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어떠한 말로도, 찬사로도, 놀라움으로도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가시나무 새'의 저자 콜린 매컬로가 준비작업 및 고증에만 13년, 집필에만 거의 20년이 걸린 'Masters of  Rome' 시리즈 중 그 첫번째, 로마의 일인자. 총 일곱 시리즈, 21권 중 첫번째 3권이다. 7부작으로 이루어진 Masters of Rome은 천년이 넘는 로마 역사 중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전 27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굳이 한마디로 하자면 그 기간동안 로마를 이끌었던 master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시대의 변화와 진보를 이끌어낸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첫번째 시리즈인 <로마의 일인자>는 기원전 110년에서 100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시대와 장소에 관한 묘사는 물론이고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 등을 표현한 부분은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독자가 그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게다가 로마의 포룸 로마눔과 일곱언덕들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다보니, 그 생생한 묘사들이 어찌나 시각적인지 상투적이고 평범한 감탄으로는 부족하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1부에서 주인공, 즉 로마의 일인자는 당연 가이우스 마리우스이다. 로마의 정통 귀족 출신이 아닌 '그리스어도 못하는 이탈리아 촌놈'인 그가 왜 로마의 일인자이고 제3의 로마건국자로 불리우는지는..책을 읽어야만 한다. 인물에도 원조라는게 있다면, 로마하면 무조건적으로 떠오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원조라고 할만하다. 그 시대에 마리우스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로마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을만큼 그의 공헌은 지대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로마는 이미 기원전 100년이 되기 전에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명의 주목할만한 인물은 마리우스와 한때 동서지간이기도 했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인데, 1부에서는 마리우스의 보좌관정도로만 등장함에도 그의 존재는 거대하게 다가온다. 마리우스라는 일인자가 있기 위해서는 술라 같은 서포터가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인물이다. 2부 <풀잎관>에서는 아마도 술라가 또 한명의 Master가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마리우스와 술라 이외에도 많은 원로원 의원이나 호민관, 그리고 율리아나 율릴라, 아우렐리아 같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개개인에 대한 묘사에서 어찌나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지 아무리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름이 외우기 어려워도 대화 한마디, 행동 하나만 보아도 누구인지가 명확해진다. 이는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번역의 힘이라고도 보여진다.

   인물들이 뱉어내는 촌철살인이 많지만 그 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라 생각되는 말은 루푸스가 마리우스에게 쓴 편지 속에 등장한다.

 

"가이우스 마리우스, 정말이지 이 세상에는 재능이 결여된 야망처럼 위험한 게  또 없다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마리우스가 집정관을 일곱번 지낼거라고 한 예언이 과연 성취될까. 1부에서는 6번의 집정관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술라는 어떻게 될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은 언제 등장할까 등등 궁금한게 너무 많다. 하지만 2부인 <풀잎관> 세 권을 시작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너무 빠지지 않도록 잠시 다른 책으로 마음을 다스려 봐야겠다. 로마 만세! (이 말은 마리우스를  따라해본 것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넘었고 한국에서 30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야 이 책을 읽는 나처럼 여전히 읽는 독자가 있는 스테디셀러라 하니 어쩐지 작은 위안이 되는 듯 하다. 지구의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고민이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다이어트를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살고있는데, 또 다른 곳에서는 해마다 수백만명이 기아로 죽임을 당하고 10억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한쪽의 잉여 식량은 다른 한쪽의 기아를 커버하고도 남을만한데, 왜 세계의 절반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카림이라는 아이와 아빠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쉽고 가독성도 좋은 책이다. 카림이 질문한다.

 

"아빠! 우리나라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도 마구 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일 아니에요?"

