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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할 자유- 섹스, 불륜, 가족제도에 숨겨진 본능과 억압의 실체
박홍순 지음 / 사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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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걸그룹 소녀들에게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준 매니저의 이야기
이학준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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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형 인간- 일, 생각, 미래를 기록하면 삶이 달라진다
이찬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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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되지 않을 자유
임태훈 지음 / 알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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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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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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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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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이동진, 소설가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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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 -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한홍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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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사회'라고 하지만 사실 생활하면서 감시받는다고 느낀적은 거의 없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 앉아 자율학습을 하면 사감이 돌아다니며 감시를 하곤 했는데 그때도 감시받는다는 불편함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요주의 인물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국가 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찰 대상이 간첩이나, 종북 사이트 단체 출입자, 혹은 정권비하 발언자에 국한 돼 있어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처럼 소시민적인 생활을 하면 국가 권력의 특별 감시를 받는 일은 드물 것이다.    


요즘 메일이나 광고 전화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있기는 하다. '추천 상품'이라며 보여주는 것들이 하나같이 내가 살 법한 관심있을 법한 물건들이다. 한번은 이삿짐센터를 검색해 사이트 몇 곳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이삿짐센터에서 전화가 와서는 '혹시 이사하실 계획 없으세요?'라며 물었다. 맞춤형 마케팅이라며 내 정보를 보고 행동 패턴을 분석해 광고하는 기업이 많다. 편하지만 가끔 섬뜩하기도 하다. 아직까지 해를 입은 적이 없다. 보이스 피싱 전화도 두어번 받았는데'왜 속지?'라며 끊어버렸다. 


감시사회. 국가가 과거처럼 대놓고 국민을 감시하지는 못한다. 기업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고 가끔 개인정보를 대량 해킹당하는 일도 있지만 그렇다할 피해가 아직은 없다. 보이스피싱을 제외하면 개인정보 유출로 크게 피해입은 사람도 적다. 하루 평균 CCTV에 80번 넘게 찍힌다는데 내가 찍히는 것보다 길거리를 안전하게 걸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읽은 책 목록과 리뷰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그것보다 누군가 서재에 방문해 내 글을 읽고 방문수를 높혀 주는 것이 더 즐겁다. 


이런 생각들에 경고를 던지는 책이 '감시사회'다. 


우리는 '치안'과 '복지'서비스를 이유로 국가의 감시를 받고 재미와 소통을 위해 스스로 개인정보를 드러내며 편리한 서비스가 좋아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참한다. 신용카드와 이메일, 전화통화 목록이면 과거의 행적을 알 수 있을뿐더러 미래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이런 현상에 우리는 무감각해진다. 그런데? 프라이버시가 그렇게 중요한가. 프라이버시를 최고의 가치로 따지기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고수하는 게 불가능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감시가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보이스피싱 말고는 와닿지 않고 도무지 상상이 안되는데 불감증이라고 떠든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최철웅은 1. 감시를 프라이버시의 문제로만 보지 마라.고 한다. 사람들은 치안을 위해 길거리 CCTV 설치에 동의한다. 그러나 CCTV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도난 사건 정도다. 정계의 비리 같은 범죄는 CCTV로 막을 수 없다. CCTV는 하층민의 소소한 범죄를 겨냥한 것이다. 만약 범죄 예방이 목적이면 범죄율이 높은 곳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CCTV는 부자동네에 설치 돼 있다. 범인은 CCTV가 있다고 범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CCTV가 없는 지역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이른바 풍성효과. 결국 가난한 동네는 범죄율이 계속 높아진다.  경기도 동탄, 인천 송도, 서울 상암 DMC에 설립하는 유비쿼터스 도시는 최첨단 시설로 치안을 강화한다. 도곡동 타워 팰리스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이렇게 부유한 사람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그 외부인이라 하면 가난한 사람;;;- 그 밖 지역은 치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최철웅은  감시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한다.     


 테크놀로지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감시 기술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되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기술의 작동방식과 효과 따위를 고찰해야”

 

더불어 70년대 후반 민간 경비시장이 형성되면서 치안이라는 공공재가 상품화됐는데 부유한 지역은 돈을 들여 좋은 경비 업체와 계약하고 CCTV를 곳곳에 설치하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역은 그러지 못해 치안마저 악화되었다고 한다. 자기안전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작은 정부,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컸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눈여겨 볼 것은 3장 엄기호. 그는 2. 프라이버시를 소유의 문제로만 보지 마라. 고 한다. 

