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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 -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한홍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감시 사회'라고 하지만 사실 생활하면서 감시받는다고 느낀적은 거의 없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 앉아 자율학습을 하면 사감이 돌아다니며 감시를 하곤 했는데 그때도 감시받는다는 불편함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요주의 인물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국가 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찰 대상이 간첩이나, 종북 사이트 단체 출입자, 혹은 정권비하 발언자에 국한 돼 있어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처럼 소시민적인 생활을 하면 국가 권력의 특별 감시를 받는 일은 드물 것이다.
요즘 메일이나 광고 전화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있기는 하다. '추천 상품'이라며 보여주는 것들이 하나같이 내가 살 법한 관심있을 법한 물건들이다. 한번은 이삿짐센터를 검색해 사이트 몇 곳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이삿짐센터에서 전화가 와서는 '혹시 이사하실 계획 없으세요?'라며 물었다. 맞춤형 마케팅이라며 내 정보를 보고 행동 패턴을 분석해 광고하는 기업이 많다. 편하지만 가끔 섬뜩하기도 하다. 아직까지 해를 입은 적이 없다. 보이스 피싱 전화도 두어번 받았는데'왜 속지?'라며 끊어버렸다.
감시사회. 국가가 과거처럼 대놓고 국민을 감시하지는 못한다. 기업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고 가끔 개인정보를 대량 해킹당하는 일도 있지만 그렇다할 피해가 아직은 없다. 보이스피싱을 제외하면 개인정보 유출로 크게 피해입은 사람도 적다. 하루 평균 CCTV에 80번 넘게 찍힌다는데 내가 찍히는 것보다 길거리를 안전하게 걸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읽은 책 목록과 리뷰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그것보다 누군가 서재에 방문해 내 글을 읽고 방문수를 높혀 주는 것이 더 즐겁다.
이런 생각들에 경고를 던지는 책이 '감시사회'다.
우리는 '치안'과 '복지'서비스를 이유로 국가의 감시를 받고 재미와 소통을 위해 스스로 개인정보를 드러내며 편리한 서비스가 좋아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참한다. 신용카드와 이메일, 전화통화 목록이면 과거의 행적을 알 수 있을뿐더러 미래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이런 현상에 우리는 무감각해진다. 그런데? 프라이버시가 그렇게 중요한가. 프라이버시를 최고의 가치로 따지기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고수하는 게 불가능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감시가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보이스피싱 말고는 와닿지 않고 도무지 상상이 안되는데 불감증이라고 떠든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최철웅은 1. 감시를 프라이버시의 문제로만 보지 마라.고 한다. 사람들은 치안을 위해 길거리 CCTV 설치에 동의한다. 그러나 CCTV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도난 사건 정도다. 정계의 비리 같은 범죄는 CCTV로 막을 수 없다. CCTV는 하층민의 소소한 범죄를 겨냥한 것이다. 만약 범죄 예방이 목적이면 범죄율이 높은 곳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CCTV는 부자동네에 설치 돼 있다. 범인은 CCTV가 있다고 범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CCTV가 없는 지역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이른바 풍성효과. 결국 가난한 동네는 범죄율이 계속 높아진다. 경기도 동탄, 인천 송도, 서울 상암 DMC에 설립하는 유비쿼터스 도시는 최첨단 시설로 치안을 강화한다. 도곡동 타워 팰리스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이렇게 부유한 사람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그 외부인이라 하면 가난한 사람;;;- 그 밖 지역은 치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최철웅은 감시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한다.
“테크놀로지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감시 기술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되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기술의 작동방식과 효과 따위를 고찰해야”
더불어 70년대 후반 민간 경비시장이 형성되면서 치안이라는 공공재가 상품화됐는데 부유한 지역은 돈을 들여 좋은 경비 업체와 계약하고 CCTV를 곳곳에 설치하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역은 그러지 못해 치안마저 악화되었다고 한다. 자기안전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작은 정부,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컸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눈여겨 볼 것은 3장 엄기호. 그는 2. 프라이버시를 소유의 문제로만 보지 마라. 고 한다.
보통 감시사회의 해결법으로 언급하는 게 "허락맏고 써!"다. 나의 어떤 정보를 어디에 쓰는지 일일이 허락을 받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취재를 할 때도 목적을 밝히고 사진을 찍을 때도 일단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원하지 않는 곳에 엉뚱하게 내 정보가 굴러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연예인의 사진을 성형외과 홍보 사진에 허락없이 가져다 썼다가 소송당하는 일이 있다.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 여기서도 프라이버시는 허락만 받으면 어디에든 가져다 써도 되는 소유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프라이버시가 소유이기 전에 인간의 인권과 맞닿은 아주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프라이버시는 '혼자있는 상태','사생활'을 뜻한다. 인권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뜻하는데 독립적이라는 말은 사회의 규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정 독립적이면서 자유로우려면 제도와 규율 같은 어떤 압력에 반해 자신의 생각을 나탄낼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인권을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인정했는데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이가 자율적으로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즉 혼자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인권을 가진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프라이버시가 소유의 문제로 취급되면 허락만 하면 프라이버시 공개는 아무 문제 없는 것이 된다.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상대의 몸을 희롱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들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양 좋아한다. 어떤 연예인은 자신을 "말벅지"라고 하며 몸을 스스로 까내린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는 출연자들이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 '진짜 사나이'나 '정글의 법칙'을 보면 연예인들의 땀과 눈물, 고통으로 점철돼 있는데 예전에는 프라이버시였던 부분들을 이제는 알아서 노출한다. 감정이나 몸 같은 내밀한 것까지 까발려야 인정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엄기호는 우리가 '보여주기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포기한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없는 사람은 인권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프라이버시를 소유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범위한 감시가 당장 내 생활에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 앞으로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생각해보면 막연하다. 아마도 내 정보가 누군가에게 이용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소시민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권력 감시나 기업들의 마케팅 외 상상할 수 있는 감시의 목적도 없다. 이렇게 느슨한 틈을 타고 감시는 전방위적으로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다. 어쩌면 감시의 진짜 위험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