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정치학
아브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S. 허먼 & 데이비드 페터슨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만들라면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다. 다른 게 있다면 여기서 '나'는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이 하면 로맨스,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가 하면 불륜'이다. 문제는 주제가 불륜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점. 그래서
'미국이 하는 학살은 무죄, 미국이 싫어하는 나라가 하면 유죄' 이다. 

학살에도 종류가 있다. 
건설적인 학살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일.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이라크에 미국의 손길이 필요했다. 미국이 개입하기 전보다 후에 더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지만 미국이 내세운 대의명분에 따르면 그들은 부수적인 피해일 뿐이다. 2004년 6월 안보리 결의 1546호를 근거로 주권 국가에 대한 군사적 점령이 사후적으로 합법화됐다. 모양새 좋게 이라크 총리를 맡은 아야드 알라위가 미군에게 잔류를 요청하고 미국 콜린 파월이 이를 엄숙하게 수락했다. 이 얼마나 영웅적인 장면인가. 이라크를 점령하는 동안 석유와 가스 자원 채굴, 운송은 물론 판매대금의 배분까지 미국에 유리하게 법률이 제정된 건 수고비일지도. 

 

사악한 학살은 2003년에 일어난 다르푸르 학살이다. 다르푸르는 수단의 한 지명이다. 수단이 아랍화 정책을 펴자 이에 반대한 다르푸르 사람들이 전투를 시작했고 수단 정부가 이들을 학살했다. 이라크 사상자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미디어에서 엄청 떠드는 바람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랍계 무슬림이 아프리카계 흑인을 학살한다며,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어서 빨리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르푸르는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인종 갈등 때문에 일어난 학살이 아니라 지역적인 기후불안정, 가뭄, 사막화, 인구증가, 식량불안이 원인이었다. 참고로 수단은 친중국, 석유 매장국가다. 

미국은 다르푸르에서 일어난 학살에 국제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자신들이 지지하는 독재자가 일으킨 학살(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에는 침묵했으며 미군에게 희생된 사람들에 눈감았다. 이중적인 면모보다 더 나쁜 것은 미국이 세계 모든 일에 참견하며 내세우는 그 명분이다. '악의 축','테러 지원국' 등 상대를 '악'으로 선정하고 자신들은 그들을 혼내고 벌주어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슈퍼맨쯤으로 여긴다. 나쁜 사람들을 혼내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수전 라이스 UN주재 대사가 “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 살상될 위기에 직면했으나 국가가 그들을 보호할 수 없거나 의지가 없을 때 이들을 ‘보호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국제 규범이다.” 고 했다. 보호책임은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희생자를 변호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결국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가했느냐가 기준이며 덧붙여 말하자면 누가 힘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게 책의 요지다.


UN, 휴먼 라이츠 워치, 국제 사면위원회, 국제 재판소, 미디어, 어느 하나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못한다. 러시아 공항에 갇혀 있는 스노든을 보라. 푸틴조차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스노든을 받아주지 않기로 했단다. 


이집트 사태는 어떤가. 선거로 당선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게 쫓겨났다. 미국의 기사는 이를 쿠데타로 정의할지 말지 결정을 못내렸다고 한다. 군부가 적법하게 뽑힌 대통령을 무력으로 몰아냈는데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단어의 정의가 사태와 일치하느냐가 아닌 모양이다. 이해관계가 사태를 정의하는 상황. 나는 여기서 미국의 패권과 논리를 배운다. 


마지막 아이러니 

스노든은 미국의 범죄를 공개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정작 그를 받아주려는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인권과 자유에 무관심한 반미주의 국가들이다! 스노든이 반미국가로 망명을 받아들이면, 너무도 쉽게 '악의 축'이 된다. 누가 무엇을 하든 미국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 손바닥 밖은 '없는 세계'로 만들어 버린 것. 미국이 전체가 되버린 게 미국의 힘이고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