보통 감시사회의 해결법으로 언급하는 게 "허락맏고 써!"다. 나의 어떤 정보를 어디에 쓰는지 일일이 허락을 받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취재를 할 때도 목적을 밝히고 사진을 찍을 때도 일단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원하지 않는 곳에 엉뚱하게 내 정보가 굴러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연예인의 사진을  성형외과 홍보 사진에 허락없이 가져다 썼다가 소송당하는 일이 있다.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 여기서도 프라이버시는 허락만 받으면 어디에든 가져다 써도 되는 소유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프라이버시가 소유이기 전에 인간의 인권과 맞닿은 아주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프라이버시는 '혼자있는  상태','사생활'을 뜻한다. 인권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뜻하는데 독립적이라는 말은 사회의 규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정 독립적이면서 자유로우려면 제도와 규율 같은 어떤 압력에 반해 자신의 생각을 나탄낼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인권을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인정했는데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이가 자율적으로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즉 혼자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인권을 가진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프라이버시가 소유의 문제로 취급되면 허락만 하면 프라이버시 공개는 아무 문제 없는 것이 된다. 한때 "꿀벅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상대의 몸을 희롱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들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양 좋아한다. 어떤 연예인은 자신을 "말벅지"라고 하며 몸을 스스로 까내린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는 출연자들이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 '진짜 사나이'나 '정글의 법칙'을 보면 연예인들의 땀과 눈물, 고통으로 점철돼 있는데 예전에는 프라이버시였던 부분들을 이제는 알아서 노출한다. 감정이나 몸 같은 내밀한 것까지 까발려야 인정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엄기호는 우리가 '보여주기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포기한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없는 사람은 인권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프라이버시를 소유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범위한 감시가 당장 내 생활에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 앞으로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생각해보면 막연하다. 아마도 내 정보가 누군가에게 이용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소시민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권력 감시나 기업들의 마케팅 외 상상할 수 있는 감시의 목적도 없다. 이렇게 느슨한 틈을 타고 감시는 전방위적으로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다. 어쩌면 감시의 진짜 위험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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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정치학
아브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S. 허먼 & 데이비드 페터슨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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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만들라면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다. 다른 게 있다면 여기서 '나'는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이 하면 로맨스,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가 하면 불륜'이다. 문제는 주제가 불륜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점. 그래서
'미국이 하는 학살은 무죄,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가 하면 유죄' 이다. 

학살에도 종류가 있다. 
건설적인 학살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일.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이라크에 미국의 손길이 필요했다. 미국이 개입하기 전보다 후에 더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지만 미국이 내세운 대의명분에 따르면 그들은 부수적인 피해일 뿐이다. 2004년 6월 안보리 결의 1546호를 근거로 주권 국가에 대한 군사적 점령이 사후적으로 합법화됐다. 모양새 좋게 이라크 총리를 맡은 아야드 알라위가 미군에게 잔류를 요청하고 미국 콜린 파월이 이를 엄숙하게 수락했다. 이 얼마나 영웅적인 장면인가. 이라크를 점령하는 동안 석유와 가스 자원 채굴, 운송은 물론 판매대금의 배분까지 미국에 유리하게 법률이 제정된 건 수고비일지도. 

 

사악한 학살은 2003년에 일어난 다르푸르 학살이다. 다르푸르는 수단의 한 지명이다. 수단이 아랍화 정책을 펴자 이에 반대한 다르푸르 사람들이 전투를 시작했고 수단 정부가 이들을 학살했다. 이라크 사상자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미디어에서 엄청 떠드는 바람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랍계 무슬림이 아프리카계 흑인을 학살한다며,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어서 빨리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르푸르는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인종 갈등 때문에 일어난 학살이 아니라 지역적인 기후불안정, 가뭄, 사막화, 인구증가, 식량불안이 원인이었다. 참고로 수단은 친중국, 석유 매장국가다. 

미국은 다르푸르에서 일어난 학살에 국제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자신들이 지지하는 독재자가 일으킨 학살(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에는 침묵했으며 미군에게 희생된 사람들에 눈감았다. 이중적인 면모보다 더 나쁜 것은 미국이 세계 모든 일에 참견하며 내세우는 그 명분이다. '악의 축','테러 지원국' 등 상대를 '악'으로 선정하고 자신들은 그들을 혼내고 벌주어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슈퍼맨쯤으로 여긴다. 나쁜 사람들을 혼내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수전 라이스 UN주재 대사가 “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 살상될 위기에 직면했으나 국가가 그들을 보호할 수 없거나 의지가 없을 때 이들을 ‘보호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국제 규범이다.” 고 했다. 보호책임은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희생자를 변호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결국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가했느냐가 기준이며 덧붙여 말하자면 누가 힘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게 책의 요지다.


UN, 휴먼 라이츠 워치, 국제 사면위원회, 국제 재판소, 미디어, 어느 하나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못한다. 러시아 공항에 갇혀 있는 스노든을 보라. 푸틴조차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스노든을 받아주지 않기로 했단다. 


이집트 사태는 어떤가. 선거로 당선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게 쫓겨났다. 미국의 기사는 이를 쿠데타로 정의할지 말지 결정을 못내렸다고 한다. 군부가 적법하게 뽑힌 대통령을 무력으로 몰아냈는데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단어의 정의가 사태와 일치하느냐가 아닌 모양이다. 이해관계가 사태를 정의하는 상황. 나는 여기서 미국의 패권과 논리를 배운다. 