 

   씁쓸한 것은, 아이일때는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던 순수한 마음이 어른이 된 이후에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희생과 고통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극도의 빈곤 속에 사는 사람들이 그나마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그들의 한뙤기도 되지 않는 땅들을 매입(이라고 쓰고 약탈이라고 읽는다)하여 자기네 이익을 위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다국적 기업들, 이런 약탈에 필요한 대금을 지원하는 세계 은행이나 투자자들, 그리하여 자급자족할 능력을 상실한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을 비싼 값에 판매하며 기아는 자연도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반인류 범죄자들이다.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아이들"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들의 행태는 학살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한 예로, 책에서는 1970년 스위스 네슬레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칠레의 인민전선이라는 동맹은 자신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 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후보였던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후 공약을 지키기 위해 당시 칠레에서 분유시장을 독점하던 네슬레에게 '제 값'을 주고 분유를 사기 위해 협력을 요청하는데,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한다.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아옌데 정권의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성을 높이려는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그때까지 미국 기업들이 누려온 많은 특혜들이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지원을 끊고 파업을 조종하고 태업을 부채질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옌데 정권을 방해했는데 네슬레 역시 거기에 동조하는 기업이었다. 결국 아옌데의 공약은 우유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공급처를 구하지 못해 수포로 돌아갔고 미국 CIA가 도운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의 물품을 불매운동 해야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있는가? 탐욕스런 기업들과 이기적인 금융 자본이 존재하는 한 세계의 절반은 여전히 굶주릴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며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뭐든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통 앞에서 우리가 무심해지지 않는 것.

 

"나는 신에게 꼭 한 가지만 청한다네
고통 앞에서 내가 무심해지지 않기를
창백한 죽음이 이 땅에서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한 채
텅 비고 고독한 나를 찾게 되지 않기를 - 메르세데스 소사 (아르헨티나 출신 여류 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지음 / 한길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4년2월, 내가 런던이라는 도시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홍차라는 걸 마셔본 적도 없었고 빵이라고는 학교 매점에서 팔던 크림 빵, 단팥 빵 아니면 소보루..케이크라고는 단단하고 매끈한 하얀 색 혹은 분홍 색 설탕크림으로 중무장이 되어있던 그런 것만 먹어본 입맛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이질적인 풍경이 아마도 머그컵 가득 우려낸 홍차에 우유를 타서 시간날 때마다 마시던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홍차와 티푸드만을 위한 시간과 장소가 따로있고 유명한 호텔들의 애프터눈 티룸은 몇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가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당시에는 도대체 홍차가 뭐길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런던을 떠나올 때 쯤 나도 홍차와 크림바른 스콘의 애찬론자가 되어있었다.


   이 책을 보았을 때,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것 같았다. 홍차나 영국의 홍차 문화에 대한 전문가의 식견은 아니지만 한 그루의 차나무도 나지 않는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왜 그토록 홍차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충분하다.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는 영국인들이 유독 차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다르다. 스파이를 보내 차나무와 차를 제조하는 과정을 빼내오고 아편전쟁을 유발하면서까지 차를 마시고자 했고, 상류층에서 시작된 차에 대한 열망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는 힘들고 지친 도시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소울음료로 자리잡았지만 그 뒤에는 커피나 초컬릿처럼 식민지 주민들의 희생이 있어야 했다. 책에서는 크게 세 파트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담아낸다. 첫번째는 영국인들에게 드리운 홍차의 아우라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부분이고 두번째는 자국에서 재배할 수 없는 차나무에 대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은 결국은 홍차 마니아를 넘어 홍차 중독에 이른 영국인들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홍차 이외에도 지극히 영국적인 문화나 풍습에 관한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유명 작가들의 런던에 관한 위트있는 인용들을 읽는 재미,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물론 그림은 책의 내용과 백퍼센트 들어맞는 그림들이 아닌 것도 많아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냥 읽고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운 문장들을 소개해본다.

