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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여성학 백과사전 ㅣ e시대의 절대사상 26
변광배.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살림 / 2007년 5월
평점 :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의 선구자이며 그녀의 저작 '제 2의 성'은 페미니즘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보부아르와 그의 저작이 이후의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제 2의 성'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녀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나 일반인들에게서나 거의 전무한 지경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 책을 읽기 전부터 부담을 안겨 주어 그런게 아닌가 한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e시대의 절대사상에서 나온 여성학 백과사전 '제 2의 성'은 학계에 몸 담고 있지 않은 일반 독자도 보부아르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도록 쉽고 체계적으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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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거의 대부분의 주장은 오늘 날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열등성은 결코 타고 났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고 사회,문화적 사실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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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여성이 겪는 열등성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경험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쩌다 열등한 존재, 제 2의 성이 되었을까. 이 물음의 답을 이해하려면 보부아르의 영원한 연인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변광배는 사르트르 전공자로 그의 이론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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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의하면 1. 인간의 행동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초월적 가치는 없다. 인간의 삶에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삶은 부조리한 것이다. 인간은 이 세계에 그냥 '내던져진' 존재이며 우리가 고뇌와 불안을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이 세계에 속하는 모든 존재는 우연적이다. 필연적인 존재이유란 없다. 우리의 목표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보하는 것, 자신의 출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3. 인간에게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을 구상한 신의 존재란 없기에 우선 사람이 먼저 있어 세상이 존재하고, 그 다음에 정의된다. 이런 인간은 실존하는 순간마다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나간다. 순간순간 자신을 선택하면서 선한자, 또는 악한 자가 된다.
삶이란 자기 창조의 과정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해 가는 것을 인간이 자기 자신을 미래를 향해 내던지는 투기라고 한다. 즉, 자기 자신을 미래를 향해 내던지면서 자기를 창조하고 만들어가는, 실존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신에게 어떤 본질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자유롭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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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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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각자의 본질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와 타자는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객체화하려고 한다. 시선은 주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객체로 사로잡아 버리는 힘이다. 그러나 나는 한시라도 주체의 상태에서 벗어나 객체의 상태로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내 실존에 대해 진정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자와 나는 서로를 객체화하려는 '투쟁'의 관계이다. 하지만 나와 타자가 서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결국 이런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태는 '도덕적 상태'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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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보부아르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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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여성이 겪는 열등성의 원인을 여성의 본질이 아닌 실존에서 찾으려고 했다. 여성은 실존하는 주체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면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자유'의 상태에서 매 순간 자신을 미래를 향해 투기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초월하는'식으로 살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상태에 안주하면서 자기 창조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살아왔다. 이렇게 남성들이 베푸는 혜택 속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여성들은 스스로를 '타자' 또는 '객체'의 상태로 영원히 머물고 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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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여성이 타자 또는 객체가 된 원인을 1. 생물학적인 견해 2. 정신분석학적 견해, 3. 사적 유물론적 견해를 통해 분석하고 비판하다. 그리고 여성이 억압당해온 역사, 신화에 등장한 여성, 그리고 문학작품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을 고찰하면서 1권을 끝낸다. 2권은 여자의 형성, 여자들이 처한 상황, 여자들의 정당화, 그리고 여성해방의 가능성과 조건 등의 문제를 검토한다.
사실 방대한 저술의 끝에 제시된 대안은 부족함이 많다. 일단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해방되기 위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여성들이 남성 못지 않게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려면 일단 노동의 역할을 충실히 해 경제 자립을 해야한다. '성적 사명'이나 '모성', '남성 위주의 세계'라는 장애가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그곳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 창조와 자기 초월을 멈춰서는 안된다. 보부아르의 시대에는 밖에서 노동하는 여성이 적었고 참정권조차 여성에게 허용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 정도의 대안이 제시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스스로를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이런 태도를 지속하는 한 여성은 영원히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남성의 시선에 갇혀 객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