마지막 아이러니 

스노든은 미국의 범죄를 공개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정작 그를 받아주려는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인권과 자유에 무관심한 반미주의 국가들이다! 스노든이 반미국가로 망명을 받아들이면, 너무도 쉽게 '악의 축'이 된다. 누가 무엇을 하든 미국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 손바닥 밖은 '없는 세계'로 만들어 버린 것. 미국이 전체가 되버린 게 미국의 힘이고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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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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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태어나서 지금껏 항상 함께 해 온 '나'이지만 가끔씩 나보다 남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하다. 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데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임성순은 묻는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냐고. 


박 신부는 욕심이 많다.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도 이왕이면 출세해서 봉사하자는 마인드다. 외국 유학도 가고, 학위도 땄다. 그것도 모자라 오지에서 1년 간 임시 신부로 지내기로 자청했다. 마치 대학생들이 일종의 스펙을 쌓으려 해외 자원봉사를 가듯 박신부도 내전 중인 곳으로 갔다. 지원금이 변변치 않아 성당을 꾸리는 것조차 힘든데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알력다툼으로 국가도 어수선하다. 박은 거기서 평생을 보낸 신부님이 존경스럽다. 타지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보살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신부가 복사로 쓰는 고아 아이를 밤마다 침대로 데려와 더러운 일을 시키면서 그것을 '의무'라고 가르쳐왔다는 사실을 알고서 박은 크게 실망한다. 신과 이웃을 섬긴 사람의 이면에 악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수민족이 다수민족을 다스리는 나라. 다수민족이 대통령을 암살하고 소수민족을 박멸하기 시작했다. 내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다수민족은 소수민족을 '벌레'라 부르며 어제까지 친구이자 이웃이던 사람을 찌르고 쏘고 강간하고 버렸다. 이 나라에 의료 봉사를 하러 온 의사 범준은 다수민족의 행동에 치를 떨며 소수민족을 데리고 국경을 넘으려 했다. 그때 같은 무리에 섞여 있던 다수민족의 배신으로 함께 있던 소수민족 사람들이 죄다 몰살당했다. 다수민족이 잔인한가? 애초에 왜 다수민족이 대통령을 암살했나 생각해보라. 연합군이 개입하자 상황이 역전됐다. 소수민족이 도시를 차지하고 다수민족이 국경 너머로 도망을 갔다. 국경 밖에 머물던 의사 범준은 다수민족을 치료했다. 자신을 배신하고 함께 있던 사람들을 죽게 만든 그 사람의 목숨까지도 살려 주었다. 난민소에서 치료를 받은 다수민족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 '자, 이제 복수를 하러 가자.' 범준은 몸서리를 쳤다. 누가 카인이고 누가 아벨인가. 누구를 치료하고 돕는 게 정의로운 일인가.   


여기서 두번 째 딜레마가 나타난다. 어떤 행동이 정의로운 것일까. 

범준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딸. 폐를 이식받지 못하면 죽는다. 자살 미수로 병원에 입원 한 혼수상태의 젊은 남자. 딸에게 이식하기에 조건이 딱 들어맞는 폐를 갖고 있다. 남자가 뇌사 판정만 받으면 딸은 살 수 있다. 남자가 뇌사 판정을 받기 바로 직전 범준은 남자의 손에 경련이 일어난 것을 본다. 뇌사가 아니었다. 딸을 살리느냐. 남자를 살리느냐. 범준은 남자를 살린다. 그게 정의라고 믿었다. 딸은 죽고 남자는 살았지만 1년 뒤 남자는 다시 자살을 한다. 죽은 남자를 보는 범준. 


만약 딸을 살렸다면 그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이고 딸도 덩달아 살인자가 되니 남자를 살리는 게 옳다고 굳게 믿었는데, 어쩌면 '옳은 일을 했다는' '나는 좋은 의사'라는 걸 딸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행한 선이 위선이 아닌지 되묻는다. 무엇을 했어야 했던가. 


결국 범준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죽고 싶은 사람을 찾아 죽이고 대신 살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목숨을 연장한다. 어차피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죽고 싶어하는데 살아서 뭐하나. 그들이 산채로 몸을 기증하면 범준이 자살자의 장기로 살고 싶어하는 4명을 더 살릴 수 있다. 수지에 맞는 장사. 


자살율 1위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데 그 사람들 장기만 이용하면 이식 수술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몇 만명을 살릴 수 있다. 합리적이다. 생명윤리, 인간존중, 인권을 말하며 장기거래를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라고 범준은 생각한다. 진짜 인간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지. 


그런데 범준. 옳기 때문이 아니라 딸에 대한 속죄로 이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이 일로 딸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낸다면 이야말로 위선이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옳은 일, 나쁜 일. 

그런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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