 인생을 평범하다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