 

/1939년 영국 여행을 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국 기행>에서 런던의 안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런던의 안개는 한바탕 짙은 꿈과도 같아서 그 속에 들어가 바람과 비와 서리로 '운명'을 개조하기에 딱 좋다. 눅눅하고 노르스름한 안개는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담을 핥고 사람들과 나무들을 감싸고 그들의 폐로 침투한다. 안개는 서서히 솟아오르며 넬슨 동상을 지워버린다. 그것은 다시 서서히 내려앉으며 사소한 것들을 덮어버리고 거친 윤곽을 부드럽게 하고 넝마 조각들을 미화시키고, 온갖 추악한 형상에 신비로운 저승 분위기를 부여한다. (p65)/

 

   영국인들의 맹목적 홍차 사랑에 관한 묘사도 있다.
   영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문화인류학자의 시각으로 접근한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에서 인용된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항일텐데, 차 끓이기는 최고의 전이 행동, 즉 분위기 바꾸기이다. 영국인은 사교적인 상황에서 난처하고 불편하면 언제든 차를 끓인다. 누군가 집에 찾아오면 인사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데 그러면 "자, 주전자를 올리러 갔다 올게"라는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 중에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이미 날씨 이야기도 다 했고 별로 더 할 말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자, 누구 차 더 하실 분은 없으신가요? 내가 가서 주전자를 올려놓을께요"라고 한다.

  

   상담 중 돈 얘기를 꼭 해야 할 순간이 되면 불편한 상황을 잠깐 미루고 모두 차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아주 험한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고 충격을 받아도 차가 필요하다. 제3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곧 원자 폭탄이 떨어질 것 같다. "가서 내가 물 올리고 올게요"

이제 당신은 알아챘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홍차를 좋아한다. (p88-89)/

 

   마지막으로 실업수당과 연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하류층 사람들이 설탕과 홍차를 사는데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현실적 당위성을 어필한 조지 오웰의 말이다.

 

   /참 얄궂은 것은,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건강식에는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백만장자라면 아침 식사로 오렌지 주스와 호밀 비스킷을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실업자는 그렇지 않다....말하자면 실업자가 되어 못 먹고, 시달리고 따분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면 몸에 좋은 음식은 심심해서 먹기가 싫은 것이다.... 실업으로 인한 끝없는 비참함은 계속해서 고통 완화제를 필요로 하며 그런 차원에서 차야말로 영국인의 아편이다. (p149)/

 

   나도 위로가 필요한 오늘 아침, 얼그레이로 시작해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aw & Justice 2018.6
고정칼럼지 김관기 외 22인 지음 / 법률저널(잡지)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법을 어기거나 무슨 죄를 짓지 않는 한 법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고 실제로 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그러했다. 집안에도 법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문학을 좋아하던 나는 법이나 법전은 따분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불평등, 부조리의 개념이 머리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법이, 법을 집행하는 법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중이었다. 그러다 세월호의 비극의 진실이 드러나고 국정농단의 실체가 파헤치면서 나 뿐만 아니고 국민들이 법, 그 중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을 명시한 헌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년만큼 헌법 전문을 많이 접해 본 적이 있던가. 물론 아직까지는 법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적어도 이제는 법을 무슨 외계의 학문처럼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이 상식선에서 법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무턱대고 법전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터였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알게 된 법률 잡지, Law & Justice! 6월호가 두번째 호라고 하니, 창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잡지이다. 우선 목차를 살펴본다. 120여페이지에 제법 많은 목차가 담겨있다. 고정칼럼진도 25명이나 된다. 즉, 비교적 짤막한 글들로 여러편이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법률 잡지답게 대부분이 법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대중을 배려하여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칼럼이 가득하다. 목차에서 눈에 띄는 칼럼은 '특별했던 세월호 재판', '쏟아져 나왔던 미투법안' 등 최근 이슈들을 다룬 것들과 법관들의 독서 이야기, 그리고 법으로 양념한 무비 토크 등이다. 


