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태어나서 지금껏 항상 함께 해 온 '나'이지만 가끔씩 나보다 남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하다. 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데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임성순은 묻는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냐고. 


박 신부는 욕심이 많다.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도 이왕이면 출세해서 봉사하자는 마인드다. 외국 유학도 가고, 학위도 땄다. 그것도 모자라 오지에서 1년 간 임시 신부로 지내기로 자청했다. 마치 대학생들이 일종의 스펙을 쌓으려 해외 자원봉사를 가듯 박신부도 내전 중인 곳으로 갔다. 지원금이 변변치 않아 성당을 꾸리는 것조차 힘든데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알력다툼으로 국가도 어수선하다. 박은 거기서 평생을 보낸 신부님이 존경스럽다. 타지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보살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신부가 복사로 쓰는 고아 아이를 밤마다 침대로 데려와 더러운 일을 시키면서 그것을 '의무'라고 가르쳐왔다는 사실을 알고서 박은 크게 실망한다. 신과 이웃을 섬긴 사람의 이면에 악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수민족이 다수민족을 다스리는 나라. 다수민족이 대통령을 암살하고 소수민족을 박멸하기 시작했다. 내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다수민족은 소수민족을 '벌레'라 부르며 어제까지 친구이자 이웃이던 사람을 찌르고 쏘고 강간하고 버렸다. 이 나라에 의료 봉사를 하러 온 의사 범준은 다수민족의 행동에 치를 떨며 소수민족을 데리고 국경을 넘으려 했다. 그때 같은 무리에 섞여 있던 다수민족의 배신으로 함께 있던 소수민족 사람들이 죄다 몰살당했다. 다수민족이 잔인한가? 애초에 왜 다수민족이 대통령을 암살했나 생각해보라. 연합군이 개입하자 상황이 역전됐다. 소수민족이 도시를 차지하고 다수민족이 국경 너머로 도망을 갔다. 국경 밖에 머물던 의사 범준은 다수민족을 치료했다. 자신을 배신하고 함께 있던 사람들을 죽게 만든 그 사람의 목숨까지도 살려 주었다. 난민소에서 치료를 받은 다수민족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 '자, 이제 복수를 하러 가자.' 범준은 몸서리를 쳤다. 누가 카인이고 누가 아벨인가. 누구를 치료하고 돕는 게 정의로운 일인가.   


여기서 두번 째 딜레마가 나타난다. 어떤 행동이 정의로운 것일까. 

범준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딸. 폐를 이식받지 못하면 죽는다. 자살 미수로 병원에 입원 한 혼수상태의 젊은 남자. 딸에게 이식하기에 조건이 딱 들어맞는 폐를 갖고 있다. 남자가 뇌사 판정만 받으면 딸은 살 수 있다. 남자가 뇌사 판정을 받기 바로 직전 범준은 남자의 손에 경련이 일어난 것을 본다. 뇌사가 아니었다. 딸을 살리느냐. 남자를 살리느냐. 범준은 남자를 살린다. 그게 정의라고 믿었다. 딸은 죽고 남자는 살았지만 1년 뒤 남자는 다시 자살을 한다. 죽은 남자를 보는 범준. 


만약 딸을 살렸다면 그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이고 딸도 덩달아 살인자가 되니 남자를 살리는 게 옳다고 굳게 믿었는데, 어쩌면 '옳은 일을 했다는' '나는 좋은 의사'라는 걸 딸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행한 선이 위선이 아닌지 되묻는다. 무엇을 했어야 했던가. 


결국 범준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죽고 싶은 사람을 찾아 죽이고 대신 살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목숨을 연장한다. 어차피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죽고 싶어하는데 살아서 뭐하나. 그들이 산채로 몸을 기증하면 범준이 자살자의 장기로 살고 싶어하는 4명을 더 살릴 수 있다. 수지에 맞는 장사. 


자살율 1위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데 그 사람들 장기만 이용하면 이식 수술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몇 만명을 살릴 수 있다. 합리적이다. 생명윤리, 인간존중, 인권을 말하며 장기거래를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라고 범준은 생각한다. 진짜 인간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지. 


그런데 범준. 옳기 때문이 아니라 딸에 대한 속죄로 이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이 일로 딸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낸다면 이야말로 위선이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옳은 일, 나쁜 일. 

그런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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