   목차를 뒤로 하고 내용을 정독해본다. 칼럼 하나하나에서 대중을 위한 친절이 느껴진다. 재미도 있고 많이 어렵지도 않고 법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여준다. 예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법정 드라마와 영화들에 관한 칼럼에서는 어디까지가 현실적이고 어느 부분이 영화적 재미와 극적인 장면을 위해 가미되거나 강조되었는지를 알려주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깨알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세계 여러나라의 다양한 판례를 통해 알려주는 법의 원리 같은 상식 칼럼도 좋았고, 가장 좋았던 칼럼은 최근 현안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두 법조인이 나누는 담소였는데, 현안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칼럼은 고정칼럼이라고 하니 매달 어떤 '담소'를 나누게 될 지 기대가 된다. 법과 대중을 친구가 되게 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잡지, 권력에 빌붙어 자신이 가진 법적 지식을 흉기로 휘두르며 몽매한 대중을 찍어 누르는 이들이 법조인이라는 편견을 시원하게 날려줄 잡지, 몰라서 당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법률 지식으로 우리를 무장시켜 줄 잡지라는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정기 구독을 고려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읽은 소설집이다. 단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호흡이 짧은 문장이나 단편들에도 가끔은 관심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가끔 만난 단편들이 마음에 들면 금상첨화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히스토리가 독특하다. 저자 프리츠 오르트만은 독일 내에서도 그렇게 알려진 작가가 아니고 발표한 작품 수도 적어서 저자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금은 철학박사이자 철학교사인 안광복님이 1992년 대학 시절, 중급독문강독 시간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마침 교생실습으로 인해 수업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신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일부를 번역해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번역하다보니 작품에 완전히 빠져 전체를 번역하여 제출하였는데, 이 과제 복사본이 대학가를 돌면서 이 이야기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안광복님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최초 소개자로 알려져 있다고. 책 말미에 안광복님의 이런 스토리가 담긴 해설이 곁들여 있다. 이번에 읽은 이 소설집은 안광복님이 번역한 것은 아니고 이 작품을 "내 청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문학적 사건"으로 여긴 안병률님의 번역인데, 원래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단독 작품이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 작가의 7편의 다른 단편들이 모인 소설집 '럼주차'를 내면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함께 묶어서 낸 것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일까? 곰스크라는 장소는 실제하는 장소가 아닌 모든 이들이 꿈꾸는 장소, 안착하고 싶어하는 장소, 유토피아 같은 장소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봤다는 사람이 없다. 작품 속에서도 곰스크에서 출발하여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기차에 탄 사람들과의 대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버지에게 곰스크라는 장소에 대해 듣고 자란 주인공은 평생 곰스크로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드디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1등석에 탑승한 주인공. 하지만 아내는 낯선 곳,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곰스크라는 곳에 대한 불안감으로 편하지 않다. 기차가 중간에 잠깐 작은 시골마을에 두시간 동안 정차하는데, 아내는 그 땅을 밟자 마자 활기를 되찾고 사랑스런 아내와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만다. 잠시 정차했던 마을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임시로 거주하던 주인공과 아내는 곰스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여전히 곰스크로 향하는 날을 꿈꾸며 돈을 모으고 아내는 곰스크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저 현재가 좋을 뿐이다. 아이가 하나, 둘 생길때까지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고 주인공은 여전히 곰스크를 꿈꾼다. 그렇다면 곰스크로 가지 못한 주인공은 불행한 것일까? 역시 젊은 시절, 곰스크로 가고자 했으나 결국 가지 못하고 마을에서 교사를 하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교사 자리를 주인공에게 물려준 선생의 말에서 우리는 그 답을 추측해본다.

 

"그대가 원한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소설집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 외에도 7편의 단편이 더 실려있다. 읽다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는 어떠한 극적인 갈등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오늘날 극도로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이라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젊은 날에는 맵고 짠 음식들을 선호하다가 나이가 들면 삼삼하고 자연의 맛이 깃든 음식을 찾는 것처럼 철학적 깊은 울림이 있는 잔잔한 내용이 마음에 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졌으면서도 '북서쪽으로 가는 같은 배'('배는 북서쪽으로' 참조)를 타고 있는 승객들이 아니던가. 따끈한 럼주차를 달에게 건배하는 보이 엡센('럼주차' 참조)처럼 때로는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는 태도가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